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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3일 08시 44분 등록

  뭐하시던 분이예요? 뭐 하시려구요?


  함께 공부한지 한참이 지나서야 우리는 서로에게 질문할 수 있었고 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 왜 직업상담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는지,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큰 고민 없이 그냥 공부를 시작한 사람보다는 이것저것 고민을 했던 사람들이, 그리고 다른 곳에서 경험이 많았던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궁금해 한다. 아마도 자신이 맞는 길을 택한 것인지 확인해 보고 싶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같은 곳에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경험이 전혀 없는 스물 두 살의 새초롬한 아가씨부터 스무 살이 넘는 아들을 둔 마흔이 훌쩍 넘은 씩씩한 아줌마까지, 함께 공부한 20명 남짓한 사람들은 스무 가지 이상의 사연들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생 때 시작한 노동운동을 십년 넘게 계속하는 젊은 새댁이 있다. 적은 월급도 밀려 받으며 노동조합에서 일을 하는 그녀는 노동교육센타를 만드는 꿈을 가지고 있다. 오후교육이 끝나면 종종 사무실로 돌아가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그녀는 언제나 밝고 따뜻하고 소박하다. 나는 그녀를 알고 ‘운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버렸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소리치지 못할 것같이 얌전하고 가냘픈 외모를 지녔고 조근 조근한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면 작은 눈이 선하게 눈웃음을 그리지만 자신의 신념과 꿈을 위해 가장 소중한 것, 바로 자신의 인생을 쏟고 있는 전사戰士이다.  


  나와 친하게 지냈던 한 언니가 있다. 언니는 혼자되신 시아버지와 두 남매를 챙기고 일찍 출근하는 남편의 아침상을 차려주면서도 방통대에 편입해서 교육학을 공부했고 평생교육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다. 설 명절 전에는 하루 종일 만두를 빚어 냉동시키고 시고모와 시작은 아버지까지 오는 명절 준비를 혼자 다 하면서도 얼마나 씩씩한지 모른다. 그녀는 한 시간 넘게 지하철타고 공부하러 오면서 함께 공부하는 우리를 위해 고구마를 삶아오고 국화차를 준비해오곤 했다. 시험 보기 며칠 전, 아이들이 학교 간 오전에 도서관에서 공부한다던 언니의 화이팅! 격려 문자를 난 지우지 않았다. 그 문자는 내가 늘어지고 나태해질 때 일으켜 세우는 약이 되리라.


  워낙 동안이어서 내 또래로 생각했던 멋쟁이 언니는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수험생 엄마이며, 미술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입시미술을 지도해온 분이다. 청소년 상담에 뜻을 둔 그녀는 방통대 청소년교육학과 졸업반 학생이자, 청소년상담사와 직업상담사를 모두 준비하는 수험생이다. 그 와중에서도 청소년 상담 자원봉사를 하며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있는 맹렬여성이다.


  4살, 6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강의를 들으러 오던 한 동생은 교육이 끝나기도 전에, 너무도 바라던 대로 취업을 했다. 계속 살림을 하며 집에 있었던 그녀는 정말 일하고 싶어 했고 아무런 경력도 특기도 없었지만 그 열정으로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해 나가기가 결코 쉽지 않겠지만 그녀는 가족의 지원과 자신의 열정으로 고비 고비를 넘길 것이다. 그녀가 그 힘든 길을 걷는데 따뜻한 격려 한마디, 조언 한마디로 힘을 보태고 싶다.  


  나처럼 직장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공부를 다시 하고 싶어서 온 언니도 있었다. 그녀는 자격증 공부를 마치 대학원 공부처럼 했다. 그녀는 원론서와 참고문헌까지 공부하고 와서는 나눠준 교재를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허덕이는 우리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꾸준히 당비를 내는 진짜당원으로서 6월 지방선거준비를 돕는 실천하는 지식인이기도 했다.  

     

  새벽에 일어나 한 시간씩 걷기운동을 하고, 한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9시 강의에 들어오는 언니도 있었다.

   

  강의가 끝나던 날, 개근상을 받은 분들에게 우리는 아낌없이 박수와 축하를 보냈다. 집이 제일 가깝다는 이유로, 그리고 틀을 깨고 변화하고 싶은 마음에 반장을 자원했던 나는 노력에 비해 넘치는 감사를 받았다.

  지난겨울, 우리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함께 공부했다. 그러나 우리가 배운 가장 큰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우리는 함께 공부하며 서로에게 배웠고 서로를 가르쳤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배운 사람은 바로 나일 것이다. 


  우리는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얻기 위해서 책을, 특히 고전을 읽는다. 그리고 그 안의 사람에게서 배운다. 또한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배운다.

  결국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사람”에게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자신만의 대답을 찾아가는 것이리라.

IP *.106.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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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3 13:46:40 *.53.82.120
언니는 왜 직업상담사가 되고 싶으세요?
문득 우리는 참 서로를 잘 모르는구나 싶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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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3 18:41:39 *.106.7.10
허걱, 묙이 이런 댓글을 달다니, 그동안 내가 쓴 글이 부족했단 걸 온몸으로 느끼네 ^^;;
묙아, 난 사람을 만나고 싶어.
사람과 멀리 거리를 두고 사는 것이 편하던 내가 그걸론 더이상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거지.
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거리를 두는 만큼 난 아프지 않아, 내 예상을 깨는 뜻밖의 일도 없지.
내 인생은 너무도 평탄하게 흘러가. 누가봐도 평범하고 무난하고 평화롭지.
근데 행복하지도 않은 거야.
어느순간 더 사는것처럼 살고 싶어진거야.
누구와 비교해서가 아니라 그냥 한번 살고 늙고 죽어가는데
스스로 만든 빗장을 열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진 거야.
직업상담사? 그건 그냥 과정일뿐이야.

이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나도 알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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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5.04 09:07:49 *.30.254.28
같이 걸어가서 꼭 파헤쳐 보자..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가는 길에서도 꼭 행복하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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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4 20:58:03 *.106.7.10
ㅋㅋㅋ
우린 이미 함께 걷는 동지죠? 그죠?
은주언니 왈 '도반'이라나 ^^
전력질주하는 트랙이 아니라,길옆에 핀 들꽃도 돌아보는 산책이 되고싶어요.
오빠가 옆에 있으니, 분명히 그렇게 될 거라 생각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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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5.04 10:56:06 *.236.3.241
선! 지금은 무난하고 평탄한 게 마음에 안 들어도 
사물에는 양 단면이 있다고 하잖아. 

지금까지 잘 걸어왔고, 사람속에 섞여 열심히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습이 받아들여지는 때가 있지 않을까 ...^*^
나두 '행복하자구'에 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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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4 20:59:44 *.106.7.10
누가 들으면 배부른 투정이라고 하겠지요? ^^;;
그냥 '행복하자구'에 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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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연주
2010.05.04 11:42:56 *.203.200.146
과거와 현재의 사람을 통해 자신의 돌아보고  내 삶의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같아요.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敎學相長이라는 말이 모든 이의 삶에 적용됨을 알겠습니다.
언니의 꿈..응원합니다^^
무엇을 해도 행복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죠.
이제는 바로 지금 행복해지려고 노력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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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4 21:01:31 *.106.7.10
연주야, 우리 행복해지자 ^^
나만 바라보는 행복이 아니라, 주위를 둘러보고 난 내가 걷는 길에서 또 넌 아이들과 함께
 우리 함께 행복해지자.
옆 사람의 행복을 짓밟는 행복이 아니라, 내가 행복할때 함께 행복해지는 그런 행복을 만들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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