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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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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0일 19시 55분 등록

“저는 <행복한 왕자>를 아이들에게 안읽혀요. 뭐. 문학적으로야 모르겠지만 일단은 작가가 동성애자라는게 혹시나 우리 아이에게 영향을 받지 않을까 싶네요.”

“사실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은 <행복한 왕자>가 전부에요. 저도 그림책으로 된 것을 보았죠. 나머지는 뭐. 참, 쥬드로가 주연한 영화는 본 것 같아요. 남자끼리 키스하는 장면은 걷어냈으면 했지만요.”

“그의 문학에서는 삶의 고독이랄지, 아니면 깊은 성찰이 별로 보이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문학적으로 그렇게 조명을 받지 않았겠죠. 게다가 그의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작품 자체보다는 사생활에 더 관심의 대상이 되었겠죠. 그의 작품만을 선별해서 대대적으로 홍보하기엔 좀 무리가 있는 구성이기도 하죠.”

유미주의. 붉은 벨벳자켓. 동성애자. 위트의 대가. 외설적인 작품. 셰익스피어에 이은 가장 많이 읽히는 작품. 환상소설. 그리고 쓸쓸한 죽음. 이런 것 들은 오스카 와일드를 둘러싼 단어들이다. 그러나 정작 그가 가장 듣고 싶어 했던 말은 바로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아니였을까.

오스카 와일드의 인생은 불꽃놀이와 같았다. 불꽃이 터지기 직전의 흥분과 기대감은 화려한 불꽃놀이로 이어져 보는 이의 눈과 귀를 멀게 할 만큼 현람함의 극치를 보여주지만, 그 끝은 항상 정적만이 남기 때문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기묘하게도 자신의 작품 <유별난 로켓불꽃 The remarkable rocket>에 묘사된 로켓 불꽃과 같은 생을 살았다. 하늘 높이 솟아올라 불꽃을 쏘아낸 뒤, 땅으로 곤두박질치며 “난 언젠간 불꽃을 터뜨릴 줄 알았다고!”라고 외치는 불꽃.

오스카 와일드는 스스로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대중이 자신을 꿰뚫어 볼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계속 그 이미지로 가는게 좋다네” 그가 1885년 화가 제임스 휘슬러에게 쓴 편지 내용이다. “위대함을 오해 속에 탄생하는 것” 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는 평생을 오해와 전설 속에서 살고자 했다.

신화와 전설, 가면을 사용하는 것은 오스카 와일드가 오랫동안 써먹은 방법이었다. 그는 프랑스 기자 자크 다우렐과의 1891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생의 진실은 무슨 일을 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게 아니라, 생전에 남긴 전설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러니 절대로 전설을 깨서는 안됩니다. 전설을 통해 인간의 진면목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집을 나설 때마다 항상 백합을 들고 다녔습니다. 단순한 일이지만, 건물 관리인이나 마부가 그러고 다녔다면 아마 별것 아닌 일로 묻혔을 겁니다. 하지만 오스카 와일드는 늘 그러고 다닌다고 사람들이 믿기 시작한 순간, 제가 만든 전설이 효과를 발휘한 거죠.”

오스카 와일드가 서거 한지 100년이 지났건만, 지금도 그는 ‘패러독스의 왕자’로 불리며 수수께끼같은 인물로 남아있다. 그의 이중성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과, 작품과 인생 모두 모순투성이라 혼란스럽다. 어디까지가 설정이고 어디까지가 그의 진면목인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오스카 와일드라는 사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는 아일랜드 자치를 지지했던 영국계 아일랜드 사람이었고, 평생을 가톨릭의 성향으로 살았지만, 죽기전에야 비로소 가톨릭에 귀의했으며, 결혼해서 두 명의 자식이 있는 동성애자였고, 언어로 먹고 살았지만, 앙드레 지드에게 글쓰기가 지루하다는 장문의 편지를 쓴 적도 있다. 그는 가벼운 대중작가로 일시적인 유행 아이콘에 불과했을까. 아니면 19세기에서 20세기로의 가교 역할을 한 근대 사상가이자, 예리한 비평가이며, 동시대의 숨 막히는 갑갑함을 견딜 수 없었던 영혼이었을까? 아니면 빅토리아 사회를 격분케 만든 위험인물이었을까?

1854년 10월16일, 더불린의 웨슽랜드가에서 오스카와일드는 태어났다. 그의 원래 이름은 오스카 핑걸 오플레어티 월스 와일드. 청소년기에는 긴 이름을 창피해 했고, 대학 시절에는 이 이름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름의 일부를 버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모름지기 유명한 사람이 되면 이름의 일부를 버리는 법이다. 기구 조종사가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불필요한 짐을 덜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은 중간이름을 다 버리고 오스카 와일드만 남겨두었다. 이마저도 머지않아 하나만 쓰게 되지 않을까? 이를테면 ‘와일드’나 ‘오스카’ 라고.”

