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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1일 11시 29분 등록

1989년 8월. 때는 바야흐로 여름이 막바지 기승을 부릴 때였다. 나는 당시 휴학중 이었다.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처지이기에 1년 동안의 기간동안 아르바이트 등 여러 가지 세상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어떻게 보면 인연 이라고도 할수 있는 가톨릭 성당의 예비자 교리반에 입교를 하게 되었다.

내또래의 젊은이들 40명이 모여 교리를 듣고 있었는데 검은 옷을 입은 젊은 신부가 담당을 하고 있었다. 세번째 출석한날 그 신부가 이런 말을 하였다.

‘자, 오늘은 교리반 대표를 뽑는 날이기에 개인적으로 생각해서 이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사람을 선출해 주세요.’

교리반은 7월부터 시작이 되었었지만 아직 대표가 선출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과는? 너무나 황당하게 내가 선출이 되었다. 기가 막혔다. 신을 거부하던 내가 이제사 입교를 한 내가 그것도 달랑 세번 참석한 내가 대표가 되다니?

‘신부님. 저는 온지도 얼마 되지 않기도 하거니와 앞에서 이런 일을 해본적이 없으니 다른 사람을 시켜주세요.’

나의 이런 말에 검은 옷을 입은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뜻이니까 하세요.’

내또래의 나이에 어린 시절을 겪었던 사람들은 공감이 될 것이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 놀다가 어떤 약속을 하게되면 흔히 쓰는 멘트가 ‘하느님 앞에서 맹세하니?’라는 말이었는데, 그말을 성당에서 듣게 되다니. 그것도 여느 사람도 아니고 신부란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 그 포스가 나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 하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선출된 이유는 대표의 역할이라도 주어져야 교리반에 빠지지 않고 참석을 잘해 보일 것 같아서 였단다.)

 

한번도 앞에서 남을 리드해 본적이 없던터라 교리반 대표를 맡고나서 내가 할수 있는 일이라곤 참석자들의 친목 도모였다.

‘오늘 교리 마치고 00식당에서 간단한 음주가무가 있습니다. 회비는...’

회비를 거두고 관리를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를 도와줄 적임자를 물색하던중 권나래씨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나보다는 3살 어린 나이지만 여상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바로 시작한터라 세상경험에 있어서는 선배 레벨이었다. 거기다 차분해 보이는 스타일이 나하고는 궁합이 잘맞아 보였다.

매주 화요일 저녁 교리가 마치면 내가 생각하는(?) 친교를 형성하기 위해 여지없이 막걸리 파티는 이어지고, 그럴때면 항상 그녀가 동반해 총무 역할을 해주었다. 자그마한 키에 어린 나이지만 마음 씀씀이도 철없는 나에 비하면 한결 성숙해 보였다.

식사를 마친 어느날 저녁. 표가 나지않으면서도 사람들을 배려해주고 묵묵히 뒤에서 일처리를 해주는 그녀가 고마워 그날은 집까지 도보로 배웅을 해주기로 하였다. 가을 선선한 바람이 부는 맑은날 걸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안동이 고향으로 나하고 똑같이 홀어머니 밑에서 차녀로 성장을 하였다. 집안이 그렇게 넉넉지는 않았던터라 원했던 여고를 들어가지 못하고 사회에 빨리 진출하기 위하여 여상을 선택 하였었다.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그녀가 더욱 대단해 보임과 함께, 내가 참 편하게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의 뒷바라지로 그녀가 그렇게 바랬던 대학교 생활을 하고 있으니.

 

세례를 받고나서 나의 앞길에 대한 정신적 방황을 할때에도 그녀는 많은 도움을 주었다. 졸업을 하고나서도 마땅한 직업이 없었던 터라 미팅시 식사비며 간식은 그녀의 차지였다. 그리고 하느님의 소명을 찾던 나에게 든든한 정신적인 지주로서의 역할도 그녀 몫이었다. 신학교 입학 및 개인 사정으로 나오게 되었을 때에도 누구보다 기뻐하고 마음 아파했던 것도 그녀였다. 그런 그녀였기에 항상 고마워 했었고 나도 친동생처럼 마음이 항상 쓰이는 입장이 되었다.


