-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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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41 - 묘비명, epitaph
킹 크림슨이 노래했던 Epitaph, 참 아름다운 음악입니다. 찻집에 가면 단골로 주문을 하던 노래였습니다.
The wall on which the prophets wrote Is cracking at the seams예언자의 말이 새겨진 벽의 이음새들이 갈라지고 있어요
Upon the instruments of death The sunlight brightly gleams
죽음의 도구들 위에 햇빛이 번쩍입니다
When every man is torn apart With nightmares and with dreams
모든 사람이 악몽과 꿈으로 갈가리 찢길 때는
Will no one lay the laurel wreath When silence drowns the screams
아무도 월계관을 씌워 주지 못해요 적막이 비명을 삼켜버리고 나면
Confusion will be my epitaph
내 묘비엔 혼란이란 말이 새겨질 거예요
As I crawl a cracked and broken path
길 갈라지고 깨진 길을 기어가
If we make it we can all sit back and laugh
길을 다 가면 편히 앉아 웃을 수 있겠죠
But I fear tomorrow I'll be crying
하지만 두려워요 내일 난 울게 되지 않을까 하고
Yes I fear tomorrow I'll be crying
정말 두려워요 내일 난 울게 되지 않을까 하고
Yes I fear tomorrow I'll be crying
정말 두려워요 내일 난 울게 되지 않을까 하고
Between the iron gates of fate The seeds of time were sown
운명의 철문들 사이에 식자와 명사의 하는 짓들
And watered by the deeds of those Who know and who are known
시간의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어 길렀습니다
Knowledges are deadly friends If no one sets the rules
아무도 규칙을 정하지 않으면 지식은 죽음을 불러오는 친구
The fate of all mankind I see Is in the hands of fools
내가 아는 인간의 운명은 바보들의 손아귀에 있어요
[출처] 에피 타프/킹 크림슨|작성자 killidmg
젊은 날 애송하던 시가 있었습니다. 크리스티나 로제티였죠. 대학 때 여자선배가 표정연기와 함께 분위기 살려 낭송하던 시입니다. 그러나 그 선배는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남편인 우리과 동기를 남기고 먼저 떠나갔습니다.
내가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
내게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마세요
머리맡에 장미도 심지 말고
그늘진 삼나무도 심지 마세요
내 위에 푸른 풀 푸르게 두고,
비맞아 이슬 방울 젖게 하세요
생각이 나시면 기억하시고
잊고 싶거든 잊어 주세요.
나는 그늘도 보지 못할 거예요
비도 느끼지 못할 거예요.
나이팅게일이 고통스럽게 울어도
나는 듣지 못할 거예요
해가 뜨고 지는 일 없는
희미한 어둠 속에서 꿈을 꾸며
어쩌면 나는 기억할 거예요
어쩌면 나는 잊을 거예요
동시대인들은 공유하는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정서는 청록파에 꽂힙니다.
박두진의 묘지송입니다. 1939년에 등단하며 발표한 시랍니다.
북망(北邙)이래도 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란 무덤들 외롭지 않으이.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의 내도 풍기리.
