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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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인 내가 알고 있는 여자는 누구인가?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무조건적으로 채워주는 엄마로서 여자, 나의 아니마의 체현으로 로맨틱 러브의 투사인 연인으로서 여자, 남자의 욕정을 발산하고 해소하는 존재로서의 여자. 남자인 내가 알고 있는 여자는 대략 세 종류의 여자일까!
‘남자들은 모른다’는 책에서 김승희씨는 '비너스의 언덕과 자궁이 여성 운명의 전부인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엄마라는 존재에서 벗어난 내게 ‘비너스의 언덕과 자궁이 여성 운명의 전부인가?’라는 질문은 남성 중심에 빠진 나를 보게 해주었다. ‘남자들은 모른다’에 실린 시들을 통해 사회의 문화질서가 여성에게 부여한 성과 이로 인해 나오는 ‘소외’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 책에 실린 여성 시인들과 그 시들은 단호하게 남성중심주의의 문학사에서 절대 주체가 ‘열리 말라’고 한 ‘여성주의’ 문학이라는 판도라 상자를 열고 있다.
열린 판도라 상자에서 가부장 사회 속에 억압되어온 여성들의 곡소리가 들려온다. 이는 여성체험의 여러 모습들로 구체화 된다. 결혼, 애인되기, 어머니 되기, 자기 어머니 발견, 광기, 불모, 추방, 변두리화, 제도로서의 결혼, 성 경험, 제도-모성, 일부일처제, 허구적 여성 신화(원형) 깨기, 생리적 체험들, 출산, 에로티시즘, 성폭력, 환상, 잔혹, 자기비하, 자기살해, 남성들의 정전 뒤집기, 죽음 충동 등등이다.
지금은 그 어느 때 보다 '여성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미셸 푸코는『성의 역사』에서 성은 권력이 통괄하려는 일종의 자연적 현상이라거나 지식이 언젠가 벗겨내고야 말 모호한 영역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푸코는 성은 '하나의 역사적 구성물에 부여될 수 있는 이름'이라고 지적한다. 성은 자연적 현상이기 보다 우리들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온 인식이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성'이라는 이 오래된 의복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캐보아야 할 시점에 서게 되었다.
‘남자들은 모른다’는 객체에서 주체로 거울을 깨고 나오는 여성들을 보여준다. 가부장사회가 제공하는 여성 정체성과 환상이라는 거울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허구성을 꿰뚫어보며 세계와 자신의 틈새를 인식하고 객체에서 주체로, 주변에서 중심으로 자리를 옮기려는 노력이 새로운 여성 탄생의 시작이라고 한다. 우리 시대 비너스 탄생의 시작이다.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이란 작품이 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하늘의 신인 우라노스와의 사이에서 많은 자식들을 낳았다. 우라노스는 그의 자식들을 싫어해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가이아는 자식들 가운데 가장 눈치가 빠른 크로노스에게 아버지의 살인 음모를 알려 주었다. 이윽고 크로노스는 아버지의 몸 가운데 성기를 잘라서 바다에 던져 버린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바다에서는 하얀 거품이 피어나고 그 거품 속에서 아름다운 여자가 생겨나는데 바로 그 여자가 사랑의 여신 비너스이다.
실비아 플러스의 “아빠, 아빠, 이 개자식, 이젠 끝났어.”라는 외침은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의 성기를 잘라버린 것과 대비된다. 파시스트적인 권력의 대명사인 아버지에 대한 부정에서 솟구쳐 나온 이 절박한 외침은 여성 자신 내부에서부터 로고스 남근 중심주의를 부정하는 외침이다. 이제 여성들은 가부장사회가 제공하는 여성 정체성과 환상이라는 거울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허구성을 꿰뚫어보며 세계와 나의 틈새를 인식하고 객체에서 주체로, 주변에서 중심으로 자리를 옮기려는 노력을 통해 새로운 여성 탄생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