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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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국내에서 개봉했던 영화 <타인의 삶>은 독일 통일 5년 전인 1984년 동독을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주인공인 비밀경찰 비즐러는 일급 극작가 드라이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도청합니다. 비즐러는 철저하게 감시하지만 그에게 어떤 혐의점을 찾기는커녕 그와 그의 애인 크리스타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할 것 같은 냉혈인 같던 그는 그들의 삶을 엿보며 같이 눈물 흘리기도 하고 그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드라이만은 선배 극작가의 죽음을 계기로 사회비판적인 글을 게재하기로 마음먹고 동료작가들과 음모를 꾸며 발각될 위기에 처하지만 비즐러는 이들이 쓴 보고서를 어설픈 보고서로 위장을 시켜주고 심지어 타자기까지 숨겨줍니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을 도와주었다는 의심을 받아 좌천되었고 초라하게 우편배달부로 일하게 됩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에 드라이만은 그가 알고 있는 진실과 다르게 자신이 도청당했음을 알게 되었고 또 자신이 보호를 받아왔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비즐러가 자신의 삶까지 포기하며 자신들을 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2년 후 드라이만은 “선한 사람의 소나타”라는 책을 출판합니다. 광고를 보고 서점에 들러 그 책을 사는 비즐러가 펼쳐본 책의 첫 장에는 이렇게 써있었습니다.
"HGW XX/7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HGW XX/7는 비즐러의 암호명)
“포장해드릴까요?”라고 묻는 서점직원의 질문에 비즐러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오, 이건 저를 위한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이 장면은 너무 아름다워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비즐러는 타인의 삶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따뜻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제가 대학 시절에 좋아했던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의 만남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길을 가다 보면 맞은 편에서 오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나는 그 사람이 걸어온 길에 대해 알지 못한다. 나는 내가 지나 온 길만을 알 뿐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반대편 길에 대하여 알 수 있다. 너와 나라는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 삶에 대한 경험만을 알 뿐이고,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그러므로 타인의 삶에 대해서는 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알게 된다. 사람은 사랑 안에서 산다. 사랑이란 너와 나 사이에 있다. 존재를 다 기울여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사랑이란 우주적 동작이다.”
저는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믿습니다. 조금이라도 삐긋 어긋났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요. 만남은 그 자체로 은총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만남은 한 순간의 마주침이 아니라 서로의 영혼으로 삼투압처럼 침투하는 것입니다. 만남은 변화의 기회입니다. 좋은 만남은 우리를 변하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진실해야 합니다. 오늘 내가 마주 대하는 사람에게 대가 없이 베푸는 ‘소박한 친절’에 우주적 떨림과 울림이 함께 한다고 믿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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