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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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의 터닝 포인트
터닝 포인트는 사람에게서 온다, 나쁜 것도 좋은 것도. 나의 어린 시절에는 사람과 관련된 나쁜 기억이 많다. 나는 어릴 때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악하다고 생각했었다. 그 이유는 너무 많지만, 몇 가지 예로는 집의 가정부 언니와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있다. 어릴 적 우리 집에서 일하던 가정부 언니는 자기 자식을 하천에 버리고 도망왔었다. 사악했던 그녀는 내가 사랑하던 강아지를 본인의 부주위로 내 눈앞에서 죽게 만들고서도 자신은 아무일도 없는양 코를 골고 잤었다. 그 일 때문에 아마도 그 무렵부터 사람들을 무척 미워하고 동물에 집착하게 된 것 같다. 얼마 후 그녀가 버리고 온 아기를 동네 개가 찾아 물고 다녀 수사가 시작되었고, 그녀는 우리 집에서 숨어 지내다 결국은 잡혀서 우리 집에서 수갑을 차고 끌려 갔다. 어릴 때였지만 속이 후련했다. 또한 사람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인데 같은 반이었던 한 아이를 그 당시에 임신시켰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그 일로 나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어 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살면서 싫다고 피할 수 없는 것 역시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나의 사람에 대한 불신이 회복되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랬던 내가 이제 사람이는 얼마나 좋은지 또 사람의 상처는 사람만이 치유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것은 나에게 좋은 의미의 터닝 포인트를 제공해 준 또 다른 분들 덕분이다. 나에게는 인도 여행에서 만난 좋은 분들이 있다. ‘관계를 통한 성장’ 을 이야기 할 때 나의 삶을 멋진 인생으로 다시 살게 만들어 준 그분들을 빼 놓을 수 없다. 5년 전 가족을 동반 하지 않고 처음으로 혼자 인도 여행을 떠났다. 그 당시 나는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얻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래서 사람이 아닌 배움과 학문을 파고들었던 시기였다. ‘성공’을 위해 지식을 얻으러 떠난 여행이었다. 하지만 나는 동행했던 그분들 속에서 내가 잃었던 사람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다시 새롭게 얻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나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 :
It is the time when an important change starts to happen.
직역 그대로 ‘내 인생의 중요한 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때’로 다가왔으며, 그것이 이번 여행이 된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음이 느껴졌다. 그 느낌은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소름 끼치도록 더욱 더 강해졌다. 내 인생의 반전을 위해 미리 짜놓은 각본 같았다. 누군가의 이끄는 힘으로 모래에 찍힌 발자국을 머리도 들지 못한 채 따라가고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요가 공부와 명상, 이것이 내가 알고자 하는 전부인줄 알고 떠났다. 인도 사람들이 몸이 유연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기후나 음식의 영향일까? 명상을 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일까? 궁금증으로 꽉 찼었다. 마음에는 욕심이 가득했는데, 저녁 자기 소개 시간에 ‘욕심을 버리러 왔습니다’ 하고 뻔뻔하게 말은 잘했다. 말로는 나를 숨길 수 있었으나 몸은 나를 그대로 드러냈다. 8일째 화장실을 못 갔다. 먼 나라 낯선 의사에게 몸을 맡기고 참 많이 울었다. 꼬부라진 애벌레 모양새 같았다. 나의 몸의 오물 하나 제대로 버리지 못하는 내가 욕심을 버리러 왔다니 기가 막혔다. 명상으로 나를 찾겠다는 나는 남을 통해 나를 찾아갔다. 깨달아 가는 과정은 너무 아팠다. 몸살의 고통까지 얻어 진통제를 두 박스나 주워 삼켰다. 하지만 누워 있거나 아프다 할 시간이 없었다. 내게 찾아온 인생 반전의 시간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주는 사랑과 용기는 나로 하여금 아픔을 이겨 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 힘은 대단했다. 삼일 밤을 2시간만 자며 내 생각을 정리했다. 감히 내가 결론을 내보았다. 여러 사람 속에서 느끼고 반성하며 배워 나가며 나를 찾는 것이 명상이고, 요가는 잘 먹고, 잘 싼 후 얻는 선물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이것은 책에 나온 요가, 명상의 정의가 아닌, 내가 느낀 경험의 정의였다.
그랬나 봅니다.
이전 여행에서 온전히 홀로 이고 싶었던 저의 입을 열게 하신 분들.
춤을 추게 하고 노래를 부르게 했던 분들.
글을 쓰게 이끄는 분들.
