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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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관계에서 위기 혹은 갈등 없는 관계가 있을까? 있을 것이다. 죽은 관계에서는.
사람들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위기나 갈등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결국 거리감을 둘 수 밖에 없다. 적절히 보이지 않는 금을 긋고, 거리감을 유지하고 얼굴에는 예의라는 가면을 쓰면 어느 정도 겉으로 드러나는 위기나 갈등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피하는 것이지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적당히 묻어 두고, 적당히 피하면 문제들이 해결될까? 부딪히고 싸우다 보면 피를 흘리고 상처받을지도 모르니까, 그보다는 그래도 에둘러 피하고 사는 것이 나은 걸까?
이런 관계가 만약 오래 갈 수 있다면 우린 그런 관계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깊게 사귀어 멀리 가는 것”이 창조적 소수라면, “얕게 사귀어 (서로를 건드리지 않고) 멀리 가는” 이런 관계는 뭐라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멀리 가는 것이 삶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난 주에 관계가 깊어지기 위해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 “다름의 미학”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이번 주에는 관계가 깊어지는 것에도 그러하고 멀리 가는 것에도 가장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위기 혹은 갈등 상황 극복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인간의 관계를 깊게 만드는 데 기질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누군가와는 기질이 비슷해서,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와는 기질이 달라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꽉 채워주면 함께 갈 수 있으니까.
재능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달라도 좋다. 오히려 함께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내는데는 다름도 필요하다. 다만 각자가 지닌 역량의 차이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이 역시도 노력에의 의지와 실행력만 있다면 개선의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가치관 역시 한 인간의 자아 성숙도에 따라 변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말처럼 관계에서는 타이밍이 중요한건지도 모르겠다. 우선 내 스스로만 놓고 생각해도 3년 전 혹은 5년 전의 나는 현재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었다. 멀리 가지 않고서도, 연구원 시작할 때의 나와 지금의 나만해도 또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달라지려 노력하는지 말이다. 그러므로 가치관의 경우도 서로가 서로에게 상대적으로 상호 작용을 일으키며 함께 성장할 여지 역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도대체 위기나 갈등에 직면할 문제가 무엇이란 말인가?
진정한 위기는 신뢰가 무너졌을 때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신뢰란 무엇인가? “서로를 믿는 마음”과 “우리가 만들고, 지탱하고 있는 관계에의 믿음”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서로에 대해 무엇을 믿으며, 우리가 만든 관계의 무엇을 믿는 걸까?
나는 인간이 성선설에 기반을 둔 존재인지, 성악설에 기반을 둔 존재인지 모른다. 어쩌면 인간은 그 두 가지 모두를 내포한 존재들일 것 같다.
그러므로 내가 누군가의 본성을 믿고 신뢰한다는 의미는 그가 본질적으로 선한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그가 내게 자신의 본성을 보여주었느냐 아니냐의 문제인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상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나 역시도 A라는 사람을 만나면 나의 속까지도 다 털어 놓을 수 있는 반면, B를 만나면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C라는 사람은 내게 자신의 본성과 내면을 보여줄 수 있겠지만, D라는 사람은 그렇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내가 누군가를 믿는다는 의미는 서로가 서로의 내면을 감추지 않고 진심을 나눌 때, 그 때 그 사람을 믿는다는 의미이다. 그랬을 때, 그런 이들과 만든 관계의 끈끈함을 나는 믿는다.
사람들은 진심을 나눌 때, 그 때만큼은 누구라도 순수한 영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영혼끼리 만든 관계는 세상 그 어떤 관계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과의 이런 관계라면, 인간이기에 빚어내는 실수와 갈등은 극복하고 싶다. 그렇다. 상대에 따라서는 극복하고 싶은 의지조차 생기지 않는 관계도 있다. 관계가 마음을 뚫고 내면 깊숙이 정수리를 찌르지 못한 상태로 표면에서만 겉돈다면, 이런 관계에 있어서는 작은 갈등이나 위기에서도 쉽게 잡은 손을 놓아버리고 싶다.
하지만 상대에 따라서는 아주 큰 상처조차도 극복하고 다시 한 번 삶의 흐름에 내맡기고 멀리 가고 싶은 관계가 있다. 한 순간이라도 순수한 열정을 보여주었다면, 그 순수함을 빛으로 삼아 말이다.
결국 깊게 사귀어 멀리 가는 기초는 “진심으로 만나 의기투합하여 끈끈한 관계를 맺는 거” 그거 아닐까 싶다.
이것이 가장 튼튼한 바탕을 이루고 그 위에 재능이나 기질 그리고 가치관을 쌓아 올려 우리들만의 그림을 완성할 때, 거기서 무언가가 피어나는 것이 아닐까? 그래야만 혹시라도 누군가의 창조성이 너무 뛰어나 무리를 뛰쳐나가 호랑이로서 살아간다 하더라도 관계는 남을 것 같다.
진심.
땅이 꺼지는 위기 속에서도 붙잡을 수 있는 진정한 가치 있는 관계라면, 내일 또 태양은 변함없이 힘차게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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