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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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다녔던 회사의 스피릿 중 몇 타이틀이다.
‘스피릿’이라니 좀 우습기는 하지만 정말 ‘스피릿’이라고 부른다. 신입사원 연수 때부터 당연히 암기해야만 하는 목록 중 하나이다. 신입사원 팀빌딩 때 조원들과 함께 산을 오르며 ‘스피릿’을 암기하기도 했다. 순진하던 대학 4학년 여름방학, 호기심에 지원한 인턴 교육을 받으며 많은 ‘원칙’과 ‘정신’을 들었고 이것들에 매료되어 그 회사에 입사를 결심했었다.
대놓고 돈, 좀 더 고상하게 돌려서 ‘이윤추구’가 회사의 첫 번째 목표라고 내세우는 곳보다 뭔가 있어 보이기도 했고, 먹고 살기 위해서 회사에 들어가더라도 이왕이면 좋은 목표와 비전이 있는 곳에서 나도 함께하고 싶은 젊은 마음이었다.
상당히 오랜 세월을 그 곳에서 보냈다.
20대를 그곳에서 완전히 다 보내면서 회사는 내 생활의 중심이었다. 지금은 상상도 되지 않지만 그 때는 토요일에도 4시까지가 정규근무시간이었다. 아침 6시 텅 빈 좌석버스를 타고 졸면서 출근해서, 야근은 당연했고 평일에 자면서 퇴근하고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 그래도 많은 것을 배우고 회사 지정도서이긴 했지만 많은 책을 읽는 기간이었다. 그런 시간 속에서 영어학원도 다녔으니까.
주임으로, 대리로, 한 단계, 한 단계 승진을 할 때마다 우린 다시 그 스피릿을 암기했다.
언젠가 그 곳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있는 동안 즐거웠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돈보다 일 중심’이란 조항과 ‘일보다 사람 중심’이란 조항에 대한 서로 다른 내 마음이었다.
‘그래, 돈보다야 일 중심이지.’ 가장 마음에 들었던 항목이었다. 돈은 시간차야 있겠지만 일에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라고 의심 없이 믿었다. 그 때도 그렇지만 지금까지도 돈이 나의 행동과 생각에 최우선 순위가 되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반면에, ‘일보다 사람중심’이란 항목은 그 젊고 순진하던 시절에도 한 번도 진심으로 믿지 않았던 것 같다. 나에게 사람은 최고의 가치로 삼을 만큼 믿을 수 있는 존재도 아니었고, 또 사람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살아본 경험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차라리 내가 공을 들인 만큼 되돌려주는 일-때론 공부-을 믿지, 사람에게는 그만큼 기대고 의지해 본 적이 없다.
참으로 이상했다. 사람에게 그렇게 큰 상처를 받은 적도 없는 것 같은데, 나에게 그것은 의심의 여지없는 사실이자, 진실이었다.
IMF의 광풍이 닥치자, 회사는 사람을 일부 정리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서 사람보다는 ‘일’이 중심이 되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나도 ‘역시나’하고 실망했지만 가장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은 진심으로 ‘일보다 사람중심’이라고 믿었던 ‘순수했던’ 동기들이었다. 그들은 결국 그 상처를 이겨내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다. 오히려 ‘이 곳도 별 수 없구나’라고 약간은 시니컬했던 나는 그 와중에서도 씩씩하게 살아남았다. 그렇게 시간이 갔다. 난 한 번도 내가 믿고 있던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나에게 깨달음의 그날이 찾아왔다.
내 주변에는 내가 시간과 정성을 들인 사람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사람’으로 보지 않고 ‘일’로 보았던 이들은 내가 일을 떠난 순간 나에게서 사라졌다. 드물게 몇몇, ‘사람’과 ‘사람’으로 만났던 사람들만 나에게 남아있었고 나는 일을 통해서 배운 것이 아니라 일을 함께 한 사람을 통해서 배우고 성장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일보다 사람’이 중심이었다.
요즈음 성실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들으면서 무언가 불편했다. 마치 내가 그들을 속이고 있는 느낌이었다. 진실한 마음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애써 별로 그렇지 않다고 변명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런 이미지는 사실 과거에도 있었는데, 솔직히 그런 이미지의 덕도 많이 보았고 그래서 편하기도 했는데, 왜 요즘 특히 불편할까? 내 마음 속의 미안함과 불편함에 대한 답을 찾아 보았다.
과거에는 한 번도 내가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능을 믿었다. 때로는 얄팍한 재능을 믿고 성실하지 못한 것이 드러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도 내가 성실하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또 나는 적절히 타인의 그런 인식을 이용하며 살았다. 그러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밖에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던지 관계없이 나 자신에게 나는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런 어느 날 나는 벽에 부딪혔다. 그동안 그럭저럭 잘 해내던 일이 언젠가 나의 벽이 되리란 것을 섬광처럼 느끼게 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벽을 부수고, 또는 타넘고 올라갈 열정과 성실함이 나에겐 없다는 사실이었다. 더 이상 열성과 성실함 없이, 내가 해 오던 대로 진심을 다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막연했지만 절박한 갈망으로 새벽에 일어나기 시작했고 100일간의 시간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다시 ‘성실함’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남들이 바라보는 나와 상관없이, 스스로에 대한 신뢰와 성실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때서야 나는 깨달았다. 재능보다 성실이란 이런 거구나. 처음 출발선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길고 긴 인생에서 결국 결실을 맺는 것은 성실이구나. 15년 전 회사에서 외웠던 것이 마음으로 알게 된 것이다.
지난주 연구원 오프라인 수업에서 스승님께 금과옥조를 하나 받아 마음에 안았다.
“성실함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실함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아직도 내가 성실한 사람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앞으로 누가 성실해 보인다고 말하면 이렇게 대답해야겠다.
‘저 자신에게 성실하려고 열심히 노력 중입니다’라고.

