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 조회 수 3499
- 댓글 수 6
- 추천 수 0
박남준 시인을 만나던 날.
그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만들어 내기 위한 우리의 시간이 어려웠던 만큼 그도 그 시간 아주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가서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어금니라고는 말 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사랑니, 검지 손마디 한 마디 반을 삐죽이 짚어 내보이시며 ‘이만했다'네. 하며 웃으셨다. 치과를 개원한 이래 처음 보았다는 공룡의 사랑니 같았다는 어금니와 결별하는 과정을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 하셨지만 불과 며칠 전 까지도 고생을 하셨다고 하니 조금 더 서둘렀다면 우리는 시인님과 만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보이지 않는 안는 안도의 숨은 아직도 시인님을 만나고 이야기 하는 걸 즐기기 보다는 과제에 급급한 내 마음이 뒤뜰에 있는 주황색 금붕어 두 마리가 살고 있는 작은 연못에 비춰지는 것 같았다. 그제야 죄송한 마음이 사방에 튀겨놓은 팦콘같은 매화꽃처럼 가득했다.
말없이 ....... 흐르던 적막의 시간은 긴장의 시간 이었지만 이내 손 수 끓여주신 황차 한잔으로 남도에 흐르던 봄 기운마냥 따스하게 그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사진만 보고 제가 가서 시인님 집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싱크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오겠다고 썼던 댓글은 댓글로 끝났다. 그가 가지고 있는 포스에 눌려 참새도 내는 '짹' 소리도 한 마디 못하게 눌려 버렸다. 그는 맑은 미소와 부드러운 인상을 지녔지만 가지고 있는 기운은 엄청나게 강하다고 느꼈다. 이유는 분명했다. 나는 기운이 센 사람 앞에서는 말문이 열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차를 마셨다. 차는 이래서 좋다. 차를 앞에 두면 말이 없어도 그 자리가 자연스러워지고 풍요로워 진다. 차도를 아시는 분들은 차를 끓이는 煎茶(전차)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고 七椀茶歌(칠완차가)를 즐기려면 말없이 나를 바라봐야 한다는 걸 알고 계신다. 칠완차가를 간단히 소개해 보자면, 첫째 주발을 다 마시니 메마른 창자를 깨끗이 씻기고 둘째주발을 다 마시니 상쾌한 정신이 신선이 되려하네. 셋째주발에는 병골에서 깨어나고, 두풍이 나은 듯하네. 이렇게 차를 즐기며 나를 바라보면서 마시려면 말을 할 수 없음이다. 그래서 차도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는 말이 있다. 차도를 모르면 조용히 가만히만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난 중간이라도 되기 위해 조용히 있었다.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오자 약간은 불편해 하셨던 기색이 사라지며 주고받는 대화의 꽃이 차 속에 띄워주신 매화꽃처럼 활짝 만개한다. 항시 헤어질 쯤 아쉬움이 남는다. 시인님도 그러셨던지 아직 발표도 하시지 않은 에로 시 한편을 읊어주시며 가는 발목을 잡아 놓으신다. 분명 아쉬우셨던 게다. 모두에게 그의 영발이 담긴 한 줄의 글과 그림을 그려 주셨는데 두 권을 가지고 온 사람에게 또 책을 달라신다. 그는 정성스럽게 또 한 줄의 글을 남겨 주신다. 한권을 사가지고 갔던 나는 얼른 겉 스웨터를 걷어 올리고 하얀 티가 보이는 등허리를 돌려 댔다. 여기에라도……. 시인님은 한 마디 하신다. ‘지가 무슨 황진이' 라고 모두가 웃었다. 우리는 아쉬웠지만 돌아가야 하는 시간을 계산하며 일어섰다. 다음 졸업여행에 다시 오겠다는 인사를 남기면서 말이다.
올 때 만끽하지 못 한 섬진강이 바라보이는 식당에서 재첩 국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대충 넘겨 채우지 못한 점심의 허기가 몰려 왔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가는 동안 내내 저기 좀 봐 '너무 예쁘다' ! 를 연발하며 감탄했다. 벚꽃은 아직 다 피지 않았지만 매화와 살구꽃 개나리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고 가는 길, 우리는 많이 무너지지 않았지만 조금 씩 서로를 알아가며 조금 씩 조심스럽게 무너져 가고 있었다.
내가 받은 한 줄의 글, “오월. 바람을 부르는 청보리처럼 ......” 깊이 생각하며 돌아오는 길은 그리 멀지 않게 느껴졌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5212 |
[33] 시련(11) 자장면 한 그릇의 기억 ![]() | 앤 | 2009.01.12 | 205 |
5211 |
[36] 시련12. 잘못 꿴 인연 ![]() | 지희 | 2009.01.20 | 209 |
5210 |
[38] 시련 14. 당신이 사랑을 고백하는 그 사람. ![]() | 지희 | 2009.02.10 | 258 |
5209 |
[32] 시련 10. 용맹한 투사 같은 당신 ![]() | 앤 | 2008.12.29 | 283 |
5208 |
[37] 시련. 13. 다시 만날 이름 아빠 ![]() | 앤 | 2009.01.27 | 283 |
5207 |
[28] 시련(7)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 | 지희 | 2008.11.17 | 330 |
5206 | 칼럼 #18 스프레이 락카 사건 (정승훈) [4] | 정승훈 | 2017.09.09 | 1817 |
5205 | 마흔, 유혹할 수 없는 나이 [7] | 모닝 | 2017.04.16 | 1839 |
5204 | [칼럼3] 편지, 그 아련한 기억들(정승훈) [1] | 오늘 후회없이 | 2017.04.29 | 1864 |
5203 | 9월 오프모임 후기_느리게 걷기 [1] | 뚱냥이 | 2017.09.24 | 1914 |
5202 | 2. 가장 비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 아난다 | 2018.03.05 | 1921 |
5201 |
7. 사랑스런 나의 영웅 ![]() | 해피맘CEO | 2018.04.23 | 1934 |
5200 |
우리의 삶이 길을 걷는 여정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 | 송의섭 | 2017.12.25 | 1940 |
5199 | 서평 - 음식의 위로 [2] | 종종걸음 | 2020.07.21 | 1955 |
5198 | 나의 하루는...? [5] | 왕참치 | 2014.09.15 | 1960 |
5197 | [칼럼 #14] 연극과 화해하기 (정승훈) [2] | 정승훈 | 2017.08.05 | 1961 |
5196 | 칼럼 #27)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사는 법 (윤정욱) [1] | 윤정욱 | 2017.12.04 | 1962 |
5195 | 1주1글챌린지_'아이와 함께 하는 삶'_01 [9] | 굿민 | 2020.05.24 | 1962 |
5194 | 감사하는 마음 [3] | 정산...^^ | 2014.06.17 | 1964 |
5193 | #15 등교_정수일 [10] | 정수일 | 2014.07.20 | 19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