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은 김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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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3년차. 하루 하루 장부와 영업일지를 쓴다. 기록을 해야, 일상은 힘이 된다. 인류는 기록하는 사람때문에, 시행착오와 혼란을 줄이고, 더 발전한다. 장사하면서 쓴 기록을 '사업 기록'이라고 하자. 이것도 '사기事記'다. 여기 몇개 적는다.
장사는 소비자의 무지를 먹고 산다.
요 몇년간 쇼핑몰 러시였다. 4억 소녀를 시작으로, 억대 소녀들이 나타났다. 벤츠를 타고 다니는 소녀의 모습이 안스러울 정도다. 몇몇 연예인은 부업으로 시작한 의류 쇼핑몰이 본업이 되어버렸다. 앞으로 4억 소녀는 없으리라, 예상한다. 쇼핑몰의 전성시대는 지났다. 쇼핑몰이 흥했던 것은, 사람들이 쇼핑몰을 몰랐을 때다. 지인은, 건강식품 쇼핑몰을 운영중이다. 원래, 청바지를 팔았다. 몇달 간 괜찮았는데, 제살 먹기식 가격인하 쇼핑몰이 늘었다. 견디다 못해, 건강식품으로 업종을 바꾸었다. 이쪽은 사람들이 아직 모른다. 건강식품하면 장사가 될까? 싶지만 의외로 매출이 괜찮다. 생각해보니 우리 아버지도 건강식품 매니아다. 초유, 스쿠알렌, 액기스등을 즐겨 찾는 사람들이 꽤 많다. 지금은 괜찮지만,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그도 안다.
사업모델이 탄로나면, 마진은 떨어진다.
전문직들, 변호사나 한의사의 초봉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고도로 훈련된 사람들이다. 아무나 그 성역에 접근하지 못한다. 언젠가부터 성역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훈련된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소스는 공개되고, 단가는 내려간다. 변호사와 한의사의 초봉이 300까지 내려갔다. 아쉬워도 할 수 없다. 자리를 메꿀 사람은 많다.
외식업은 보다 진지하고, 치밀하게 상대를 카피한다. '찜닭'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본래 찜닭은 안동에 있는 재래시장에서 나왔다. 젊은 사람 몇몇이 서울로 가져와서 대박을 터뜨렸다.닭은 서민음식이다. 닭은 대부분 튀겨서 판다. 후라이드 치킨이 닭요리의 프로토콜이다. 사람들에게 찜닭은 참신하다. 찜닭은 닭을 간장에 쪼린다. 간장이라고 단순한 간장이 아니다. 닭 냄새를 없애기 위해, 계피나 커피를 첨가한다. 적당히 배합해서, 적당 시간 쪼리는 것이 관건이다. 찜닭 당면은 일반 당면과 달리 넓적하다. 소위 칼당면이라고 한다. 닭고기의 뻑뻑함을, 쫄깃한 당면이 달래준다. 여기에, 쭈구미, 오징어, 홍합, 꽃게를 넣은 해물찜닭은 입맛이 없을때 딱이다.
음식장사하는 사람은, 배가 고파도 자기집 음식을 안먹는다. 질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찜닭집을 했을 때는 해물찜닭을 즐겨 먹었다. 알바들의 사기충전을 위해서도 괜찮다. 해물찜닭을 먹이면, 알바들은 눈동자에 빛이 나면서 일을 배 이상으로 잘해주었다. 행복한 것이다. 자기가 행복하니까, 손님들에게도 잘한다.
찜닭이 대박을 터뜨리자, 편의점 보다 더 많은 수의 찜닭집이 생겼다. 전국의 찜닭집은 불꽃놀이 처럼, 화려하게 터졌다가 점점이 사라졌다. 안되겠다 싶어서, 상표권을 등록한다. 상표권등록도 웃긴데, 찜닭KIG와 찜닭INF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혹은 '해물떡찜'옆에 작은 알파벳으로 a를 붙이거나, b를 붙이거나 해서 차별화한다. 봉추 찜닭이 잠시 유행했다가 수그러졌다. 그래도 찜닭은 안동 찜닭이라며 전의를 불태우지만 , 약간 진부한 느낌이 든다. 과거의 실패도 꺼림직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新안동 찜닭이다. 신안동찜닭이 유행을 하자, 다시 카피의 물결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당하지만 않겠다며, 태클을 건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유사 상표를 쓰는 가게가 있으면, 직원을 보내서 영업을 방해한다. '이 집은 원조가 아닙니다. 가지마세요'라는 현수막을 걸고, 그 앞에서 지킨다. 멱살은 기본이고, 주인과 주먹 다툼도 생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신은 신인데 '辛'안동찜닭이다. 자기들끼리는 말끝 하나로 싸우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 똑같은 찜닭이다. 새로운 무언가가 나왔다면, 그곳에는 더이상 먹을게 없다. 안타깝게도, 이 시간에도 수많은 외식업체들이 오픈준비중이다.
사업은 안정된 시스템이 아니다.
