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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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도둑에게 가진 것을 몽땅 털린 불행한 피해자의 눈으로도 볼 수 있지만,
보물을 찾아 나선 모험가의 눈으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나는 보물을 찾아나선 모험가야.’
-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중에서
<연금술사>의 양치기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는 하나의 삶의 단계에서 다른 삶의 단계로의 이행의 여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양떼들과 함께 목초지를 떠돌고, 양털 가게의 소녀를 사모하던 산티아고의 삶이 종결되고, 꿈속에서 본 보물을 찾아 사막을 떠도는 새로운 산티아고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산티아고의 삶의 이행은 쉽지 않았다. 그가 낯선 도시, 탕헤르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린 경험은 전 재산을 털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과거의 삶의 종결과 새로운 삶의 시작 사이의 ‘중간지대’의 서막이 열리는 사건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무 것도 모르겠고, 혼란스러우며, 포기하고만 싶다. 그러나 그는 ‘도둑에게 모든 것을 털린 불행한 피해자’가 아닌 ‘보물을 찾아 나선 모험가’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러한 결심은 ‘크리스털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중간지대’를 성공적으로 보내는 경험으로 연결된다. 물론 크리스털 가게에서 산티아고가 일하지 않았더라면 사막에서 보물을 찾는 모험은 영원히 꿈 속에만 머물러야 했을 것이다.
윌리엄 브리지스의 개념으로 보면 양떼를 떠나 탕헤르로 향한 산티아고는 용기를 내어 ‘변화’는 택했지만 ‘전환’을 위한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크리스털 가게 점원으로 일하는 ‘중간지대’를 잘 거치면서 그는 삶의 전환에 성공하게 된다. 안달루시아에서 탕헤르까지의 2시간의 거리가 ‘변화’라면 크리스털 가게에서 일했던 1년의 거리가 ‘전환’이다.
이사를 가고, 이직을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은 변화이다. 이와 같이 변화란 상황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전환이란 이전의 삶과 새로운 삶의 다리 역할을 하는 중간 단계의 삶을 진전시키고 그 결과를 경험하는 일을 의미한다.
결국 2시간의 거리를 메꾸기 위해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산티아고의 사례와 같이 가시적인 삶의 변화를 진정한 삶의 전환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중간단계를 잘 거치느냐’ 라는 삶의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인생에서 20대의 시기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Bridge’ 역할을 하는 시기, 즉 중간지대일 것이다. 윌리엄 브리지스는 그의 책 <How to Live, 갈림길에서 삶을 묻다>에서 중간지대에 대해 이와 같이 이야기한다.
‘중간지대에서 우리는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 전환을 일으킨 변화의 요인에 상관없이 무엇인가를 생산해 낸다는 것을 의미하며, 중간지대는 절대적인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준다. 많은 사람들이 계획을 뒤엎어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지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변화 속에서 가능성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말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는 말과 같다. 30살을 코앞에 둔 어느 날, 친구들과 이런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 난다.
친구 A : “난 내 나이 30살이 되면, 모든 것이 분명해질 줄 알았어. 일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결혼도 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줄 알았지. 그런데 이 나이가 되도록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어. 여전히 혼란스러울 뿐이야.”
친구 B : “어른이 되면 안정적이 된다는 말 말이야. 그거 진짜라고 믿어? 난 그 ‘안정’이라는 말에 왠지 모르게 ‘단념’이나 ‘타협’이라는 말이 숨어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나이가 들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많은 것들이 굳어지지. 관계도, 일도, 습관도.. 어린 왕자에 나오는 표현처럼 너무 길들여지는거야. 그래서 안주해버리는 경우가 많지. 우리가 아직 이렇게 혼란스럽다는 것은 아직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일 수도 있어. 그래서 이건 어쩌면 좋은 신호야.”
중간지대란 혼란스러우나 사실은 풍요롭고 창조적인 상태이며, 순수한 에너지와 커다란 잠재력이 담긴 지대이다. 또한 풍부한 고독 속에서 내 안의 신을 만나는 지대이기도 한다.
중간지대를 겪는 것은 아이가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와 같다. 산티아고가 탕헤르에서 보낸 1년이 없었더라면 그는 팝콘장수처럼, 그리고 크리스탈 가게의 주인처럼 꿈을 이루기를 두려워하는 양치기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산티아고가 중간지대를 잘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결심, 즉 피해자의 눈이 아닌 모험자의 눈으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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