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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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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4일 12시 09분 등록

나는 다시 펼쳐진 신문의 기사면으로 돌아왔다. 격렬했던 심장의 박동이 잦아들고 깊은 곳에서부터 이상한 감각이 경련을 동반하면서 서서히 밀려 올라왔다. 그것은 도저히 수리될 수 없을 것 같은 그리움이었다. 그리고 그리움의 자리에 서서히 들어앉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엷은 미소였다.

내가 처음 등장한 것은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을 통해서다. 당시 포우는 <필라델피아 선>지에 실린 뉴욕의 한 살인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한 흑인이 여자의 목을 면도칼로 자른 이 사건은 사회면 1면을 장식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의 오랑우탄의 이미지는 사실, 흑인에게서 차용된 것이다. 그가 나를 프랑스인 탐정으로 그린 이유는, 당시 미국은 유럽에 비해 추리소설도, 사립탐정의 활동이 활성화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흑인이 저지른 사건을 오랑우탄으로 변용되어 소설화 것을 보고, 그가 인종차별자가 아닌가, 라는 의문을 품게 되더라도 우리는 확인할 길은 없다. 단지, 그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내의 오라우탄은 ‘킹콩’과 같이 인간의 욕심에 의해 문명세계로 잡혀오고, 길들여지기를 바라는 인간의 욕심의 투영대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죄는 유인원을 파리로 데려온 선원에게 있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이러한 오랑우탄의 이미지는 월터 스코트의 작품 <파리의 로베르 백작>에도 소개되었는데, 이는 오랑우탄의 음성이 마치 외국인의 목소리인냥 들리는 유사점을 내포하기도 한다.

내 친구는 나를 창조한 이후, 나와 같은 탐정들은 많은 작가들에 의해 작품들 속에 형상화 되었다. 예를 들면, 코난도일의 탐정이 셜록 홈즈, 애가서 크리스티의 탐정인 에르큘 포와르, 그리고 얼 스탠리 가드너의 변호사이자 탐정인 페리 메이슨, 그리고 모리스 르블랑의 탐정인 아르센 뤼팽 등이다. 포우는 나를 객관적인 사실에만 의거한 논리적인 인물이 되기를 거부했다. 논리성을 지니되 자유분망한 상상력과 시적 감수성을 지닌 시인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사실, 나는 사실에 기초하여 인간의 행동과 사건의 동기를 실타래 풀어내듯이 하나씩 벗겨내는 능력을 부여한 것이다. 사물에 대한 인식력과 열린 마음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영혼을 불어넣었다.

내가 접한 사건은 다음과 같다.

파리의 모르그가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두 모녀가 끔찍하게 살해당한 것이다. 그런데, 살인 후 시체 처리가 아주 엽기적이다. 딸의 시신은 벽난로 속 굴뚝 위로 밀어 넣어져 있으며, 어머니는 머리가 몸통에서 잘려나간 상태로 건물 밖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문과 창문은 모두 안에서 잠긴 밀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더군다나, 모녀가 최근에 찾은 현금은 방안에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범인은 어디로 증발 했고, 왜 이런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그리고 살해 후 시체는 왜 이렇게 유기했을까?

