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송창용
  • 조회 수 3012
  • 댓글 수 8
  • 추천 수 0
2010년 4월 16일 10시 20분 등록

내 삶의 거울

 

  “그대는 왜 울고 있나요?”
요정들이 물었다.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어요.”
호수가 대답했다.

“하기 그렇겠네요. 그의 아름다움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었을 테니까요.”
요정들이 말했다.

“나르키소스가 그렇게 아름다웠나요?”
호수가 물었다.

“그대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르키소스는 날마다 그대의 물결 위로 몸을 구부리고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잖아요!”
요정들이 놀라며 반문했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던 호수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는 지금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지만, 그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저는 그가 제 물결 위로 얼굴을 구부릴 때마다 그의 눈 속 깊은 곳에 비친 나 자신의 아름다운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가 죽었으니 이젠 그럴 수 없잖아요.”

-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중에서 -


변화경영연구소의 첫 수업은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다른 이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죽이는 일이다. 내가 죽기 전 신이 내게 10분의 시간만을 허락한다면 나의 장례식에 참석한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나의 삶을 살아보겠다고 여기에 온 사람들을 처음부터 죽여 놓고 시작하니 어찌 보면 잔인하다 싶다.

올해 첫 수업도 어김없이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나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지금까지 울지 않는 이를 본 적이 없다. 저마다 사연이 없는 사람이 없었고, 애증이 없는 사람이 없었다. 미안해하지 않은 이가 없었고, 사랑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죽음을 거부하며 끝까지 삶에 집착하는 이 또한 없었다. 모두가 죽는 연습을 미리 한 양 제대로 죽었다. 죽음에 비추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난 자신을 받아들였다.

죽음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영원한 이별이기에 앞서, 단 하나뿐인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그러니 집요하리 만치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죽음이 어느 때 나를 찾아올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죽음의 방향에서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다. 사는 일은 곧 죽은 일이며, 삶과 죽음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나의 첫 수업을 돌이켜보면 나는 제대로 죽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의 장례식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결과다. 10분 뒤에 죽기가 싫어서,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지금 죽기에는 너무나 억울해서 내 멋대로 40년은 더 살고 죽겠다고 때를 썼다. 나의 미래를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미느라 유서는 너저분해지고 너덜너덜 해졌다. 아쉬움도 없었고, 안타까움도 없었고, 삶에 대한 애착도 없었다. 한마디로 제대로 죽지 못했다.

그 이후로 죽음이란 육체적인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 또한 죽은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저명한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삶이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라 단언했다. 제대로 죽어야 잘 사는 것이다. 삶의 거울은 죽음이다. 삶은 죽음이 있기에 더 풍요로워지고 아름다운 것이다.


자신의 아름다움은 보지 못하고 다른 이의 삶을 좇아가느라 허우적거릴 때마다 삶의 거울을 꺼내어 보는 것만으로도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이 거울은 나르키소스의 호수처럼 잃어버려 울 일도 없고 심지어 깨질 염려도 없으니 신의 주신 귀중한 보물이라 하겠다. 얼마나 잘 살았는가는 얼마나 자주 이 거울을 들여다보는가에 달려있는 셈이다.

 

IP *.93.112.125

프로필 이미지
재엽
2010.04.16 14:09:36 *.216.38.10
갑자기 조셉 캠벨이 한 말, 
"생명이란 다른 생명들을 희생시켜 살아가는 것이다."
라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우리 자신의 생명은 다른 사람의 희생에 근거한 것이라는 것. 타인의 장례식에 나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게 되고, 그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 캠벨식으로 다시 말해보자면, 인생의 진정한 의미란 살아 있음 바로 그것, 이라는 것이죠. 패러독스 경영 칼럼--- 앞으로 천 개의 눈을가지고 볼께요^^ 함께가요. 우리.   
프로필 이미지
송창용
2010.04.16 20:17:19 *.215.121.114
공감하는 사람이 있어
고개를 끄덕여가며 대화를 나눌 수 있어
함께 가며 격려할 수 있어
행복하였네.


