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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3일 10시 12분 등록

마음가는데로 그리기

 

그림을 가장 잘 그리는 방법은 그냥 그리는 것이다

한때 하얀 도화지를 보면 겁을 먹은 적이 있었다. 처음부터 잘 그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다 보면 하얀 도화지가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다. 마치 깨지면 안 될 것 같은 백자를 보는 듯 하다. 선 하나라도 잘 못 그으면 고결한 빛깔에 나쁜 흔적을 남길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쉽게 손을 내젓지를 못한다. 그럴 때면 여지없이 주변사람들이 내 그림 실력을 보기 위해 주위에 몰려든다. 내 얼굴은 점차 빨게 지고 이를 어쩌지? 어떻게 보여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인상은 점점 경직되어 간다. 주변을 의식하면 할수록 몸은 돌처럼 굳어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보게 된다.

 

물론 내 뒤에는 아무도 없다. 나 혼자만의 우물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림을 그릴 때 항상 따라오는 주변의 의식은 그림자처럼 늘 나를 따라다녔던 것이 사실이다. 한참 미대를 입학하기 위해 그림을 그릴 때 나의 선생님은 경직되어 있는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시곤 하였다. “그냥 그려 마음가는 데로, 머리는 연필을 깍을 때면 사용해라

 

그래도 내 안색을 보고 약발이 안 먹히겠다 싶으셨는지 연필 하나를 들더니 하얀 도화지에 선 하나를 쭈욱 긋고 가신다. 이 기분은 아침에 일어나보니 내 새차에 누군가가 날카로운 송곳으로 옆면을 쭈욱 긁고간 황당한 느낌과 비슷하다. 나는 황당해 하며 열심히 지우개로 선 하나를 지워나간다. 그러고 그 새하얀 도화지는 이곳 저곳 내 손때가 묻으며 지우개와 함께 더러워 져만 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하얀 도화지는 금기의 장소가 아닌 흔하디 흔한 종이딱지로 보이게 된다.

 

그 하얀 백색의 도자기가 깨져버리는 순간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그것은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너무 잘 할려고 하는 마음, 멋지게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 남의 평가에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 현재의 것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이런 것들은 그림을 그리는데 방해만 될 뿐이다.

 

그냥 그려보자. 선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지 말고 손이 흘러가는 데로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다. 자신의 회사 이미지를 상상하는데 아무런 제약을 두지 말자. 그냥 상상해보자.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되어 멋진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멋진 제품을 생산해 내는 애플의 디자인을 자기 것이라 생각해도 좋다. 거대한 버진 그룹을 움직이고 있는 리처드 브랜슨처럼 세계 열기구 대회에 참여하여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해보는 것도 자유다. 뭐든 도화지는 당신을 세계 최고의 영웅으로 만들어 줄 수 있으니 맘컷 자신의 희망을 그려보자. 이것이 되도 좋고 저것이 되도 좋다. 마음이 충만해 질 때까지 하얀 도화지가 더러워 질 때까지 쏟아 내보자.


학원에서 뎃생 강의를 할 때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을 접하였다.

연필은 어떻게 깍는 거에요?” “도화지는 앞면과 뒷면을 어떻게 구분해요?” “지우개는 어떻게 사용하는 건가요?”

우리는 어쩌면 형식과 틀에 얽매여 앞으로 못 나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이 질문은 연필깍기의 대가를 원하거나, 종이생산업체의 사장이 되려 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연스럽게 익혀지는 것들이다. 이런 소소한 질문이 당신의 앞길을 막지 못하게 하라.

그냥 쓰레기 통에 쳐 박아 버리고, 당신의 갈 길을 가는 것이다.

그냥 그려라. 2B연필이든 4B연필이든 색연필, 파스텔 여하튼 아무것이나 맘에 드는 것을 손에 들고 그려보는 것이다. 그 어떤 격식도 절차도 없다. 아무도 당신을 등뒤에서 보고 있지도 않으며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없다. 오직 도화지와 나 뿐이다. 그냥 그려보는 것이다. 이런 마음상태가 되면 그때부터 당신의 진짜 원하는 회사의 모습이 보이게 될 것이다.

마음이 들뜨게 되는 그 순간 그 회사의 모습과 거기 서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일 때 그림을 멈춰라. 그리고 그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라. 그러면 끝이다.

 

다음편>
03
아름다운 순간을 상징화하기.
04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보기

IP *.52.9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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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2.23 12:53:05 *.108.50.152
ㅎㅎ 예고편까지 있는 친절한 글이로군요.
그 미술선생님, 멋지신데요!
모든 미술선생님은 저 정도로 열려있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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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10.02.24 19:19:44 *.52.96.30
ㅎㅎ 예고편이라기 보다는 다짐편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뭔가 써놔야 진도를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다음편을 달았습니다.
제 능력에 비해 좋은 글을 쓰고자 하니
글쓰기가 두려워집니다. 솔직히
그래서 이글도 하나의 종이에 줄 긋기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더렵혀 보고 지워가며 잘 써봐야죠.
선배님 댓글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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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10.02.24 11:43:52 *.72.153.59
제목이 그림이야기 일것 같아서 관심있어 읽어봤어요. ^^*
난 통통한 필기구가 좋습니다. 선이 굵게 그어지는 크레용이나 파스텔같은 선을 긋는 것보다는 칠하는 데 편한 재료가 좋아요. 또 필압이 낮아서 전 조금만 힘써도 진하게 그어지는 재료가 좋더라구요. 헤헤헤.
종이는 너무나 무섭고, 눈은 정말 무섭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손에 든 재료가 종이를 찌르는 무기처럼 느껴질때가 있어요. 뭐 그것도 순간이지만요. 혁산 말대로 이미 종이에 뭔가가 그어지면 그때부터는 '놀기' 잖아요. 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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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10.02.24 19:22:58 *.52.96.30
정화 선배 그림 보며 많은 영감 얻고 있어요.^^
저는 입시미술을 통해 미대에 입학하여서 그런지
늘 시간에 쫓기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즐기지 못했지요. 지금부터라도 놀이하듯이
그림을 그려 보고 싶네요. 정화선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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