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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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가장 부유한 인간이었음에도 왕의 삶은 가장 슬프고 짧은 것이었다. 그의 통치 하에서 밤마다 사제들이 별을 관측하고 별의 움직임에 따라 왕을 살해해야 하는 날을 정했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내려오는 관습에 따라 왕은 살해되어야만 했다.
또다시 그 날이 왔고 새로운 왕이 임명되었다. 왕이 해야 하는 최초의 행위는 자신이 살해되는 날 함께 동행할 사람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새로운 왕은 이야기 솜씨로 유명한 자신의 이야기꾼 노예 파르 리 마스를 선택했다.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신의 뜻이로다.” 또한 사제들은 새로운 왕과 운명을 같이 할 불을 지폈고 그 불을 지킬 순결한 책임자로서 왕의 가장 어린 누이를 지명하였다. 그녀의 이름은 살리였다. 그러나 그녀는 죽음이 두려웠고 자신이 선택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창백해졌다. 왕은 부와 권위를 마음껏 누렸으나 점차 자신의 죽음에 가까워지는 두려움을 잊기 위해 매일 밤 파르 리 마스의 이야기를 들었다.
살리는 유명한 소문을 듣고 그의 이야기를 함께 듣기를 청했고 둘이 서로를 본 순간, 그들에게는 다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파르 리 마스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다들 잠들었으나 그들만 깨어 있었다. 그들은 서로 포옹했고 그녀는 말하였다. “우리는 죽고 싶지 않아요.” “당신의 분부대로 따를 것입니다. 방법을 일러주세요.” 실리는 방법을 찾아냈다.
실리는 사제들에게 파르 리 마스의 이야기를 듣게 내기를 걸었고, 사제들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을 잊고 별을 관측해야 하는 그들의 임무를 잊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사제들은 파르 미 마스를 죽이고자 청했고 왕은 신의 뜻을 따르기로 하고 광장에 모두 모여 함께 파르 미 마스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파르 미 마스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그의 이야기는 어떤 사람에게는 천사의 소리처럼 감미로왔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의 공포였다. 해가 뜨고 그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사제들은 모두 죽어있었다.
왕은 직접 신에게 제사를 드렸고, 그 후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일이 없어졌다. 살리는 파르 미 마스와 결혼했고 왕이 늙어서 죽은 후 파르 미 마스는 왕이 되었다.
그러나 최고의 전성기를 만들었던 두 왕이 모두 죽은 후, 그 명성을 시기한 주변 나라들의 동맹에 의해 왕국은 파괴되었다. 이렇게 위대한 과거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 아프리카 수단의 ‘카시 파괴의 전설’ - |
왜 이 신화가 내 마음에 들어왔을까?
첫째, 왕과 파르 미 마스가 등장하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여성인 점
이것은 나의 강한 성정체성을 의미한다. 나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주인공인 이야기에 훨씬 쉽게 감정이입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신화들의 주인공이 남자인 것, 특히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수많은 남자 영웅들이 등장하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자 영웅과 남자 신들의 의지에 따라 휩쓸리는 존재인 것이 은근히 마음에 거슬렸던 듯하다.
이 이야기에서도 살리의 오빠인 왕과 또 나중에 살리의 남편이자 왕이 되는 파르 미 마스가 등장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운명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한다. 이들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내려오는 ‘관습’의 힘에 복종한다. 그러나 진정한 주인공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둘째, 의무나 당위의 틀에 묶이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주인공
그녀는 왕과 함께 죽어야 할 운명으로 선택된다. 이럴 때 두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다. 사회적 의무나 당위의 틀에 따라 자신의 희생을 가치있는 것으로 미화하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 또 하나는 죽음이 두렵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죽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소리를 명확히 듣는 것이다.
스스로를 얽매어온 ‘당위론적 사고’를 벗어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 이렇듯 당당하고 솔직한 감정과 이것을 왜곡없이 바라보는 살리가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죽음의 공포를 피하기 위해 이야기꾼의 이야기에 빠지는 왕보다, 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파르 미 마스보다 감정에 솔직한 살리가 더 아름답다.
셋째, 결국 사랑이 모든 행동의 원인이 되는 것
나는 지극한 현실주의자인 동시에 낭만주의자이다. 나는 사랑이 지상 최대의 가치임을 믿는다. 사람이 변하는 가장 크고도 유일한 이유는 사랑이다. 이성간의 사랑, 자녀에 대한 사랑,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주어진 운명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살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나서야 운명을 거부할 것을 결심한다.
