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화 이선형
- 조회 수 3108
- 댓글 수 6
- 추천 수 0
‘역동적 균형’이란 삶의 중요한 요소인 일, 가족, 시간, 돈의 균형을 잡는 것이 성공하는 삶을 위해 꼭 필요하며, 여기서의 균형은 단순한 산술평균적인 의미는 아니고 네 가지 요소가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게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는 내면의 평화와 보편적인 지혜를 따라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나름대로 이 지침을 따르려 애를 쓰며 30대를 보냈다. 삶의 의미를 찾고 인생의 목표를 세우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 속에서 성장하고 싶었고 가족의 소중함을 잃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러나 넘실대는 파도 위에서 멋지게 균형을 잡으며 서핑을 하고 싶었던 꿈은 점차 시들어가기 시작했고 나는 지쳐갔다. 현실의 파도가 거세게 나를 덮친 어느 한 순간, 나는 필사적으로 잡고 있던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고 내 꿈도 물거품처럼 순간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깊은 바다 속에서 부유하던 그 때, 현실과 유리된 잠시의 망각 속에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내가 다시 땅으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알고 있었다.
수면에 비치는 희미한 햇빛을 따라 떠오르면서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되물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던 걸까? 왜 행복하지 않을까?
끝없는 질문 끝에 나는 하나의 사실을 알아냈다.
일과 가족과 자아성취, 세 가지 모두가 내가 완벽히 해내야 할 숙제이자 의무이며 목표였으며, 이 각각의 성공이 바로 나의 성공이라고 여겨왔던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들을 서로 별개의 것으로 받아들였고 때로는 서로가 서로의 적으로 느껴지며 투쟁하기도 했다. 일에 짓눌려 있다가 가정으로 돌아갈 때는 아이들이 이미 잠들어있기를 바라기도 했고 책 한 권 편히 읽을 수 없는 현실을 지겨워하기도 했다. 회사 행사로 학부모총회에 가지 못할 때나 아이가 아파도 함께 있어주지 못할 때는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고민하기도 했다.
스스로 정한 세 가지 꼭짓점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좀 더 빠르지 못한 스스로를 책망하기도 하고 더 도와주지 않는 주변을 원망하기도 하면서, 시간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었고 나의 관심과 시간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주변에 둘러싸여 점점 탈진했던 것이다.
이 세 점은 스스로 삼각형을 만들었고 때론 정삼각형, 때론 이등변삼각형, 때론 직각삼각형으로 변화했지만 결코 서로 겹쳐지진 않았다.
이 삼각형 위에서의 내 생활은 외줄타기 같았고 선 밖의 것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나의 마음은 일상의 소소한 기쁨과 만족을 허용하지 않았고 일과 가족 외의 사람들과의 마음 나눔까지도 사치로 받아들이게 했다.
나를 둘러싼 세 면의 벽과 깨지 못한 유리천장 아래에 자신을 가둬왔고, 그 감옥을 인식한 순간 참을 수 없었고, 그 감옥을 벗어난 후에야 그것이 스스로 만든 감옥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알아낸 또 하나의 사실은 나의 감정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자아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자아가 바로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의 이성은 너무도 강력하게 나의 감정을 짓눌러왔기에 나의 감정은 가끔씩 폭발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내비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양극의 첨예한 대립은 나의 의식과 무의식을 갈라놓았고 훈련받고 스스로 길러온 나의 의식은 점점 더 강력해졌고 결국 무의식의 존재를 부정하기까지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 것이라고 자신해 온 나의 의식은 온갖 사회적 의무와 당위로 물들어 있었으며 그 자체가 속박된 상태였고 온전한 나의 것이 아니었다.
조셉 캠벨을 만나면서 나는 나를 지배해온 ‘할지니 용’을 만났다. 의무와 사회적 당위라는 불을 끊임없이 품어내며 나를 두렵게 했던 용이었으나 이제 사자의 삶을 원하는 내가 반드시 죽여야 할 내 안의 용이었다.
또한 내가 처음으로 넘어서야 할 대상은 이성에 의지하는 ‘배꼽 높이’의 기능인 ‘의지력’인 것이다. 이성을 최고로 생각하고 자아감을 최고로 여겨온, 안으로 안으로만 향해왔던 관심의 축을 돌리는 것이다.
나만의 이데올로기에 갇혀서 자아에 집착하던 마음을 비우고, 더 강렬한 삶의 신비를 직접 체험하는 것. 의식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하는 것.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되는 것. 삼각형이 아닌 원을 그리고 원의 중심을 잃지 않는 것. 세상이 만든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때론 자유롭게 그것을 넘나드는 것. 균형이 아니라 조화를 만드는 것. 내 안의 조화만이 아니라, 나와 타인의 조화를 함께 즐기는 것.
이것이 내가 가야할 길이며, 내 자신을 넘어, 내가 집착하는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남-타인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비로운 마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삶, 이것이 내가 찾아야 할 성배인 것이다.
나의 영혼이 하나하나 단계를 거쳐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욕망까지 초월하고, 이런 단계적 경험을 통해 내 마음의 중심을 의식하고 그리고 ‘나’와 ‘타자’가 사실은 둘이 아니라 한 생명을 나누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 내가 꿈꾸는, 나를 찾는 여행의 종착역이자,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