‘승호 오빠. 저 결혼해요.’

‘결혼? 누구랑?’

갑자기 청첩장을 내미는 그녀였다. 상대는 같은 성당에서 교리교사를 했었던 연하의 친구였다. 뜻밖이었다. 갑자기 결혼을 한다는 것도 그랬었지만 더구나 결혼 상대자가 생각지도 못했던 그녀석이라니. 하지만 이미 결혼을 약속한 터였고 당사자가 좋다고 하니, 어울리지 않는다고 내가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하기에도 늦은터였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성당에서의 결혼식날 세상 사람들의 축복을 받을 때 나도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나래야. 나를 많이 도와주어서 항상 너무 고마웠고 누구보다 잘살거래이~’

그런 가운데 시간은 많이 흘렀다. 나도 서울로 올라와 세상살이 적응과 직장생활에 여념이 없었던 터라 연락이 상호간 오랫동안 있질 않았다. 막연히 잘살고 있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러던 어느날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승호 오빠. 저 나래인데요. 잘지내셨어요.’

‘어, 그래, 나래. 오랜만이다. 너는 어떻게 지냈니?’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20대때 많은 도움을 받았던 동생같은 녀석이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먼저 챙기지도 못했으니.

‘이쪽으로 출장올 기회가 있으면 한번 뵙고 싶어서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가 왠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마침 출장일정이 잡혀져 있어 서둘러 기차로 내려갔다.

 

차한잔을 마주하며 우리는 대화가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시간의 무게탓도 있었지만 할말이 있다는 그녀였기에 이제나저제나 그녀의 대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이혼을 했으면 해서요.’

이혼? 너무나 뜻밖의 말이었다. 쉽게 해서도 안될 말이었지만 그말을 꺼낸 당사자가 더욱이 그녀였기에 나는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말을 이어나갔다.

‘이혼? 왜 무슨 일이 있었니?’

그녀의 대화는 이어졌다. 사람들의 축복속에 결혼식을 한만큼 남들이 부러워하지는 않더라도 행복한 성가정의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고 싶었단다. 하지만 바램만큼 결혼생활은 그렇게 장밋빛 생활은 아니었다. 연애 때와는 달리 현실생활의 그녀의 남편의 생활은 무능력 그자체였다. 귀한 손의 집안에서 자란 남편이기에 남에게 아쉬운 소리도 못하였다. 생활력이 없는 것은 둘째치고 가치관도 너무 달랐단다. 경제적 관념이 없던 남편 이었기에 월급 봉투를 제대로 갖다 준것도 손에 꼽을 정도. 그녀의 말을 듣는순간 내마음은 착잡해졌다. 누구보다 행복하기를 바랬었던 그녀였는데 이렇게 결혼생활을 꾸려왔더니.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말이 이어졌다.

‘어느날. 제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남편 친구라면서 전화가 걸려왔어요. 빛을 갚지 못하면 애들에게도 가만있지 않을거라는...’

그말을 들은 그녀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혹시나 싶어 살고 있는 아파트의 등기부등본을 떼어보고는 더욱 말을 잇질 못했단다. 집은 벌써 담보로 넘어가있는 상태. 그날밤 남편을 추궁한 끝에 결과는 이러하였다. 신용 카드를 계속 막다보니 여러 사람에게 돈을 빌리게 되고-나에게도 돈을 빌렸었다-, 그것도 막판에는 되질않아 결국은 사채를 쓰게 되고 결국은 집까지 넘어가게 되었다고. 그런데 그 사채 빛이 장난이 아니기에 악순환은 계속 이어진다고.

