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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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 속의 익숙하지 않은 것을 찾아서
1
사실,
세상일에 별 관심이 없다.
어찌보면 무심하고 부정적이 될 수 있겠으나,
달리보면 가장 명확하고 분명하게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하루는 언제나 거의 똑같다.
나이와 관계없이, 계절과 관계없이,
그리고 머무는 곳과 관계없이
거의 비슷하게 이루어진다.
내 머리에 색깔이 좀 더 하얗게 되고,
내 주위의 환경이 바뀌고,
마주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변할지는 몰라도,
나는 늘 거기에 있고 그 모습, 그 태도로
행동하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일지는 모르지만,
그런 나는 늘 똑같이 있기 위해서는
늘 변해야만 했다.
방법을 바꿔야 했고, 내용을 바꿔야 했고, 표현을 바꿔야 했다.
오늘도,
나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그래서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가 다른 곳에서
나는 같은 하루를 살고 있다.
나는 늘 변하고 있다.
표정을 바꾸고
차림새를 바꾸고
언어을 바꾸었다.
그래도 나는 같은 하루를 살고 있다.
2
사실,
세상 어디를 가도 통하는 것이 있다.
모든 것이 달라져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인내심과 성실함이 그것이고
관심과 배려가 그것이다.
여기서도
엉터리가 눈에 뜨이고
자질이 부족해서 눈치를 보며 부러워하는 이가 보이고
거만한 눈길을 부리는 사람도 있고
망설임없이 손을 내밀며 미소짓는 사람도 있다.
그래,
하늘아래 사람 사는 곳에
사람 사는 것이
별수 있으랴
3
내가 생각하는
자유란 늘 질서를 포함한다.
타인에게 강요되지 않고
스스로 밀리거나 쫓기지 않을 것일 뿐이다.
그것은 더 크고 더 다양한
규칙과 패턴 속에 놓이는 것
곧
또 다른 질서일 뿐이다.
그래서
질서에 갇히는 자유는 불행하지만
질서를 잃어버린 자유는 위태로운 것이다.
질서란
관계를 균형잡히게 해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하는 것
그래서 아름답다고 하지 않는가?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으나
모든 것이 정해져 있고
무언가를 위해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그것을 향해 이루어지는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아서
언제나 행하고 있는 것이 되는 것
그래서 대 자연은
가장 자유롭지만 영원한 질서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의 삶은 변하지 않지만
늘 새로워지고 있다.
****
달력을 보니, 벌써 한 달 보름을 넘겼다. 무엇을 했냐고 묻는다면 똑 같은 답을 할 수 밖에 없다.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정리하고 사람들을 만났다.
지금 난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롭게 익숙해야 할 것을 찾는 것이 아니고 익숙한 것 속에 있는 익숙하지 못한 것을 찾아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영상 자료와 대화, 그리고 생각을 통해서 정리했던 것들을 눈으로 직접 보고 칼을 들고 직접 경험해서 감각으로 확인을 해야 하는 것일 뿐이다.
펜싱에 관한 것들은 예상했던 대로이고 거기다 보태어 좀 더 정확한 상황을 알게 되었고 조금은 더 깊이 있게 알게 되어 새로운 문제해결 방법들을 생각해 냈기 때문에 ... 성과는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나이를 물으면 이젠 ‘스물 여덟’이라는 말 대신에 ‘서른 여덟’ 이라고 해야 된다는... (내가 스물 여덟살 된 선수들과 게임을 할 수 있었으니까.. 체력이 된다는 이야기지..요... 근데 그게 이젠 아니라는 이야기죠... 쩝) 것은 좀 아쉽기는 하지만... 준치는 썩어도 준치인께...
컴퓨터가 좀 문제가 있어서 워드프로세서가 저장이 되지 않다가 나중에는 아예 입력마저 되지 않아서... 재동을 좀 더 귀찮게 굴 것을 하는 생각이 간절했었다. 하여간, 어찌 어찌 해서 한 달 보름만에 다시 컴퓨터를 정리하고 글을 쓰고 저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게 간간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것도 언제 끊어질까 몰라 답답하기는 매 한가지이기는 하지만... 최근에 윗층에 새로 사람이 들어왔는데 그가 무선 인터넷을 하고 있어서 내가 산 것과 상관없이 자동으로 윗층의 무선으로 연결이 되기도 한다.
글로벌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젠 뭐 지구상 어디에 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준비가 되어 있느냐가 중요한 것같다. 전화도 그냥 사용할 수 있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니 그저 숨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고 손을 직접 맞잡을 수 없고 꼭 껴안고 싶은 사람들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 일뿐,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래, 우리는지역구 를 넘어선지 오래고 전국구를 넘어 이젠 세계구다. 근께 글로발이 아닌가...
사실, 나는 정말로 새로운 것도 새로운 사람도, 새로운 환경도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내겐 변경연만 있으면 살아가는 데 별 다른 문제가 없다.
