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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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자기계발 강사의 전문성을 묻는다. 아니, 회의한다. 그들이 과연 전문가 집단인가를 따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기계발 강사들은 유명세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진다. 비판적인 글을 쓴 까닭은 그들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도 자기계발 강사로서 위기의식을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자기계발 강사는 가르치는 재능을 가진 비전문가였다. 비전문가 강사들이 활동할 수 있었던 시기는 21세기의 첫 번째 10년으로 끝날 것이다.
지난 10년 남짓 동안, 비전문가 강사들은 자신의 실력 덕분이 아니라, 자기계발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활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전문성을 갖춘 강사들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자기계발 강사의 전문성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강화시킬 수 있는지는 8편에서 다루기로 하고, 이번 호에서는 강사의 전문성이 어디에 있는지에 들여다보자. 자신의 명성에 거품이 있다면 스스로 걷어낼 수 있어야 더 탁월해질 수 있다.
나는 자기계발을 원하는 사람들 앞에서 십년 이상 강연을 해 왔다. ‘시간관리’라는 주제로 한 강연만 250회 이상 진행했다. 시간 관리를 직접적으로 다룬 책은 스무 권 정도 읽었다.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시간관리 유료 코칭을 진행했고, 무료로 일대일 시간관리 상담을 진행한 사람들은 수십 명이다. 나의 경력을 언급하는 것은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랑하기에는 조촐한 이력이다. 읽은 책의 권수를 보라.) 독자들에게 ‘자기계발’ 강사의 이면을 보여 드리고 싶어서다. 방금 말한 나의 이력은 전문성을 증명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정리해 본다.
강연 횟수가 전문성을 보장하는가?
많은 강연 횟수는 전문성을 확보해 주지 못한다. 횟수보다 중요한 것은 강연 대상과 강연의 내용이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같은 내용의 특강을 많이 진행한다고 해서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효과적인 레퍼토리를 반복하고 근사한 오프닝과 감동적인 클로징을 연출하는 법을 익힘으로써 좋은 강연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전문성이 쌓이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100회의 강연을 진행하더라도 쌓이는 것은 숫자일 뿐, 실력이 아니다.
자기계발 강사들의 “강연 횟수=전문성”이라는 등식은 착각이다. 횟수와 전문성이 무관하지 않지만, 직결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강연 횟수를 통해 쌓이는 것은 전달력이지, 강연 콘텐츠에 대한 전문성이 아니다. 사실, 강사에게 중요한 것이 전달력이다. 전달력에 대해서는 8편에서 다루고, 여기서는 강사가 강연 주제에 대한 전문성을 가졌는가에 초점을 맞추자.
지금 말하고 있는 전문성은 강연 콘텐츠에 대한 전문지식과 스킬을 말한다. 콘텐츠에 대한 전문성은 횟수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얻는 것이다. 책이나 사례 연구를 통해 필요한 지식을 쌓고, 자신이 적용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실천한 결과를 관찰하며, 효과성이 검증된 지식을 찾아내야 진짜 실력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효과적으로 자신을 알리기 위해 영업적으로 중요한 기업이나 단체에 자신을 알리는 활동과 별개의 활동이다. 강연 횟수를 늘리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강연의 질을 강화시키려는 노력이다.
하루 중의 대부분을 마케팅과 영업에 쏟는 강사들과 눈만 뜨면 자신의 강연 주제에 대하여 지식을 쌓고 내용을 업데이트하는 강사들 중에 누가 빨리 유명해지겠는가? 나는 전자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다. 그저 현실이다. 마케팅 활동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자기계발 강사로서 ‘지속적인’ 성공을 누리고 깊어지기를 원한다면, 마케팅 활동과 연구 활동을 조화시켜야 할 것이다.