포우는 경찰들이 풀지 못한 범죄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섬세함을 지닌 인물로 나를 설정했으며, 이런 개념은 사후 160년, 그의 장례식을 다시 할 만큼, 현대 문학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내가 처음 등장한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을 필두로,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 그리고 <도둑 맞은 편지>에서 늘 독자에게 지속적인 흥미를 유발하도록 기름을 부어 넣어준다. 탐정소설을 통해 인간 본성을 드러내며, 범죄라는 사건을 두고 원인과 앞으로의 해결 방안 속에서 고뇌하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소설을 쓰는 동안 문학적으로도, 그는 개인적으로 넘어야할 산들이 있었다. 먼저, 열 네 살이던 사촌 여동생 버니지아 클렘과 결혼 생활 중이었는데, 아내가 수년에 걸친 가난에 결핵을 얻었고, 그녀가 죽을 때까지 5년간 극심한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는 아내를 돌보느라 잡지 일에 소홀하게 되었고 이는 해고와 재취업을 반복하게 했다. 그는 늘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의 죽음과 고통은 그에게 문학적 성숙을 부여했다. 포우의 대표적인 시 <애너벨 리>는 당시 친구가 느꼈던 슬픔과 비탄을 생생하게 드러내주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일 것이다. 그의 아내가 사망한 뉴욕 변두리의 포드햄을 집은 아직도 유적지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결정적으로 경제적인 관념이 없었다. 그는 살아 생전, 저작권과 관련한 어떤 혜택도 누리지 못했다. 그가 활동을 통해 경제권을 가지게 된 것은 잡지 편집자로서 일했을 때의 급료와 그의 문학상을 통해 상금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 그의 작품, <황금벌레>와 <병속의 문서> 등은 문학상을 그에게 안겼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에게 유명 작가로 떠오르게 한 것은 그의 시 <갈까마귀>였다. 이는 <뉴욕 이브닝 미러>지에 발표되었는데, 미국 내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신문과 잡지에 앞다투어 게재한 계기가 되었다. 포우 자신도 이 시를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시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불렀으며, “황금벌레 (The Gold Bug)와 함께 달리도록 새(The raven)를 썼더니 새가 벌레를 먹어치웠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 포우는 미국을 넘어 프랑스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젊은 시인 샤를르 보들레르는 파리 신문에 2회에 걸쳐 번역 게재된 포우의 <검은 고양이>를 읽고 매혹되어 직접 번역하였다. 이후 보들레르는 포우의 단편소설을 평생에 걸쳐 프랑스어로 번역하면서, 그를 프랑스의 저명한 외국 작가군 반열에 올려놓는다. 그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프랑스에 알려지기 시작하자,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 번역본이 두 개가 나오는 바람애 프랑스 두 신문 사이에 법적 소송까지 벌어지는 소동이 일기도 하였다. 포우는 시인 보들레르와 스테판 말라르메,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 등에 의해 자신의 천재성을 인정받고 해외에 널리 소개된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 속에는 그의 이미지가 많이 투영되어있다. <아몬틸라도의 술통>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자아를 지하실 술통에 가두어 버리는 상징으로 바라 볼 수 있으며, 평생을 술과 함께 고통을 당한 개인적인 체엄으로 해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술에 관한 비이성적인 행위는 <검은 고양이>에서 고양이와 아내를 살해하고 벽장 속에 넣고 발라버리는 극한 상황으로 묘사되며, <윌리엄 윌슨>에서는 도플갱어로 형상화 되는 동명인을 살해하는 모습으로 귀결된다.

그의 작품 속의 인물들의 그로테스크한 결론은 고스란히 그 자신에게도 일어났다. 그는 아내 버지니아가 사망하고 나서 2년 밖에 더 살지 못했는데, 그는 아내의 무덤을 배회하며 몇주동안 이성을 잃고 울곤 했다. 그 이후 몇 명의 여인들을 만났으나, 이런 만남을 그의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포우는 부인이 폐렴으로 앓아 누워있는 동안, 여류시인인 프란시스 오스굿과 Frances Srgent Osgood 과 문학적인 교류를 하면서 정신적으로 위안을 받는다. 그는 그녀에게 <F에게 To F >라는 시를 써서 그녀에게 보내곤 했는데, 루퍼스 그리쉴드라는 지인은 그들의 관계가 문학적 교류를 넘어선 것으로 폭로, 미국 문단에서 ‘아픈 아내를 두고 바람을 피는’ 파렴치한으로 몰아가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던 행인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포우를 발견한다. 포우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정신 착란과 흥분 상태에 이어 혼수상태에 빠진다. 결국 그는 의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신이여. 내 불쌍한 영혼을 구하소서’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지켜보는 이 없는 외로운 죽음이었다. 결혼을 앞둔 엘미라 로이스터라는 여인도,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 몰랐으며, 클렘 이모도 알지 못했다. 10월9일, 포우는 파예트 앤 그린 가에 있는 프레스바이테리언 묘지에 그의 할아버지인 데이비드 포우 옆에 묻힌다.

평생 동안 포우를 따라다닌 불운의 먹구름은 그가 죽은 뒤에도 한동안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의 무덤을 표시하기 위해 주문한 묘석이 폭주기관차에 의해 부서진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 결과 1875년에 그의 시신을 파내서 다시 매장할 때 까지 그는 80번이라고만 적힌 일반적인 표지판 아래 묻혀있었다.