다른 곳을 기웃거릴 필요도 없다. 온갖 사람들이 있고, 더구나 학구적이고 창조적이고, 그리고혁신적인 사람들, 거기다 무엇보다도 거기모인 사람들은 인문학을 좋아해서 누구보다 더 인간적인 사람들이지 않는가... 요즈음에 만나기 힘들고, 또 쉽사리 남에게 속보이기 힘든,,, 데 만날 수 있는 괜찮은 그런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보이지 않는 질서를 이끌고 있는 ... 스승님...
그 곳을 열심히 기웃거리고 칼럼과 이야기들 속에서 가르쳐 준것만 제대로 실천만 해도 내 삶은 충분히 변화가 있었다. 나로서는 정말로 고맙고 감사한 곳이다.
사실,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 있지 않은가... 말이다.
***
유감스럽게도 변경연에 들어 온 목표 중에 하나가 글을 잘 쓰는 것이었는데,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글을 잘 못쓴다는 것이다. 그리고 잘 쓰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고, 그것을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소위 재능이 부족하면 노력을 더 많이 해야 되는 것인데 그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그건 사실이니까,,, 그렇다고 책을 쓰는 것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책을 쓰지 않고 그래도 뭔가 ... 남들이 잘 안되는 것중에 필요한 것을 그러면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즈음, 전략이야기 와 한명석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과 연구원들의 칼럼들을 꾸준히 읽고 열심히 생각하면서 괜찮은 생각들을 계속 정리하고 있다. 컴퓨터가 안 돼서 노트에 손으로 꾸준히 적어가며 연습하고 있다. 그건 또 로이스가 주관하는 모닝페이지에서 배웠다.
몇가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현장에 있었고,
실제 경험한 근거있는 설명과 이야기들.
글로벌한 것, 경쟁적인 것,
이겨야만 하지만 그러나 인간적이어야만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통섭을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너무 많이 했다.
그 개별성을 잃지 않은 전체성에 대해서 내가 늘 관심을 갖고 그리고 해결하고 싶어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윌슨의 논의는 ... 조금 그래, 차라리, 어성천, 법수치를 통해서 조직과 개인을 통합하는 스승님이 더 통섭적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더 사실적이고...
100일을 기약하고 나왔지만,,, 그거야 늘 상징적인 것이고, 만(萬)번의 법칙이 아니라 만(滿)번의 법칙으로써 내가 써왔던 충분할 만큼 적절한 날을 여기 머무르면 된다고 생각한다.
.
.
.
.
주제는,,, 끙 나의 주제는,,, 무엇인가?

나는 늘 똑같이 있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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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변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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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주제가 찾아지기 전에는 오지 마라.
밥이라는 주제를 찾아 이국만리 떠난 피붙이 형제는 그래서 돌아오지 않았다.
오래 그리움의 존재에 대해 무기력했던 이는 이제 몸둥이를 추슬러 나름의 길 떠남을 이해하리니.
밥보다 무서운 것, 서러운 것, 두려운 것, 더러운 것, 치열한 것, 떨리는 것, 생생한 것, 오묘한 것이 무엇인지
더 늦기 전에 몸소 깨우쳐야 함을 알게 되리라.
그러므로 길 나선 자여, 변하지 않았거든 오지 말며 돌아올 필요가 없는 것 또한 확실히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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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정말로 새로운 것도 새로운 사람도, 새로운 환경도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내겐 변경연만 있으면 살아가는 데 별 다른 문제가 없다.
다른 곳을 기웃거릴 필요도 없다. 온갖 사람들이 있고, 더구나 학구적이고 창조적이고, 그리고 혁신적인 사람들, 거기다 무엇보다도 거기 모인 사람들은 인문학을 좋아해서 누구보다 더 인간적인 사람들이지 않는가... 요즈음에 만나기 힘들고, 또 쉽사리 남에게 속보이기 힘든,,, 데 만날 수 있는 괜찮은 그런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보이지 않는 질서를 이끌고 있는 ...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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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을 열심히 기웃거리고 칼럼과 이야기들 속에서 가르쳐 준 것만 제대로 실천만 해도 내 삶은 충분히 변화가 있었다. 나로서는 정말로 고맙고 감사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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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 있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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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살아가는 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을 위해 왜 살아가는가를 알아야 할 일이다.
그로써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인지를 꼼꼼하게 남길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점령한 시간에 대한 예의이며, 의미이고 역사이다.
내가 존재하는 그리고 존재했던 누군가에게로 이어질 존엄성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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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기에
내겐 이곳으로 충분했다.
아니 어쩌면 과분한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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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마치기에는
내겐 이곳으로 충분하다.
아니 어쩌면 내겐 과분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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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으로 충분하다.
내 삶을 마치고 내 영혼을 묻기에는
어쩌면 내겐 과분한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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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우리들에겐 아직 너무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다.
그것은 이미 정해진 일들로서 기록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생명이 붙어있는 날까지 소임을 다해 완성할 일이기도 하다.
시인이 새겨둔 싯귀들을 나는 확인하고 증거할 것이다.
내게, 내 사랑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변경을 찾아와 노니는 벗들에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