자기계발 산업은 학자들의 세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자기계발 강사들에게 깊어지라고 강요할 순 없다. 다만, 자기계발 독자와 청중들도 자기계발 세계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합리적인 기대를 하고, 실망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나는 강사들이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지 못한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자신의 유명세를 자신의 실력으로 여기는 태도, 혹은 유명세를 전문성으로 연결하려는 의지를 비판한다. 그들은 독자나 청중이 질문을 할 때, 모르는 것도 아는 것처럼 말한다.
‘강사’라는 타이틀 속에 깃든 ‘지적 거품’을 스스로 걷어내야 한다. 강사는 강연을 업으로 하는 직업인이다. (교육자 혹은 지식인이라는 자의식이 없다면, 강사도 하나의 직업일 뿐이다.) 일반 직장인이 자신의 일을 10년 동안 한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일에 대한 CEO 마인드(주인의식)를 갖고 10년 동안 주도적으로 일하면서 필요한 역량을 개발해야 전문가가 된다. ‘직장인 10년차’라는 말 속에는 두 부류가 있는 셈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을 달성한 전문가와 1년차를 10년 동안 반복한 평범한 일반인.
마찬가지로 100회 강연 경력의 강사라는 말 속에도 프로페셔널한 강사와 강연 경력이 많은 강사가 섞여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느 강사가 강연 경력이 많다면, 강연 콘텐츠에 대한 전문가라고 해석한다. 그렇지 않다. 그는 준비한 지식을 세련되게 전달한 것이지, 그에 관한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전문성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수치지향적인 독서가 전문성을 보장하는가?
누군가가 몇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할 때, 그런 독서 이력에도 거품이 많다. 읽은 권수만큼 성실히 실천하며 내용을 소화했는지의 여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2010년, 교보문고가 주최한 제2회 <대한민국 독서경영대회>에 갔더니 ‘대한민국 독서실태 보고‘라는 세션이 있었다. 교보문고와 휴노컨설팅에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2009년 우리나라 직장인의 평균 독서량은 11.8권이다. 그리고 직장인들 중 30%는 일 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 30%를 제외하고 계산하면, 책을 읽는 직장인들은 일 년에 13권 정도의 책을 읽는 셈이다.
다음 세션은 연세대 한준상 교수님의 강연이었는데, 앞서 발표한 독서량 조사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 직장인이 일 년에 11.8권을 읽는다는데, 저는 그 수치는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책을 '본‘ 것에 따른 수치라 생각합니다.” 필자도 동의한다. 여러 독서 전문가들은 책은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 말한다. 등식으로 표현하자면, <읽기 = 보기 + 생각하기>다. 책을 통한 지적 성장을 경험하려면 빨리 그리고 많이 읽어대려는 충동을 억누르고, 사색을 곁들여야 한다.
사색하지 않은 독서가 의미 없다는 말은 아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흥미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좋다. 나는 인생을 즐겁게 만드는 것의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전문성을 얻고자 하는 독서는 ‘많이’ 읽는 것이 덜 중요해진다. 읽어야 할 책을 제대로 ‘선정’하여 ‘깊이’ 읽어야 한다. 두 가지가 중요하다. 1) 전문성을 키워 줄 책들을 매우 신중히 선정해야 한다. 이 작업이 지루하고 어려워 사람들은 아무 책이나 일단 손에 잡는다. 2) 빨리 후딱 읽어내려는 조바심과 욕심을 내려놓고, 손에 든 책을 내 것으로 소화하며 읽어야 한다. 전문성을 위한 독서를 하고 싶다면 “독서는 사색으로 가는 통로”라는 쇼펜하우어의 견해에 동의해야 할 것이다.
다독이 필요한 경우가 있기는 하다. 강연 스크립트나 PPT를 구성하기 위해서 자료를 조사할 때 말이다. 이 때는 관련 책이나 잡지를 빠른 시간에 많이 훑어 볼 수 있는 요령 있게 다독할 수 있으면 좋다. 하지만 전문성을 갖지 않으면, 자료를 엉뚱하게 해석하기도 한다. 자료를 해석하는 힘과 재가공하는 능력은 콘텐츠에 대한 전문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전문성은 아무런 책을 100권 읽음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책을 사색과 함께 정독할 때 조금씩 쌓이는 것이다.
