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현
- 조회 수 2500
- 댓글 수 7
- 추천 수 0
# 史記와 축구의 성격 차이
“슛~”
”골인!!!”
”국민 여러분 기뻐하십쇼. 대한민국 대표팀이 경기 종료 1분을 남기고 동점골을 넣었습니다.”
“어~ 헌데 주심이 노 골을 선언하네요. 오프사이드라는데 오프사이드가 맞나요?”
A매치를 즐기는 축구팬이라면 이런 장면이 기억의 한 편에 남아 있을 듯하다. 극적인 동점의 상황에서 어처구니 없이 오프사이드 트랩에 걸려 패배의 쓴 맛을 본 경험 말이다. 『사기』에 비유하자면 오프사이드는 소진의 합종책이다. 강대국 진나라가 천하 통일을 이루지 못하도록 나머지 여섯 나라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카테나치오(빗장수비)를 펼치는 것이다. 축구는 흔히 중원을 장악하는 게임으로 불린다. 천하를 얻는 최후 승리자가 되기 위해 이합집산을 거듭했던 춘추전국시대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축구가 왜 중원의 게임으로 불리는지 이해될 만도 하다.
소진ㆍ장의와 같은 遊說客은 立身揚名이라는 한 골을 넣기 위해 벼랑길에서 줄타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명은 왕이 내리지만 굳이 따지자면 천하는 그들의 설계도에 따라 움직여지는 것이었다. 유세객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역학관계를 예의 주시하여 가장 이익이 될 만한 디자인을 도출하여 왕을 찾는다. 왕의 마음을 얻었다면 천하를 주유하며 설계도를 실제로 구현하는 일이 그들의 역할이었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유세객은 허정무다. 상대팀의 전력을 분석하여 거기에 조응하는 최상의 선수로 11명을 구성한다. 월드컵 첫 경기인 그리스전에서는 첫 승리를 안길 스트라이커가 관건이라면, 아르헨티나전에서는 메시를 차단할 수비선수가 전술의 핵심이다. 경기가 시작되면 박지성이 필드 안에서 감독을 대리하여 팀을 지휘한다. 전반적인 판세를 읽고 경기 흐름을 조율하는 게 그의 임무다. 공간을 창출할 지점을 선택하고 그 역할을 수행해 줄 선수의 특장점에 맞춰 볼을 배급한다. 골 에어리어의 상황에 따라 타깃형 스트라이커에게 볼을 띄우느냐, 섀도우 스트라이커와의 패싱을 통해 공간을 만드느냐가 그의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중원의 사령관 박지성은 프리미어급 기량뿐만 아니라 동료 선수의 감정과 생각을 존중하는 리더십으로 대표팀의 전력에 보탬이 되고 있다.
# 개인의 시대, 소통의 시대
사마천의 시대에 유세객은 군주의 마음을 얻으면 그만이었다. 지금은 개인의 시대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주변 사람들과 어울림이 원활하지 못하면 내 뜻을 펼치기가 쉽지 않다. 소진은 골방에 틀어박혀 일년 내내 『음부』를 읽은 끝에 췌마(揣摩 :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방법)를 터득했다. 지금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거기에 공명하는 게 천하를 얻는 법이다.
회사에서 작년부터 서번트 리더십과 다이나믹 팔로우십을 강조하며 구성원간의 원활한 관계 형성에 힘을 쏟고 있다. 인재 경영을 강조하는 CEO는 사내 인트라넷에 구성원이 주제에 구애 받지 않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게시판을 오픈했다. 작성자의 신원 확인기능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이 게시판에는 가슴 저 밑바닥의 얘기가 여과 없이 오르내린다. 경영진에서는 주요한 주제에 대해서는 신속한 의사결정을 통해 게시판의 활성화를 지원하고 있다. 주제의 적합성이나 언변의 수준을 뛰어넘어 게시판을 통해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원 없이 털어놓고 공유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개인적인 경험상 안팎이 일치하는 경험은 타인에 대한 신뢰와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유세객은 자기 이름 하나를 남기기 위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周遊의 길을 떠났다. 미천한 村客이 왕과 독대하여 천하의 이치를 논할 수 있었던 건 그의 가치가 단순 명료했고, 그것이 먼저 자신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나의 하루를 움직이는 소소한 가치란 뭘까. 일상이 황홀이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너울져 흘러갈 그날을 꿈꾸며 나는 유세객을 파송해 흩어진 마음을 모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