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정재엽
  • 조회 수 4257
  • 댓글 수 4
  • 추천 수 0
2010년 3월 10일 17시 04분 등록

<인생, 그 서글픈 미학> - 오스카 와일드

오스카 와일드 소개글

오스카 와일드(Oscar Fingal O’Flahertie Wills Wilde, 1854~1900)는 아일랜드에서 안과의사인 아버지와 시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 대학 시절부터 '미의 창조가 예술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는 ‘유미주의(aestheticism, 唯美主義) 의 리더’를 자처하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벨벳 재킷과 붉은 비단 양말을 착용하는 등 범상치 않은 옷차림으로 보수적인 영국의 문단을 경악시키는 한편, 사교계의 총아로 이름을 날렸다.

대학 시절, 시「라벤나」(Ravenna) (1878)로 뉴디게이트 문학상(Newdigate Prize)을 받고, 스물여섯 살에 첫 희곡 『베라, 혹은 허무주의자 Vera; or, The Nihilists』(1880)를, 스물일곱 살에 첫 시집 『시집 Poems』(1881)을 출간했다. 이후 1년간 미주 순회 강연을 떠나 유미주의를 전파하고, 소설집 『행복한 왕자 The Happy Prince and Other Stories』(1888)를 출간하면서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891년에 두 권의 소설집 『아서 새빌 경의 범죄 Lord Arthur Savile's Crime and Other Stories』와 『석류나무 집 House of Pomegranates』을 출간했다. 같은 해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으로 남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The Picture of Dorian Gray』을 출간했는데, 아름다움과 젊음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는 내용과 향락적인 생활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비도덕적이라는 이유로 영국 문단에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예술은 도덕이나 정치와 상관없이 예술 자신을 위해 봉사한다는 유미주의로 그 비판에 응대하며 자신의 문학예술관을 피력했다.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 Lady Windermere's Fan」(1892)의 성공적인 상연 후 「살로메 Salomé」를 불어로 집필하지만, 작품의 내용이 성경을 모독한다며 런던에서는 상연 금지 조치를 당했다. 1895년에 연달아 상연된「이상적인 남편 An Ideal Husband」과 「진지해지는 것의 중요성 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극작가로서의 명성이 정점에 달했다.

그러나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나 「W.H. 씨의 초상화 The Portrait of Mr. W.H.」에 암시된 바와 같이, 젊은 옥스퍼드 대학생 알프레드 더글라스 경과 만난 이후 동성애자로 사회의 지탄을 받게 되고, 동성 연인의 아버지와 소송에 휘말려 패소함에 따라 영혼의 자유와 아름다움의 추구가 철저히 배제된 감옥으로 보내져 2년간 강제노역에 처해진다.

출옥 후, 비인간적 형벌체계에 분노를 담은 『레딩 감옥의 노래 The Ballad of Reading Gaol』를 자신의 죄수번호를 따 발표하였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홀로 쓸쓸히 떠도는 생활을 하던 와일드는, Sebastian Melmoth라는 가명으로 생활하였다. 이 시기에 가톨릭으로 귀의,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후에 결국,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1900년 파리에 위치한 L'hotel 호텔에서 뇌수막염으로 사망한다. 

그의 시신은 처음에 Bagneaux에 묻혔으나, Pere Lachaise로 다시 옮겨지는 비운을 사후에도 맞기도 한다. 슬픔과 절망의 나락에 빠진 와일드가 감옥에서 쓴 편지는 사후에 『심연으로부터 De Profundis』 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1905년 초판에는 일부분만 출간되었다가 1962년이 되어서야 무삭제판이 출간되었다.

그의 사후 100여년이 지난, 1998년. 영국의 노동당은 런던 트래펄가 광장 근처 아델라이드 거리에 <오스카 와일드와의 대화 A Conversation with Oscar Wilde>라는 제명의 동상을 세우면서 실추된 명예를 회복시켰고, 이로인해 그의 인생과 작품은 새롭게 조명되어 재평가 되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그의 묘지 (The tomb of Oscar Wilde in Père Lachaise Cemetery)에는 수많은 방문객들의 키스 마크로 덮여 있다.