상현오빠의 살림살이 뒤 엎는 얘기..
방금전까지 내가 하고 있던 생각..
바쁘다는 핑계로 옷장정리를 안하고 살았더니
뭐가 있는지 없는지 통 감이 안잡히고
그저 어수선한 느낌.
하기는 해야하는데 하면서도
할 일도 많은데 언제 다 뒤짚어 엎어? 안하고도 잘 살았는데 뭘 굳이 뒤짚어 엎어?
에 굴복하여
그때 그때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나가서 사오곤 하는데..
사와놓고 생각해보면 어딘가 구석에 처박혀 있던 바로 그것일때가 많고..
재고 파악이 확실하지 않으면 규모있는 살림도 어려울 것 같아서
저는 그냥 짬나는대로 과거로도 맘편히 떠나보기로 했습니다.
시간이란 아나로그로 흐르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우리가 찾아낸 과거가 자연스럽게 우리가 찾고 싶은 미래로 이어지라 믿어봅니다. ^^

자연스럽고 흐르는 삶, 이것이 제가 성실함으로 추구하는 삶이예요.
성실은...
지난번 오프 수업때 사부님이 말씀하신 것 중 자신에 대한 확신 있지요?
그거였던 것 같아요.
내가 나를 바라볼때 자신없다는 것, 그리고 자신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
그러다 보니 외부에 흔들리고.
결국은 누구에게 보이고 스스로를 몰아가기 위한 성실함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믿음',인 것 같아요.
그래, 지금은 아니지만, 이렇게 한발짝씩 가다보면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어, 그러니 조급해하지도 말고, 한눈팔지도 말고 너 자신을 믿고 그냥 가자.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네가 꿈꾸는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이런 거죠.^^
덧붙여 언니 말 명심! 할께요 ^^

더구나 '사람'이 중심인 것이 바로 '일'인 곳이 사람이 사라진 '일'중심이라면 그것만큼 아이러니한 것은 없겠지.
성실과 재능,,,,
이것도 참 어렵지만 하나가 없으면 결국 아무것도 없는 거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바로 성실이겠지 ^^
잔재주도 실력이긴 한데 ^^, 거기에 무엇을 더하면 필살기가 될까?
고민해봐, 연주야,
내 칼럼 한 중간에 나도 잔재주를 부렸다는 고백이 있어. 남들이 나를 성실하게 보는 것을 활용했다는 것이 바로 그걸꺼야. 그 결과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구.
고민 결과 꼭 알려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