알몸으로 모두를 대할 수 있게 하셨던 여행 가족님들.
모두가 서로를 보듬어 주는 내 핏줄과도 같음을 깨달았습니다.
많이 아팠지만 많이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받은 사랑은 차고도 넘쳤습니다. 넘치는 사랑을 나누어 주며 살겠습니다.
이렇게 적혀 있는 명상기를 다시 읽으면서 나의 인생 반전에 도움을 주신 분들 중 몇 분을 소개 하려 한다. 전국 팔도 괴물은 다 모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언니들은 기가 세다 못해 입에 성냥만 그어 대면 불이 붙을 것 같았다. 오라버니들은 하산을 앞둔 반 대머리 도사님들의 모습이었다.
사례 1- ‘시바’ 신도 웃게 만들 그녀
그녀는 동화 작가이다. 사십 초반에 대학을 갔다. 문예 창작을 전공하였다. 사십 중반에 동화 출판계에 최고상인 ‘황금 도깨비’ 상을 받으신 분이다. ‘늦지 않았다’를 보여준 굴곡 심한 그래머 작가이다. 나에게 늘 ‘너도 할 수 있다’ 라는 용기를 주신 분이다. 그리고 내가 뭘 해도 다 예쁘다는 칭찬으로 나를 춤추게 해 주었다. 그녀가 입을 열면 우리는 배꼽을 잡아야 한다. 정말 재미있고 유쾌한 그녀는 오십이 넘었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사는 게 왜 이라노? 힘 빠져서 안 되것다.” 올해 대학원에 진학한 그녀는 나의 인생의 모델이다.
사례2- 그녀가 지나간 자리는 바람이 인다
정열의 대명사 그녀는 늘 아침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업무에도 놀아야 한다는 주장을 가지고 있다. 모임이 있으면 새벽이라도 택시를 타고 달려온다. 쉬이잉~ 해외에는 다음 날이라도 혼자 비행기로 왔다 하루라도 놀고 비행기를 타고 돌아간다. 가끔 대구에서 전화가 온다. ‘지금 KTX 탄다. 보고 싶어 안 되겠어.’ 그러면 시간이 허락되는 사람만 서울역에 달려 나가 기다린다. 그리고는 저녁만 같이 먹고 대구에서 왔다 바로 돌아간다. 그녀의 사람 관리 비법이 아닌가 싶다. 그녀는 경남 c 학원 대표 이사이다. 그녀는 나를 학원 BM으로 앉히겠다고 해서, 그녀로부터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았다. 덕분에 사회가 무엇이고 조직이 무엇인가를 배우는 소중한 경험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분은 나를 인정해 주는 분이다. 그래서 나의 자신감을 키워 놓았다. 내 인생의 멘토이다.
사례3- 꼭! 낳아서 키워줘야 아버지냐? 내가 하면 되지
그는 여수에 계신 목사님이시다. 나는 이분을 세상 남아있는 마지막 성인이라고 부른다. 신자를 위해 자기 신장도 떡 나눠 주듯 뚝! 잘라 내어주셨다. 목사님 성품을 보고 교회에 버린 아이들을 다 맡아서 기르신다. 아직도 양복에 하얀 고무신을 신고 다니신다. 그 분은 나를 양딸로 받아 들이셨다. 그래서 지금도 힘든 일이 있으면 그분과의 통화를 위해 전화를 든다. 항상 마무리는 “연설하네, 더 힘든 사람도 많아. 그냥 살아.” 듣다 보면 다 맞는 말씀이시다. 이 분은 나의 ‘아부지’ 이시다.
이 밖에도 인도 여행에 함께 했던 분들을 다 적어 ‘인물 열전’ 을 써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그럴 정도로 오신 한분 한분이 모두 아름다운 분들이셨다. 인도에서 지식을 배우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함께 있었던 사람한테서 배우고 깨달았다. 그래, 결국 사람이었다. 터닝 포인트는 사람이다.

'공부는 배신을 모른다.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의무가 공부임에 감사하자.
그는 받은만큼 정확히 돌려줄 것이다. 사람과는 달리'
이런 생각이 그때 갑자기 온 것이었는지..전부터 생각하던 것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그 때부턴 확실히 '사람'을 못 믿을 존재로 여기면서 살았던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머리론 '사람'이 제일 중요한 걸 알겠는데
마음 속 깊은 곳에선 아직도 저항을 멈추질 않네요.
'따듯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은
아마도 그 저항의 움직임이 드디어 힘을 다 잃은 순간에야
이루어질 듯합니다.
언제가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