넷째, 운명에 적극적으로 맞선 것
만약 그들이 손잡고 야반도주를 했다면 이것은 흔하디흔한 옛 이야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파르 미 마스는 살리에게 방법을 의지한다. 살리는 가장 손쉬워 보이는 방법, 둘이 도망가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녀는 운명의 집행자인 사제들과 적극적으로 맞선다. 그녀는 신의 뜻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믿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결혼해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나지 않는 결말
쉽게 영원한 행복, 영원한 왕국을 이야기하지 않는, 어찌보면 쓸쓸한 결말이 좋다.
나는 나의 운명을 만들어 나간다. 그러나 결국 결과는 나의 손에 달려있지 않다. 나는 내가 지금-이곳에서 할 수 있는 바를, 내가 믿는 바대로 최선을 다해 할 뿐이다.
2. 자신이 바라는 ‘나만의 신화’ 하나를 만들어라. 내 것과 네 것이 있었지만 그 구분은 명확하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 모두 함께 즐거이 어울려 일하고 함께 먹었다. 힘이 센 사람은 힘으로, 꾀가 많은 사람은 꾀로, 각자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함께 나누었다. 그 어떤 것도 서로를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되지 않았다. 갓난아이가 태어나면 그 집의 행복이었고 동시에 마을 전체의 기쁨이었다.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서로 어울려 자랐고 타고난 그 본연의 마음과 능력을 격려받고 축복받았다. 그 마을에 한 부부가 있었다. 부부는 화목했고 성실했지만 오랫동안 아이가 없었다. 마을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 쓸쓸함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부는 함께 나들이를 갔다. 따스한 햇살아래에서 잠깐 낮잠을 자는데 아내는 꿈에서 맑고 깨끗한 옹달샘을 보았다. 너무도 목이 말라 한 모금 떠 마시는 순간 그 시원함에 잠이 깼다. 그 꿈 이후 그녀는 아기를 가졌고 설레임 속에서 예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는 부모와 마을 사람들의 사랑 속에서 쑥쑥 자랐고 평범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마을에 큰 불이 났다. 작은 불씨에서 시작된 불은 순식간에 큰 불로 번졌다. 다행히 사람은 한 명도 다치지 않았지만 이 불은 추수 직전의 들판을 몽땅 태웠고 종자용 곡식 창고까지 잿더미로 만들었다. 마을이 생기고 처음 겪는 큰일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필요한 모든 것이 넘치지는 않았지만, 부족하지도 않았던 마을에 처음으로 굶주림이 찾아왔다. 굶주림은 사람들 사이의 불화를 불렀고 한 집, 한 집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부부도 아이를 데리고 길을 떠났다. 마을을 처음 떠나보는 아내와 아직 어린 딸아이의 손을 잡고 그는 열심히 걸어 산을 넘었다. 그들은 새로운 마을에 작은 보금자리를 다시 꾸몄다. 이곳은 이전 마을과 너무도 달랐다. 날씨는 사나왔고, 산출은 항상 부족하고 사람들은 부지런했지만 힘든 생활 속에 지쳐있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뜨내기인 아버지가 열심히 일을 해도 생활은 늘 팍팍했고 씨종자를 사서 마을로 돌아가고자 했던 가족의 기대는 자꾸 늦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부부는 서로 보듬고 아이를 보며 희망과 꿈을 잃지 않았다. 어느새 아이도 훌쩍 자라 한 몫을 하는 소녀가 되었다. 곧 마을로 돌아가게 될 거라는 기대가 현실이 되어가던 어느 해 여름,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 어지간한 날씨에는 단련된 마을사람들이었지만 이번에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다. 좌절하는 사람들과 또다시 짐을 꾸려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고된 노동을 이겨내 왔던 아버지는 심한 좌절 끝에 몸져누워 버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해 내려오는 전설의 샘을 찾기 위해 산을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직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매일 산을 바라보며 희망을 기다렸다. 소녀는 어머니에게 아버지를 맡기고 샘을 찾으러 떠나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가만히 앉아 가족과 마을사람들의 절망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확신했다. 자신이 그 샘을 찾게 되리란 것을. 어머니는 아직 어린 소녀를 만류했지만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열흘 넘게 계곡도 말라버린 깊은 산 속을 헤맸다. 