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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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올 거야.’
그는 서둘렀다. 조바심이 나서 동이 트기도 전에 약속한 장소로 나갔다. 약속시간이 다가와도 여인은 나타날 기미조차 보이질 않았다. 새벽부터 기다린 탓에 잠도 몰려오고 속도 쓰렸다. 또 속았다는 후회가 밀려오자 자책감마저 일었다.
‘나는 세상 물정을 너무 몰라. 혼자 독립하기에는 아직 멀었나봐. 아마 그 여자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벌써 황금을 갖고 멀리 도망갔겠지. 이제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지. 그리고 도둑맞았다는 사실은 아버지에게 어떻게 이야기하지. 또 형들은 아직 어리다고 나를 놀릴 텐데. 아, 모르겠다.’
점점 자포자기 심정으로 약속시간을 기다릴 즈음, 저 멀리서 그 여인이 걸어오는 게 아닌가. 게다가 잃어버린 배낭까지 어깨에 메고서.
여인이 말했다.
“많이 불안했나요?”
셋째는 반가운 얼굴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슴을 졸였습니다.”
여인이 이해한다는 듯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자. 여기 배낭이 있습니다. 당신의 물건을 찾아왔으니 약속대로 그 물건의 반을 주시지요. 긴히 쓰고 돌려드리겠습니다.”
셋째는 궁금해 하며 여인에게 물었다.
“약속은 지켜야죠. 그런데 어떻게 내 물건을 찾았는지 그 내막을 물어도 될까요? 더구나 여인의 몸으로 험한 도둑을 상대하기가 만만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오.”
여인은 멋쩍은 듯이 어깨를 으슥하며 대답했다.
“사람은 누구나 욕심이 과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를 가져도 하나를 더 갖고 싶은 마음이 도둑의 욕심이지요. 여관의 주인에게 찾아가 슬쩍 이야기 했지요. 어제 밤에 묵은 젊은이가 하는 말을 얼핏 들었는데, 황금이 너무 무거워 한꺼번에 들고 갈 수 없어 두 덩어리는 여관 뒤편에 묻었고, 나머지 두 덩어리는 다른 나무에 묻었노라고, 그리고 오늘 밤 나머지 두 덩어리를 여관 뒤편에 함께 묻고 다음날 찾아 떠날 거라고 말입니다.
그 다음날에 여관 뒤편에 가보니 황금 두 덩어리가 고스란히 놓여있지 않겠습니까. 그 길로 황금을 들고 나왔지요. 여관 주인이 나머지 황금도 차지하려는 지나친 욕심에 훔친 황금을 제자리에 갖다 놓은 것이지요.”
셋째는 여인의 지혜에 탄복하며 약속대로 황금 한 덩어리를 선뜻 내어주었다. 갚는다고는 했지만 애당초 잃었던 물건인지라 괜찮다며 헤어졌다. 배낭은 가벼워졌어도 마음은 그득하게 채우고 집으로 향했다.
상인은 매우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셋째는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나누어 줄 재산은 없구나. 대신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물건을 너에게 주겠다. 이 항아리를 받아라. 이것을 너의 찻숟가락으로 삼거라.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아라. 놓쳐버리는 행복이 무수하다. 행복은 담는 게 아니라 누려야 한다. 지금 누리지 못하는 행복이라면 그것은 불행이니라. 더불어 다른 이와 함께 누린다면 더할 나위 없더구나. 네게 남길 재산은 이 가르침뿐이다.”
셋째는 항아리를 받아 슬쩍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항아리 속에 황금 덩어리가 있네요?”
중요한 얘기를 깜빡했다는 듯이 상인은 서둘러 말했다.
“한 여인이 멀리서 여기까지 왔었단다. 너에게 진 빚이라며 놓고 가더구나. 요긴하게 잘 썼다는 말도 남기면서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셋째는 황급히 일어서며 물었다.
“그 여인이 떠난 지 얼마나 되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