유명세와 전문성은 비례하는가?
자기계발 강사들의 유료 상담 경력은 그나마 전문성을 검증할 가장 타당한 요소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의 경우, 상담 후 그들이 삶에서 얼마나 변화를 이루었는지를 관찰해 보지 못했다. 그들이 보내 준 메일이 진솔하다면, 몇몇 사람들은 분명 변화된 삶을 창조했다. 그런 분들이 적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가 되어야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이런 생각들로 인해 나는 스스로를 전문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수개월 전, 나도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인식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어느 시간관리 강사와 식사를 하며 나누었던 이야기 덕분(?)이었다. 당시 그는 30~40회의 시간관리 강연을 진행한 경력이었다. 기업에서 초청된 경우는 드물었고, 스스로 기획한 무료 강연 횟수까지 포함한 수치였다. 그는 이야기를 하다가 지나가는 말로, “지금까지 시간 관리를 한 3년 진행했으니 저는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생각하거든요” 라고 했다.
당시, 나는 그보다 20배 이상 많은 강연을 했는데도, 스스로를 전문가로 생각하고 있지 못했다. 그도 나도 둘 다 객관적인 자기인식이 결여되어 있었다. 직업인으로서의 현실을 직시하려면, 1) 자기 분야의 전문성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2) 자신이 그것을 갖추었는지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무엇이 자기계발 강사를 전문가로 만드는가?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바라보는 자의식인가? 3년 정도의 경력인가? 강사의 전문성은 자성예언으로 표현되면 그만인 것인가? (자기계발 담론 중에 ‘자성예언’이란 개념이 있다. 이미지 트레이닝과 맞닿은 개념으로, 스스로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믿으면 이루어진다는 내용이다.)
자기계발 강사들은 가르치는 재능과 남을 돕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물론, 강사들도 저마다의 개인의 특성은 다르지만, 하나를 알면 그것을 어서 전해주고 싶은 성정을 가졌다는 말이다. 이런 기질은 학자들이 하나를 알면 다른 하나를 깊이 파고드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따라서 강사들의 강연 콘텐츠에 대한 전문성은 빈약한 편이다. 탁월한 강사들도 있다. 10~20년 동안 기업에서 훌륭한 성과를 달성한 스타급 업무수행자 출신들이 전달력까지 갖추면 탁월한 기업교육 강사가 된다. 그들은 연간 수 억 대의 수입을 벌어들인다. 그들은 이 글에서 말하는 수준을 넘어선 이들이다.
그렇다면, 이 글에서 말하는 강사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조직 경험이 없거나 혹은 조직 경험에서의 성공의 경험 없이 짧은 직장 생활 후, 자기계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1998년 이후에 자기계발 산업에 뛰어든 강사들을 말한다. 이들 중에서 이미 화려한 강의 경력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경력에 비해 그들의 전문 지식은 허접할 수도 있다는 글이었다. 조직 경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조직 경험은 결정적 요인이 아니다. 실력의 빈곤은 그들이 자기계발 산업의 번영에 힘입어 전문성을 연마하지 않아서다.
유명세와 실력이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유명세와 실력의 연결고리가 매우 빈약한 경우도 있다. 자기계발 강사는 강연 콘텐츠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많다. 이 글을 쓴 의도는 두 가지다. 1) 자기계발 수요자(독자들과 청중들) 분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들이 (자신을 도울) 좋은 콘텐츠를 식별할 힘을 가졌으면 좋겠다. 2) 자기계발 강사들에게, 점점 더 많은 독자들이 자기계발서를 외면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스스로 거품을 걷어내고 진짜 실력을 쌓아야 독자들도, 강사들도 더 나은 미래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