페달을 계속 굴려야 돌아간다. 어려운 것은, 시스템을 돌리면서 페달도 굴려야 한다는 점이다. 정주영 회장이 500원 지폐를 보여주면서, 조선사업을 수주한 일화는 유명하다. '봐라, 이게 거북선이다. 우리는 원래 배 만드는 민족이다' 생각하면 코미디 아닌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나, 그 말을 믿고 사업을 맡기는 사람이나...
당시 우리 나라에는 배를 만들어본 사람도 없었고, 무엇보다 배를 만드는 곳이 없다. 정주영 회장은 더 황당한 발상을 한다. 배를 만들면서, 배 만드는 곳까지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는, 목욕탕 영업을 하면서 목욕탕 짓겠다는 발상과 같다. 황당하지만, 사실 이것이 사업의 현실이다. 현대그룹의 강점은, 황당무개한 발상뿐만 아니다. 남들이 1년 걸려서 할 거, 6개월만에 해치워버린다. 깍아주고 덤으로 붙여주는것 보다, 공기를 줄이는 것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
경험이 없는 사람일수록, 완벽한 시스템에 대한 환상이 있다. 구체적이고 치밀한 계획과, 한번 돌리면 알아서 돌아가는 방법론을 구할려고 애쓴다. 물론 머리속에서 말이다. 평생 사업기획만 하다가 끝날 것이다. 사업은 스피드와 체력이다. 한만디로 독해야 한다. 목표달성 능력이란, 목표를 찍고 끝까지 가기다. 불가에서는, 매순간 '깨어있으라'고 한다. 기독교의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과 상통한다. 사업도 같다. 사업은 24시간 모니터링이다. 선순환 시스템이 아니다.
내 사업 방법.
먼저, 자금이 필요하다. 어떤이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대박'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말투가 싫다. 널린게 아이디어다. 당장 길에 아무나 붙잡고 '당신의 아이템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라. 상당히 매력적인 아이템이 꽤 나올 것이다. 자금을 만들기가 어렵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외식업을 하겠다면, 해당 상권에 가서 일을 해보아야 한다. 1달 정도 일하면, 여기에 무엇을 해야할지 감이 온다. 시작한다.
보통 일주일이면 인테리어와 시스템 준비가 끝난다. 인테리어 업자가 밍기적 거리면, 다그친다. 아니, 대다수가 납기일을 넘기는 것이 예사다. 인테리어는 꾸미는 것이 일이라 그런가? 말도 잘 꾸민다. 하루 지연될때마다, 잔금에서 얼마씩 깐다고 명시한다. 작업을 하다보면, 그들의 사정이란 여러가지다. 일꾼이 갑자기 사고가 났다는 황당한 사정부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눈물나는 사정까지, 정말 맘 독하게 먹지 않으면 그들의 꼼수에 놀아나기 십상이다. 우리는 예술이 아니라, 장사하겠다는 것이다. 장사는 시간이 돈이다.
준비가 되면, 손님을 받고, 음식을 내주며 돌려본다. 부족한 부분이 보일 것이다. 빨리 업데이트한다. 삼성은 매분기 영업이익을 발표할 때마다, '사상최고'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성과를 올리는 것은, 혁신이라기 보다는 스피드다. 그들의 생산라인을 따라잡을 기업이 없다. '이건 어때?', '아니면, 이건?', '이건?'....끊임없이 내놓는다 삼성은 삼성끼리 경쟁한다. 기업은 빠르지만 정부는 느리다. 당장 동사무소에만 가도, 공기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삼성이 이윤을 내는 것은 정부가 삼성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따라오지 못하도록 로비를 한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에서 했던 일이다. 소득원이 명확할수록, 세금을 징수할 거리도 많아진다. 마치 장사 잘 되면, 건물주가 월세 올리는 것과 같다. '세상은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라는 말은 '세상은 내가 돈벌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알겠거니 판단하지말라.
호텔 주방 출신이 레스토랑을 차리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에드워드 권은 투자를 받아서, 레스토랑을 잘 운영중이다. 이런 경우는 극소수다. 에드워드 권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성공했다. 맛이 있어서가 아니라, '맛이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호텔 주방장은 자신의 실력만 믿고 홍보를 안한다. '말안해도 알겠거니'만큼 위험한 착각이 없다. 소비자는 먹기 좋게 일일이 떠주어야 받아 먹는다. 잦은 신상품 발표는 고급스러운 홍보전략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을 끌 수 있다. 더 긍정적인 효과는, '이렇게 열심히 일한다'는 모습을 소비자에게 줄 수 있다.
결국 사업이란?
사업에 특별한 방법론은 없다. 그냥 간절하게. 열심히다. 처음부터 전체를 아우를려고 하지말라. 시스템은 시행착오로 만든다.
사업은 간절한 기도다. 나라 사업, 연애 사업, 가정 사업, 외식 사업, 모두 간절해야 성공한다.
끝으로.
처음 부터 잘할려고 하지말것. 사업은 예술이 아니다. 작품성이 아니라, 스피드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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