씩씩한 그녀였지만 아껴먹던 물과 음식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자 점차 희망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참을 헤매다 지쳐 쓰러진 그녀는 눈망울이 커다란 사슴이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을 떨어뜨려 주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깜짝 놀란 그녀는 저 멀리 달아나는 사슴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잠깐만, 잠깐만, 너를 헤치려는 것이 아니야, 그 물방울이 어디서 났는지 그것만 알려줘.” 사슴은 그녀의 안타까운 외침을 들었을까?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소녀를 쳐다보더니 다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왠지 소녀가 따라갈 수 있게 천천히 뛰는 것 같았다. 잘 따라오고 있는지 가끔 확인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사슴을 따라 열심히 뛰어가면서도 주변의 나무들이 점점 푸르러지고 생생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공기도 점차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갑자기 눈앞이 훤해지더니 조그만 공터가 나타났고 그 곳엔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샘이 있었다. 정신없이 물을 마시고 또 마셨다. 갈증이 해소되자 그녀는 또 다른 걱정거리에 부딪혔다. ‘이 샘은 생각보다 작은데? 이 샘으로 마을을 살릴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물을 마을로 가져가지? 설사 가져갈 수 있다고 해도 내가 물을 다 퍼 가버리면 이곳의 나무들과 다른 생명들은 어떡하지?’ 한참을 고민하던 소녀는 샘으로 이어진 작은 물줄기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물줄기를 따라 다시 걸었다. 다시 하루를 걸었다. 그리고 드디어 발견했다. 샘이 아닌, 엄청난 양의 물이 고인 산 위의 호수였다. 한 해 정도의 가뭄에는 끄떡없는 깊고 깊은 호수였다. 소녀는 자신이 전설의 샘, 아니 호수를 발견한 것을 알았다. 감사했다. 분명히 이 호수의 물을 마을로 가져가 사람들과 곡식을 살릴 수 있다는 것도 느꼈다. 찬찬히 호수 주변을 걸으며 생각하고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호수의 한쪽 줄기가 계곡과 가깝게 접해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계곡에 접한 호수의 제방을 파기 시작했다. 하루 온종일 흙을 파내고 작은 홈을 만들자 드디어 계곡으로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처음 졸졸 흐르던 물은 점차 그 자체의 힘으로 둑을 무너뜨리고 콸콸 흐르기 시작했다. 메마른 계곡은 정신없이 물을 받아들였고 아래로 아래로 흘려보냈다. 물은 생명이었고 물이 닿은 모든 곳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소녀는 정신없이 계곡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물은 소녀를 앞질러 내려갔고 계속 흘러 산 아래까지 내려갔다. 산에 간 사람들을 기다리던 마을 사람들은 신의 선물을 보았고 기뻐 춤을 추었다. 사람들은 살아났고 가축과 곡식들도 살아났다. 누가 물을 가져왔는지 아무도 몰랐지만 소녀는 상관없었다. 계곡에서 내려온 물은 너무도 맛있고 곡식들은 쑥쑥 자랐다. 아버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가족과 마을에는 다시 평화가 돌아왔다. 드디어 종자를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다 떠나버린 그 곳은 쓸쓸했지만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고 하나 둘씩 돌아온 사람들과 새로이 희망을 찾아든 사람들로 곧 다시 예전의 평화롭고 화목한 마을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한 마을이 있었다.

비록 형체는 사라졌지만 그들의 영혼은 땅에 스며
그 위에서 나고 자라는 이들에게 훌륭한 양분이 되어주었겠죠?
은주언니가 알려줬는데
켈트어로 '아남카라'는
'같은 흙이었던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 즉 영혼의 동반자'라고 해요.
그들의 아름다운 삶은 우리가 공유하는 영혼을 딱 그들의 노력만큼 더
풍요롭게 했을테니 결코 허망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이것이 우리가 자신의 천복을 힘껏 찾고 또 누려야하는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언니, 우리 정말 회사하나 차려야 할 것 같아요.
다음부터 만나면 구체적인 플랜으로 천천히 들어가보는 것도 좋겠어요.
언니가 없었다면 머리에 떠올랐더라도 감히 입에 올리지 않았을 겁니다.
왠지 언니랑 하면 뭘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런 느낌들이 언니의 천복을 여는 열쇠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언니..
근데..갑자기 무지 보고 싶다!
오후에 정독도서관갈건데..혹시 안 오실라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