유품관리자가 된 그리쉴드는 사후, 그의 죽음이 그의 정신병과 알콜중독, 그리고 약물중독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포우가 부탁한 출판과 관련해서, 최종본 수정과 정정을 무시하고 일부 기록을 위작하고 작품의 일부분만을 출판하여 그의 작품 가치를 떨어뜨렸다. 포우로 부터 평소 문학적으로 일침을 당한 무리들도 그리쉴리의 주장에 동의하여 그의 작품은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자 휘트먼은 1860년 비평서 <에드가 앨런 포우와 그의 비평가들>에서 그를 옹호했다. 그러나 한번 굳어진 그의 부정적인 인상을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친구가 나를 등장시킨 <도둑맞은 편지>는 그의 인생에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그 작품에서 편지(텍스트)가 은밀한 곳에 감추어져 있지 않고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공개된 곳에 놓여있었던 것처럼, 내 친구의 드라마틱한 삶과 그로테스크한 작품들 또한, 실은 우리 주변에 공개된 곳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D장관의 편지를 바꿔치기 한 것처럼, 로퍼드 그리쉴드는 그의 삶을 파렴치한으로 바꾸어버렸으며, 그의 죽음 160년이 지난 오늘, 그의 장례식은 다시 그의 삶을 다시 제자리로 바꾸어놓았다. 그의 바뀐 삶과, 내면과 이면, 그리고 삶과 죽음, 그리고 천재와 광끼, 고아와 의붓아버지, 사촌여동생과 부인의 관계를 포우는 <도둑맞은 편지>중 나의 목소리를 통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응- 어쨌든 편지를 완전히 백지로 남겨두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닌 것같이 느껴졌네. 그건 너무 모욕적인 일이니까. 이 전에 D는 나에게 나쁜 짓을 한 것이 있었네. 그때 나는 웃으면서 말했지. 기억하고 있겠다고.”

IP *.216.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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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5 01:27:58 *.67.223.107
그 애너벨 리..... 한참 잊고 살았는데...
Jim Reeves  내가 그의 목소리를 무척 좋아했던 남자가 레코딩한 애너벨 리
It was many n many years ago
In a kingdom by the sea...
......
I was a child n she was a child
in this kingdom by the sea.... 

옛생각에....잠 못이루는 밤... 그 남자의 낮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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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엽
2010.05.06 07:59:36 *.216.38.10
애너벨 리, 가 유명해서 그 시를 한번 재해석 해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좀 생각할게 많고 힘들어서 아직은 보류.. ㅋㅋ

이 시를 읽으면
아는 선배가 성당 수련회에서 
불꺼놓고 촛불만을 켠채 어두운 방안에서 여고 학생들 앞에서
멋진 목소리로 읇었던 기억이 납니다.  
  
훗날 왜 그랬냐고 물어봤더니,
지금 자기 와이프가 된 후배를 꼬길려고 그랬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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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5.05 15:23:53 *.254.8.243
스티븐 킹이 꼭 자기 소설의 주인공 같은 작자에게 교통사고를 당했다더니,
포우 역시 자기 소설 만큼이나 그로테스크한 결말을 맞이했네요.
160년 만에 그의 천재성에 값하는 정중한 장례식을 맞이하는 작가라~~
그만한 세월을 기약하고라도 어둠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나가는
무리가 아직도 있을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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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엽
2010.05.06 08:03:01 *.216.38.10
확실히 멋진 작품과 작가의 인생- 특히 결말은 반드시 비례곡선은 아닌것 같습니다.
요즘 작가의 삶을 보면서,
작가들이 남기는 작품이 무언가, 그리고 그 작품을 읽고 즐기는 독자는 무언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16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장례식을 한다고 난리치는 독자들.. 이를 우매하다 해야할지, 갸륵하다 해야할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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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5.05 22:34:34 *.34.224.87
재치 만점, 있는 집 자제이신, 2기 선배님!  ㅎㅎ
변경연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새로운 장르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두려움을 악기삼아, 살아있는 떨림을 음표삼아, 10년을 노래하신다는
말씀을 저도 마음에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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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05.07 00:16:57 *.53.82.120
우리 다함께 중독된 거 같지?
                                                      그  무서운 로맨틱 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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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엽
2010.05.06 18:29:36 *.216.38.10
ㅋㅋㅋ 천사들의 합창?

"칼럼 올리는 건.. 너무 로맨틱한 것 같아.." (라울라 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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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05.06 10:49:13 *.53.82.120
두려움을 악기삼아, 매일매일의 살아있는 떨림을 음표삼아..

이런 멋진 말씀을 하셨단 말이죠?
나는 뭐하느라 이런 명언을 놓쳤지?    
저도 그 합창단 한자리에서 입이라도 함께 뻥긋거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10년을 뻥긋거리다보면 제 목소리를 찾을 날도 받드시 와주리라..믿고 싶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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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엽
2010.05.06 08:07:03 *.216.38.10
그러게요. 우성님이야말로 늘- 따스한 음성과 같은 유려한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변경연에서는 별로 반기지 않는 글이라 올릴때마다 창피하고 부끄럽습니다 ㅋㅋ
우리 함께,
두려움을 악기삼아, 매일매일의 살아있는 떨림을 음표삼아,앞으로의 10년을 노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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