윌리엄과 제인 프란체스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오스카 와일드는 안정적이고 교양있는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 윌리암은 유명한 안과 의사였으며, 민속학과 자연사 비롯해 아일랜드 민족학, 지형학의 권위자였다. 그는 아일랜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아일랜드 인구 조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864년 기사작위를 받을 만큼 학식있는 사람이었다.

헌신적인 민족주의자였던 어머니 제인은 <네이션스 Nations>신문에 아일랜드의 기근을 고발하는 선동적인 시를 기고해 체포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녀는 뛰어난 어학실력으로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번역했고, 더블린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문학살롱을 운영했다. 환경이 이렇데 보니 오스카 와일드 역시 자연스럽게 부모의 영향을 받아 남다른 언어감각을 키웠다.

아이러니하게도 후에 오스카 와일드의 인생을 급격하게 파국으로 몰고 간 명예훼손 소송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비롯된다. 1864년, 오스카의 아버지인 윌리엄 경은 환자였던 여자가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한 사건으로 인해 명예훼손소송에 휘말렸다. 명예훼손에 대한 승소로 인해 사건이 곧 종결되기도 하였지만, 정작 본인이 소송에 휘말렸을 때, 당시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글을 남겼다. BBC 방송이 제작한 오스카와일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당시 오스카 와일드의 재판에 관한 증언이 나온다.

“누군가에게 진실을 듣고 싶다면 그에게 가면을 주면 된다.”

오스카 와일드의 이 말은 자신에게도 적용이 되는 말이었다. 1887년 무렵의 그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동성애자였다. 첫 번째 상대는 그와 가장 친했던 친구이자, 그의 사후 작품관리자가 된 로비 로스 Robbie Ross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동성애자라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게 만든 상대는 1891년부터 관계를 맺은 알프레드 더글러스 Alfred Douglas 경이다. 그를 만났을 당시 오스카 와일드는 이미 두 명의 자식을 둔 유부남이었다. 알프레드는 귀족출신으로 화류계에 능숙한 대학생의 신분이었다. 그들은 남창들을 불러 놀기도 하고, 길거리에서의 애정행위도 서슴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스카 와일드는 역설로 차 있는 그의 심장에 열정이 더해서 도착행위로 쏟아붇기 시작하였다. 그의 작품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 묘사된 등장인물과 연결시키는 것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진다. 비록 그 작품을 썼을 당시, 그는 알프레드를 만나기 2년 전의 일이며,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알려지기 이전의 일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의 대담한 성적 행위는 주인공 도리안이 시한폭탄을 들고 다녔던 것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독을 품는 완벽한’ 젊음의 소진이랄까.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서문부터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마법의 초상화, 도플갱어, 아름다움과 젊음을 위해 영혼을 파는 도리언의 존재, 상류층의 삶에 권태를 느낀 지적이고 퇴폐적인 헨리 워튼 경, 그리고 도리언을 사랑하다가 그에게 살해당한 화가 배질의 존재들은 그의 젊음의 소진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젊고 아름다운 청년을 만나 당대 사회의 청교도적인 분위기에 정면으로 부딪치며 향략적 삶을 누리게 된 작가 자신의 삶과 한순간 영국 사교계의 정점에서 추락하게 된 도리언은 동일 인물로 볼 수밖에 없다. 와일드 사후에서야 그의 전기 등이 출간되기 시작하고 그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늘어나면서, 탈구조조의 의론의 선구자로 추앙받으면서 동시에 예술 지상주의의 순교자로, 또 동성애의 대변인으로 시대를 앞선 인물로 평가받는 것은 그에 대한 지나친 평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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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3.23 09:25:46 *.251.224.138
오스카 와일드는 기묘하게도 자신의 작품 <유별난 로켓불꽃 The remarkable rocket>에 묘사된 로켓 불꽃과 같은 생을 살았다. 하늘 높이 솟아올라 불꽃을 쏘아낸 뒤, 땅으로 곤두박질치며 “난 언젠간 불꽃을 터뜨릴 줄 알았다고!”라고 외치는 불꽃.


백 년 전에 붙인 제목 치고는 정말 탐미적이군요. 그럼 '행복한 왕자'에도 어떤 숨어있는 의미가 있는 건지,
내가 아는 '행복한 왕자'는 어린이용으로 편집된 건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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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엽
2010.03.25 09:23:57 *.216.38.10
얼마전에 우리나라에 번역된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집을 쭉 봤는데, 재미없게도  <유별난 로켓불꽃 The remarkable rocket>을 그냥 <신기한 불꽃>으로 번역했더라구요..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실감했습니다. 그냥.. 제가 번역할까봐요~~!! ^^

그리고.. <행복한 왕자>는 오스카와일드가 만든 세 권의 동화집 <아서세빌경의 범죄> <석류나무집> 그리고 <행복한 왕자> 중 <행복한 왕자>라는 책의 원본 그대로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작품 입니다..

제 다음 글의 대부분이 이제 <행복한 왕자>와 그의 생애를 엮어서 쓸 계획인데요.. ^^ 어떠세요? 제 다음 글 오스카 와일드 씨리즈 제 3탄을 을 한번 읽어주세요~^^  둥 둥 둥!!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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