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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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서 오랜만에 옛 직장 동료들을 만났습니다.
아마도 올해 겨울의 마지막이 될 듯한 포항 직송 과메기와 백고동에 소주 한잔했습니다.
처음에는 예전 직장생활의 무용담을 이야기하면서 한바탕 웃었습니다.
술잔이 일순배 돌고 이윽고 술이 가슴 위에 차오르자 이내 속깊은 이야기를 꺼냅니다.
“형, 왜 살면 살수록 힘든지 모르겠어요. 형이 있었을 때는 그래도 일하는 맛이 있어서 좋았는데… 이제는 낙이 없어요.”
“야, 너 카펜터스 노래가 좋냐? 광석이 형 노래가 좋냐?
“형, 뭥미?”
“광석이 형 노래를 들어봐. 그리고 바람이 부는 곳으로 그냥 떠나 가보렴. 돌아와서 카펜터스 아니면 자전거탄풍경 노래 들으면 짱이다.”
“……”
바람이 불어 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설렘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자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볼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 곳으로 가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는 듣는 이를 압도하려 들지 않는다.
그의 노래에는 틈이 많다.
듣는 이로 하여금 그 여백 속에서 스스로를 반추하게 만든다는 데에 김광석 노래의 진정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 정이현
스스로 반추하게 만드는 것이 광석이 형 노래의 힘이라고 정이현 소설가는 말합니다. 맞습니다.
저는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고 싶습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난 한없이 벌거벗은 기분이 듭니다.
원초적인 벌거벗음이랄까요?
그의 진정성이 느껴져서 그렇습니다.
사진 출처: 네이버 보고 듣고님 블로그
이 대목에서 제가 대학 시절에 자주 읊조렸던 그의 노래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네요.
사회적 불의에 순수하게 저항하던 시절, 결단의 두려움에,,, 건조한 모습에 지쳐있을 때 그의 이 노래는 눈물처럼 나의 마음을 적셔주었습니다.
매운 가스를 마시고 난 후 주점에서 젓가락 두드리며 이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르던 선배 누나가 생각이 나네요.
제목이 불행아인데 왜 저는 이 노래를 들으면 행복한지 모르겠네요.
저 하늘의 구름 따라
흐르는 강물을 따라
정처 없이 걷고만 싶구나
바람을 벗삼아가며
눈앞에 떠오는 옛추억
아 그리워라
소나기 퍼붓는 거리를 나 홀로 외로이 걸으며
그리운 부모형제 다정한 옛 친구
그러나 갈 수 없는 신세
홀로 가슴 태우다 흙 속으로 묻혀갈 인생아~
묻혀갈 나의 인생아~ 묻혀갈 나의 인생아~
묻혀갈 나의 인생아~ 묻혀갈 나의 인생아.
- 불행아
사진 출처: 네이버 명동 섬 카페
광석이 형이 그리운 날은 나의 깊은 목소리를 듣고 싶은 날입니다.
그런 날은 명동의 섬 카페나 여의도에 하나 밖에 없는 통기타 카페, 안국동의 풍경,그리고 구본형 사부님과 자주 갔던 인사동의 평화만들기를 찾아 갑니다.
가끔 대학로 단골 카페나 주점을 편하게 찾아가기도 합니다.
“사장님, 광석이 형 노래 틀어 주세요.”
나는 그의 나즈막한, 씩씩한, 감미로운 노래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가슴으로 끌어 당깁니다.
그리고 나도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릅니다.
어떤 날은 그냥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릅니다.
어떤 이는 그가 자살했고 또 그의 노래가 우울하여 기피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의 노래를 듣고 나면 가슴이 확 풀리는 느낌이 듭니다.
원초적인 해탈이랄까요? 그리고 그의 웃음이 떠오릅니다.
이 글을 쓰고 나니 감성플러스가 아니라 감성마이너스가 아닌지 모르겠네요.
제가 꼭 라디오 디제이 같네요. ㅎㅎ
언젠가는 광석이 형에게 작은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열차시간이 다와서요.
우리 젊은 날의 꿈은 이미 다 가버린걸요.
별처럼 광석이 형처럼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