그런 상황이 이어지다보니 이제는 부부간의 신뢰가 바닥이 난상태. 울면서 하소연을 하며 들썩이는 그녀의 어깨를 보고있는 나자신도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그동안 얼마나 가슴앓이가 많았을까. 한참동안 적막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는 결국은 원론적인 이야기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래. 너가 정말로 힘들었겠구나. 하지만 이혼이라는 말은 함부로 해서도 안되고...’

더크게 흐느끼는 그녀 앞에 나의 말은 끝맺음을 짓지 못하였다. 애기가 두명이 있는 상황에서 그녀도 이런 말을 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겠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었을까? 얼마나 많은 심사숙고를 가졌을까? 올라오는 기차내내 나는 여러 상념에 잠기었다.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그렇다고 내가 당장 돈이 있는것도 아니고.

 

‘오빠, 보험 하나 들어주세요.’

마음이 조금은 안정이 되었는지 남편 대신에 살아갈 궁리를 하던 그녀는 보험회사를 들어갔다. 하지만 순탄치 많은 않았다. 처녀시절부터 사회생활에는 이골이 나있던터라 누구보다 잘할 것이라고 봤었는데, 그동안 애기를 키우면서 감각이 무뎌진 탓도 있겠지만 세일즈라는게 쉽지많은 않은 모양이었다. 1년이 채되질 않아 보험을 그만둔 그녀는 다시 카드 영업으로 나섰다. 덕분에 나도 사용하지는 않지만 들어준 카드가 몇장이나 쌓여갔다.

 

예전에 여자들은 세명의 남자를 만나면 팔자가 편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 남편, 아들이 그들이다. 그렇기에 TV 드라마의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결혼을 신분상승의 기회로 삼는 여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은 변했다고 한다. 얼마든지 자유로운 세상에서 여성도 자기의 능력만큼 기회를 잡고 당당히 정상에 설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나도 현장의 주부영업사원 분들에게 여성으로서의 맨파워를 발휘하라고 입에 침을 튀기면서 강의때면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정말로 사람들이 말하듯 세상은 변했을까?

아내와 두아이를 책임져야 함에도 경제적인 생활 관념이 없는 남편. 날마다 빛독촉의 전화에 시달리는 나날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집안의 여자가 잘해야 한다며 나몰라라 손을 놓은 시댁. 얘기를 하면 걱정할까봐 친정에는 속내도 보이지 못하며 혼자서 속을 앓은 끝에 결국 화병이 생긴 그녀. 이런 상황속에서 남편 대신 생활비를 벌어 보겠다며 어떻게든 살아 보기위해 세상에 나섰으나, 이제는 마흔에 접어든 그녀에게 돌아오는건 현실속의 세상의 싸늘한 시선뿐. 그런 가운데에서도 가톨릭의 교리상 이혼은 인정을 못하기에 어떻게든지 살아 나가야 한다는 이론적인 얘기만 할수 밖에 없는 나자신.

정말 세상은 변했을까? 그녀에게 위로가 되어줄 말을 책에서 찾아 보지만 어찌보면 허공에 맴도는 상념들 같다.


20년 시간의 풍상속에 맺어져온 그녀에게 결국 내가 해줄수 있는 말은 단지 이것 뿐이었다.

‘나래야. 하느님께서 너에게 안배하신 무언가가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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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뽀3
2010.02.27 09:34:44 *.222.43.189
2/26 00거래처 팀부장대상교육 14킬로걷기 극기훈련후 피곤하면서 즐거운맘으로 집으로 와서 간만에 `변경연'에 들렀다. 몇분후 ......
캬~~ 이기뭐꼬 !!!! 미쳐서 미쳐서 미쳤구나!  그후  공황상태.......
2/27 오늘에서야 다 읽어봄(라뽀 3-1/3-2 )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중임! 

* 글쿠!! 혜향님! 
   저 아줌마 아니예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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