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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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에게
그대와 내가 만난 지 벌써 10개월이 지났구나.
아직 해가 저물기 전, 이른 저녁에 대학로 한 카페에 들어가 호가든 맥주 한 병과 김민기의 ‘봉우리’노래를 시켰다.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거기 부러진 나무 등걸에 걸터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지난 시간 동안 우리는 보이지 않는 거창한 봉우리를 향해 오르려고 애썼는지 모른다.
진실로 치열하게 살지 못했으면서도 우리의 마음은 왜 그렇게 조급했는지 모르겠다.
직장을 다니면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모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뭔가 보이는 듯하다가도 자욱한 안개에 휩싸이고, 이제 다 올라온 것 같은데 아직 고갯마루였다.
서로를 위해 헌신하지 못했으며 에너지를 한 곳에 집중하지 못했다.
너도 알다시피 모임을 접으려고 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왜 주저할까? 내가 괜한 짓 하는 거 아닌가? 선한 의도로 출발했건만 왜 우리는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었는가?’
나는 아주 단순하지만 분명한 깨달음을 얻었다.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그저 내 인생 내 방식대로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보내자고 다짐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삶은 결코 만만하지 않고 나에게 술 한잔 그저 사주지 않는다.
일상이라는 괴물은 우리를 자꾸 위축시키고 초라하게 만든다.
나의 일상도 아직까지 그렇구나.
새벽에 일어나기로 결심한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수십 년간 묵은 패턴을 한 순간에 바꾸어 새벽을 깨우기가 쉽지 않다.
차 안에서도 졸기 일쑤고 몸은 갑절로 피곤하다.
저녁에 술 약속이 있으면 다음 날은 잠의 유혹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일찍 일어난 날의 세상은 아름답고 뿌듯하다.
어렵고 힘들다고 현실을 외면하거나 현실에서 도피하지 말자.
변화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한다.
다시 한번 내가 주도하는 멋진 하루를 만들어가자.
그런 하루 하루가 모이면 우리 만의 세상이 열리지 않겠느냐?
친구야.
그렇다고 봉우리에 오르려고 너무 애쓰지는 말자.
삶은 전투가 아니다.
인내와 고통도 때로는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살기 버겁다.
정상을 향해 질주하다 보면 일상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
삶의 행복은 먼 훗날 많은 돈과 명예를 이루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우리 곁에서 지나가고 있는 지 모른다.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작은 행복을 찾을 수 있는 현명함을 구하자.
다시 ‘봉우리’의 가사를 전하며 이 편지를 마친다.
평범한 진리를 낮은 목소리로 큰 울림을 전하는 이 노래가 너무 좋다.
‘하여 친구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 속에 좁게 난 길.
높은 곳에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야!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추신) 우리가 다시 만난 4월 4일은 공교롭게도 부활절이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