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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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맞은 하동은 이제사 기지개를 켜는데
마음 급한 상춘객은 꽃 피우라 꽃 날리라
우격다짐을 한다
네 식구 가족여행이 일 때문에 취소되고 딸아이와 둘이서 금요일 밤에 하동을 향해 떠났다. 전날의 숙취에다가 360km가 넘는 거리를 운전하다 보니 눈이 감길 듯 말 듯. 참다 못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30분을 잤다. 5시간의 장거리 여행이 아이에게는 처음이라 이동시점을 밤으로 잡았는데 고맙게도 출발부터 도착까지 내리 숙면이다.
남해가 바라보이는 펜션에서 하룻밤을 묵고 딸과 평사리 공원에서 오전 나절을 보냈다. 섬진강을 보니 왜 섬진강인줄 알겠다. 풋풋한 아낙의 향내로 바람을 불어오고 잿빛 산하위로 새들이 V자를 그리며 속 깊은 이야기들을 소삭거린다. ‘한강 촌놈’ 아빠를 닮아 아이는 “바다가 아닌데 모래가 있네.“ 라며 쭈그리고 앉아 마른 갈대줄기를 휘젓는다.
풍경은 없고 풍경 보러 나온 행인을 풍경 삼아 화개장터 한자리를 잡고 진철, 웨버의 후배와 서먹한 한술을 뜬다. 한쪽은 까무잡, 한쪽은 뽀얗다. 웃으니 하얀 피부가 파르르 떨린다.
진철이 일러준 ‘최부자댁’이 식당인 줄 알고 잠시 헤매다가 최참판댁 너른 들판에서 일행을 만났다. 다들 얼굴에 색기가 발랄하다.
시인의 집에 이르는 길은 매화향이 그득하다. 마당에 나와 방문객을 맞는 시인의 품새가 사진 그대로다. 소박한 옷차림에 손가락에 문 담배가 수줍은 시인의 미소가 되고, 마중인사가 되고.
앞선 방문객들이 물러가기를 기다리며 악양산장 엉덩이를 내려다보며 꽃대궐에 앉았다. 벚꽃은 능선을 이루고 누군가는 노래에 취해, 누군가는 꽃에 취해, 누군가는 사람에 취해 그렇게 물들어 간다.
진중한 시인은 써니 누님의 흰소리 열 번에 무너졌다. 서화담과 황진이도 시작은 흰소리일까.
쑥떡, 좌경숙 씨, 공룡시대 어금니, 황차, 동네 밴드, 아침이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술친구들, 도현이, 동종업종 종사자, 남주 형, 창훈이, 선형의 겨울풍경 낭독, 애로시 답사가 이어지고, 처마 밑 풍경소리는 변소를 돌아, 동산을 돌아 한 구비를 돌아 꼬리를 물고 흐른다.
시인은 “아, 어렵다.”
『흩어진 것을 묶기도 하고 때로 묶여 있는 나를 풀어 놓기도 하는 끈 또는 매듭』, 박상현 님께
씨익 웃으시더만 남는 책 있으면 줘 보란다.
『그대안에 담겨 있는 연두빛 세상』, 박상현 님께
화분 안의 새싹잎이 참 곱다.
시인과의 만남답게 그날의 풍경은 주로 메타포. 이쪽에서 눙치면 살을 붙여 큭큭큭, 저쪽에서 농치면 뼈를 발라 헐헐헐~
달궈진 양철지붕위로 노을이 물들고 아빠 따라 나선 아이는 세시간을 자고 배웅소리에 눈을 뜬다. 효녀다.
개울소리 졸졸졸, 강아지는 멍멍멍~~
사월은 잔인한 달.
움추린 언어들은 잠깐 온기에 호박처럼 짓물러 다만 흘러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