IP *.216.38.10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10.03.11 00:55:59 *.36.210.228
죽어서 다시 사는 것 부활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100번 낫지만
살아서 겪는 고통이 너무 극심해
저럴 땐 정말 어찌 살아야 하는 걸까 막막하게 느껴질 때가 있더이다.
프로필 이미지
정재엽
2010.03.11 15:24:11 *.216.38.10
그러게요.
평생 아름다움을 추구했지만, 죽는게 죽는게 아닌 그의 인생을 이제 한번 글로 엮어볼랍니다.
프로필 이미지
범해
2010.03.11 13:33:38 *.67.223.107
파리에 있는" 페르 라세즈"를 방문한 적이 있어요. 1990년에.
매우 규모가 큰 묘지여서 다 돌아보려면 만 하루는 머물러야 할 것 같았어요.
나는 에디뜨 피아프만 보고 오스카 와일드는 못만났는데....
다음에 가게되면 재엽씨의 이 글을 잘 기억했다가 전해줄게요. ㅋㅋ
저녁에 좀 더 긴 얘기 해주세요. bis bald! 

 
프로필 이미지
정재엽
2010.03.11 15:23:04 *.216.38.10
제 글  '오스카 와일드' 편의 중심에 있는 이야기가 바로 Pere Lachaise를 방문한 사건(?)입니다. 
전 몇몇의 무덤 중에 특히 '짐 모리슨'의 무덤이 기억에 남더라구요. 아! 이 곳을 방문한 분을 뵙다니..
반갑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92 수유+너머 고병권인터뷰 2.창조적 소수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정예서 2010.03.17 2827
1491 라뽀(rapport) 7 [2] 書元 2010.03.15 2641
1490 사자 프로젝트 - 카페 '어라운드 더 코너' 대표 인터뷰 혜향 2010.03.14 3611
1489 [사자 16] <휴머니스트 인터뷰 5- 4장: 창조적 소수의 갈등 해결: 멀리 가는 법> 수희향 2010.03.13 3070
1488 감성플러스(+) 비움에 대하여, 법정스님의 입적에 부쳐 file [1] 오병곤 2010.03.13 3749
1487 [사자 프로젝트] (주)봄바람 바람님 인터뷰 내용 [4] 정야 2010.03.12 3012
1486 2. 수유공간너머 고병권 인터뷰 1. 창조적 소수의 개념 인터뷰 정예서 2010.03.12 3224
1485 [사자 15] <휴머니스트 인터뷰 4- 3장: 창조적 소수의 교류의 원칙: 깊게 사귀는 법> 수희향 2010.03.11 2966
» <인생, 그 서글픈 미학- 오스카 와일드> 1. [4] 정재엽 2010.03.10 4257
1483 칼럼 46 - 7일간의 만남 - 프롤로그 [5] 범해 좌경숙 2010.03.05 3083
1482 그 마당의 복수초 정야 2010.03.03 2944
1481 감성플러스(+) 광석이 형이 그리운 날에는 file [2] 오병곤 2010.03.03 5460
1480 감성플러스(+) 사소한 하루는 없다 file [1] 오병곤 2010.03.02 5819
1479 그대여! 노래처럼 [9] 백산 2010.03.02 3766
1478 라뽀(rapport) 6 [2] 書元 2010.03.01 2949
1477 넘치지 않게, 부족하지 않게 [1] 백산 2010.03.01 3346
1476 생각을 멈추다 = 마음을 비우다 [2] 백산 2010.02.23 9027
1475 Small Branding 02 마음가는데로 그리기 [4] 혁산 2010.02.23 3741
1474 [사자 프로젝트] 밴드 사례 정리 file 희산 2010.02.22 3310
1473 [사자 14] <휴머니스트 인터뷰 3- 2장:창조적 소수의 구성> [2] 수희향 2010.02.22 3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