프로필 이미지
명석
2010.04.17 11:58:48 *.209.229.75
ㅎㅎ 해마다 죽다 보니 이제 정말 잘 죽을 수 있게 되었나 봐요.^^
'삶'에 대해 한 '소식' 들은듯
창용님 글이 반짝반짝 살아있네요!
프로필 이미지
송창용
2010.04.18 00:37:32 *.215.121.114
글쓰기 칼럼 참 좋습니다.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쭉~~ 부탁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뽕공주
2010.04.18 06:47:48 *.155.253.44
입학여행을 떠날 때는 해마다 유언장을 써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장례식을 치르고 나면  더 착해지려고 하는 저를 봐요.ㅋㅋㅋ
프로필 이미지
송창용
2010.04.19 08:57:51 *.93.112.125
얼마나 더 착해지시려구.....
뿅공주를 보면
'동심이란 이런 것이구나' 매번 깨닫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활약(?) 기대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한정화
2010.04.18 12:52:04 *.72.153.43
내 삶의 거울......
그림 구상하다가 거울 속에 비친 세계가 현실을 실제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이거 어때요? 모순 같나요? 자신을 보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가 자신을 잘 비춰주지 못하거나 혹은 너무나 적나라하게 비추거나.

거울에 자신이 비친다고 하는데, 거울을 보는 자신(정확히 말하면 '뇌')은 거울에 비친 그대로를 보지 않는다고 하네요. 보고 싶은 것을 본다라고 하더군요.[일급 비밀, Top Secret] 에서 미래의 SCI에 해당하는 조직에서 뇌스캔해서 거울에 비친 모습을 찾아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이것을 인용해서 스토리를 하나 만들었더군요.
연구원 전체모임중에 이동하는 차에서 본 영화에서는 '전우치'에는 청동거울(자신의 본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에서 본질을 비춰주죠. 초랭이는 자신의 본질을 거울로 확인하잖아요. 서유기에서 요괴들도 청동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더군요. 외모를 바꾸어도 본질을 드러내버리는 거울. 히히히.

참 모순이죠. 하하하. 이걸 그림에 넣어볼까 해요.
프로필 이미지
송창용
2010.04.19 08:59:25 *.93.112.125
무거운 주제로 너무 고민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어떤 그림이 나올지 궁금해진다.
기대할께.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212 [33] 시련(11) 자장면 한 그릇의 기억 secret [2] 2009.01.12 205
5211 [36] 시련12. 잘못 꿴 인연 secret [6] 지희 2009.01.20 209
5210 [38] 시련 14. 당신이 사랑을 고백하는 그 사람. secret 지희 2009.02.10 258
5209 [32] 시련 10. 용맹한 투사 같은 당신 secret [2] 2008.12.29 283
5208 [37] 시련. 13. 다시 만날 이름 아빠 secret [3] 2009.01.27 283
5207 [28] 시련(7)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secret [8] 지희 2008.11.17 330
5206 칼럼 #18 스프레이 락카 사건 (정승훈) [4] 정승훈 2017.09.09 1661
5205 마흔, 유혹할 수 없는 나이 [7] 모닝 2017.04.16 1663
5204 [칼럼3] 편지, 그 아련한 기억들(정승훈) [1] 오늘 후회없이 2017.04.29 1717
5203 9월 오프모임 후기_느리게 걷기 [1] 뚱냥이 2017.09.24 1746
5202 우리의 삶이 길을 걷는 여정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file 송의섭 2017.12.25 1750
5201 2. 가장 비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아난다 2018.03.05 1779
5200 결혼도 계약이다 (이정학) file [2] 모닝 2017.12.25 1781
5199 7. 사랑스런 나의 영웅 file [8] 해피맘CEO 2018.04.23 1790
5198 11월 오프수업 후기: 돌아온 뚱냥 외 [1] 보따리아 2017.11.19 1796
5197 (보따리아 칼럼)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생각은? [4] 보따리아 2017.07.02 1798
5196 12월 오프수업 후기 정승훈 2018.12.17 1799
5195 일상의 아름다움 [4] 불씨 2018.09.02 1806
5194 칼럼 #27)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사는 법 (윤정욱) [1] 윤정욱 2017.12.04 1809
5193 [칼럼 #14] 연극과 화해하기 (정승훈) [2] 정승훈 2017.08.05 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