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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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할 수 있다.
펜싱 잘한다는 것은 키크고 힘세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기술좋고 연습많이 했다고 해서 시합에서 반드시 이기는 것도
아니다.
난 178센치미터 다 한국사람으로는 큰 키다 그러나 펜싱을 하면 중키보다 좀 작은 키다.
평균적으로 에뻬 펜싱 선수들은 괜찮다 싶으면 키가 180은
무조건 넘는다.
키 193센치의 그
녀석이 숨이 헐떡거리며 게임을 마치고 나더니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면서
굳은 악수를 하고는 엄지를 세웠다.
“고맙다 ! ” 그에게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사실, 유럽사람들은 키에 비해 팔다리가 길다. 어떤 얘들은 꼭 사람 닮은 동물 같다.
동양인들은 서양사람과는 조금 다른 체형이다. 하지만 체격조건, 체력조건하고 검을
잘다루는 것하고는
좀 다른 문제다.
나는 펜싱을 사랑한다. 언제나 잘 알고 싶어하고 잘 다루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그걸 그렇게 말한다. ‘잘 한다’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잘 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좀 다르다.
왜 시합에 안 나가느냐는 그의 질문에 ...
사실 좀 씁쓸했다. 과거가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아무 말 없이
그냥, 시키는 대로 죽을똥 살똥 열심히 했더니만
‘성실하고 착한 것만으로 돼냐?’ 고 해서 엄청나게 당황했었던 그런 억울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많이 열 받아서 분노하고 헤매던 기억이 꼬리를 물고 솟아 올랐다가 깊은 심호흡에 사그러들었다.
마음 속으로 ‘내 땅에서는 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단다.’ 라고 말하며 그에게
찡끗 웃어보이며 어깨를 들썩이며 ‘지금, 하고 있잖니?’ 라고 말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웃었다.
그래, 자기자랑, 돈자랑, 자식자랑 하는 놈은 팔불출이라지만,
뭐 지난시절 돌이켜 대충 생각해보니 이미 팔불출 된 거 같아서 그냥 저질러불기로 했다.
“ 나, 펜싱 지금도 그들하고 뛰어도 한 판 할만하다. ” 고...
나는 쉰 살이다. 숫자가 맞기는 맞는데, 묘하게도 맛이 갈 수 있는 나이라는 말로도 들린다.
농담삼아 나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스물여덟살이라고 했다. 펜싱을 하면 아직도 ‘스물여덟’먹은 팔팔한 젊은 것들?!하고 한 번 해 볼 만 했기 때문이다.
요즈음, 여기 이태리에 와서 오랜만에 도복 위아래 입고 폼 좀
잡았다. 젊은 친구들은 세상 어디를 가도 비슷하다. 아마 하얗게 센 흰 머리칼의 내가 만만할 수도 있었겠지... 보기에...
한 판할까, 하니까 그 녀석 표정이 좀 의심스럽다. 묘한 눈빛에 어깨를 ... 어쭈... 가소롭다 이거지...
게임이 끝나고 나서 악수를 하면서 (펜싱은 게임이 끝나면 악수를 해야한다) 짓는 그 녀석 표정,
차이가 많제.... 쨔샤~ 원래 그런 것이다. 보는 것하고 다를 수도 있지... 세상일이라는게 말야...
세상에서도 그렇지 싶다. 어설픈 용기, 함부로 도전했다가 그야말로 쌍코피 흘리는 일 부지기수다.
“음마 요거시... 솔찬헌디... ” 하면 그런대로 괜찮지만 말이다. “워메! 뭐시다냐...우째야쓰꼬!?” 가 되면 임자 만난거시고, 이미 때는 늦은거시여,... 그 때 상대방은 그러겠지... “ 하, 하. 하! 너 ... 오늘 죽었다! ” 왜 오늘 내가 한 게임하자던 그 녀석 말이다. ^^
어디든 무엇이든 원래, 처음 시작이 중요하지, 첫 판이 중요하지,,, 그렇게 첫단추 잘못 끼워지고 나면 그래서 생각밖이 되고 나면 그 게임은 내내 어렵고, 다음 판 부터는 게임이 끝나고 악수할 때면 싱싱한 녀석들의 손이 땀이 좀 많이 나 있고 힘이 팍들어가 꼭 쥐지 ... “아! 괜찮았습니다.” 이 이야기제...
그래 살다보면 누구나 상식, 통념 편견... 일반적으로 그런 것들에 의해서 판단을 하고 기대나 예상을 한다. 그러나 가끔씩 예외를 만난다. 특별한 재주나 예상밖의 수준을 가지고 있는 상대를 만난다. 그러니 늘 예의와 경각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한 가지쯤 그런 기준을 넘는 재주가 있으면 사는게... 괜찮은
거 같다. 살아가는 형편이야 어떻든 꽤 재미가 있다 이말이다.
나 요즘... 내가 펜싱을 하는 이유가 그렇다. 글로벌한 세상에서 나도
한 가지 잘 난게 있다는 것이다. 그 거 상당히 괜찮은 거
같다...
복잡하게 학문적 근거를 들고 설득력을 높이려고 하고 싶지는 않다. 굳이 만 시간의 법칙이나 10년 주기의 법칙 같은 걸 들먹여 당위성의 근거로 들고 싶지도 않다. 오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오래했느냐가 핵심이니까, 질이 선행되지 않은 양의 문제는 헛 것이다.
펜싱을 30년 넘게 했다. 지금 쉰 살이고 여기 이태리다. 그리고 펜싱을 한다 잠시 그들과...
오늘 지금 여기서, 한 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내 삶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 펜싱을 하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난 아직도 펜싱을 사랑하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한다는 이야기다.
뭔가를 잘 하지 못하면 오랜 세월을 꾸준히 할 수가 없다. 그 이야기는 나 지금도 펜싱 잘 한다는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
잘 할 수 있어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기 때문에 오래 동안 잘하게 되는 걸까? 아니면 사랑하기 때문에 잘 할 수 있게 되고 잘 할 수 있게 되어서 오래동안 사랑할 수 있는걸까?
그러니 실제로는 서로 상호보완하는 것 같다 그것이 더 적절한
답인 거 같다.
근데 이 말, ‘잘 할 수 있다’는 이말, 30년 동안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인데 자신있게 못해본 말이다
겸손하기 위한 겸손보다는 자신있게 말하되 진실하게 말하는
것이 더 나은 거 같다.
오늘 지금, 이분위기 이 상황에서 이 말 하는 것이 딱 적절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