살아서 설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리.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근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
최근에 <위인들의 마지막 하루>, <죽음을 그리다>, <내면기행, 선인들 스스로 묘비명을 쓰다>를 훝어 보았습니다. 생의 마지막 시간에 초점을 맞춘 책입니다. 파란만장한 일생도 군더더기 없이 단칼에 잘라냅니다. 그 글들을 읽으며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그래서 위인들이 남긴 것이 무엇이 었느냐구요?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그 이름을 남기는 것이라고 들으며 자랐습니다. 랜덤하게 씌여진 위인들의 마지막 하루는 보통사람의 하루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생을 통해 걸어간, 그 발자욱을 나중에 오는 사람들이 살펴보는 것입니다. 일생을 한결같이 걸어가는 모습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이번 주는 필립 아리에스의 <죽음 앞의 인간>을 읽었습니다. 몇 달 전부터 계속 읽어보려고 마음을 먹었던 책이지만 한번에 다 읽어내지를 못했습니다. 모두 1120 쪽의 대용량이었거든요. 이 책은 죽음에 관한 천년의 역사를 기록해놓고 있습니다. 아리에스는 인생의 삼분의 이는 도서관에서 살았을 것 같습니다. 그는 솔본느에서 역사학과 지리학을 공부했습니다. 졸업 후 국립 도서관, 열대 농업 박물관, 플롱 출판사 등 아카데미 밖의 직업에 종사하며 “일요일의 역사가”로 활동했습니다. 이런 그가 쓴 첫 책의 원고를 프랑스 문화의 자존심이라는 콧대 높은 갈리마르 출판사는 거절을 합니다. 갈리마르 출판사는 미셀 푸코의 책도 거절했다가 결국 다른 출판사에게서 판권을 다시 사오는 수고를 했다지요. 그 푸코의 책을 알아보고 출판한 사람이 바로 아리에스였다고 합니다. 어쨌든 필립 아리에스는 박학 다식합니다. 짧은 가방끈으로도 기라성같은 박사들과 학계의 높은 장벽을 뚫고 프랑스의 사회과학 고등 교육원의 교수가 됩니다.
필립 아리에스는 무엇인가 하나를 파고들면 바닥이 보일 때 까지 공부를 하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그가 집단 정신사의 관점에서 써낸 아동의 역사, 사생활의 역사는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있습니다. 물론 이 <죽음 앞의 인간>을 있게 한 <죽음의 역사> 라는 책도 이 분야에서는 고전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후 26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아니 이미 출간했을 때 부터 감탄을 자아낼 만한 방대한 자료이며 관점이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설명을 많이 하고 있지요? 그러나 나흘 밤 과 나흘 낮을 집중해서 1120 페이지의 책을 읽었는데 이만큼도 아는 척, 전달을 하지 못하면 좀 억울할 것 같아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이 <죽음 앞의 인간>에서 특히 11장 묘지방문은 144쪽에 달합니다. 그곳에는 당연히 묘비명의 발전사도 들어있습니다. 나는 북리뷰를 하고 있던 중이었으니 차근차근 그 긴 글들을 다 읽었습니다. 밤이 깊어오고 사방이 고요한데, 시체를 파내고 등불을 켜고 무덤을 배회하는 글을 읽으니 사실 머리끝이 쭈뼛 서는 것 같더군요. 그래도 가슴을 졸이면서 나머지 이야기도 읽어 내려갔습니다. 출생 연월일과 사망 년월일을 남기고 심플하게 떠나간 사람도 있고, 후세에 묘비명을 읽어줄 나그네의 복을 빌어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배우자에게 칭송과 그리움을 남긴 묘비명도 있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위에게 경고문을 남긴 묘비명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밤중에 책을 읽다가 나의 묘비명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를 잠시 생각을 해봤습니다. 매사에 준비된 인생을 살지 못하고 어리버리했던 나는 어쩌면 묘비명도 잊어버리고 가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써넣을 것 같습니다. 짐작하건데 나의 묘비명은 이런 모습이 될 것 같습니다.
*** ”일찍 들어와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신 우리 어머니 이제 여기서 걱정을 내려놓으시다.
*** "담배 끊어라” 엄마, 이제 담배 끊을게요. 걱정말고 주무세요. 청개구리 아들

재미있는 것은 반응입니다.
왕누님! 죽음이 그렇게 두려운 것이 아닌 것 같습네다.
삶이 미진해서 죽음이 두려운게 아닌가 싶네요
어두운 밤에 졸리운 운전을 하면서 잠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잠때문에 운전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이니었든가요?
살아 있는 날은 여여(如如) 합니다.
우리 마음이 죽을 날이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이 겠지요
게임이 끝나는 것은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게임을 어떻게 끝내느냐는 순전히 내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놀이가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글고 아드님 걱정이 많이 되시는가봐요...
내가 보기에는 잘 생기고 남자답기만 하드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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