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은 김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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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역에 도착하다. 천안과는 인연이 깊다. 대학공부와, 군생활을 천안에서 했다. 스무살 어느 봄날. 하숙집 옆, 잔디밭에서 담배 피우다 불냈다. '방화의 추억'이 된 사건. 이제는 내가 그랬다고 말할 수 있다. 조금 올라가면 성환이다. 성환은 '배'로 유명하다. 고참과 밤늦게 순찰을 돌면, 배꽃이 은하수처럼 빛난다. 그 흐드러진 빛깔에서 풍기는 배꽃 냄새를 맡으면, 군인은 환장한다. 발가벗고 배나무 사이를 뛰어다니고 싶다. M16개머리판에서 꼬질대를 빼내서, 철조망 넘어 배를 따먹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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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하고, 1분을 기다리자 자로형의 에쿠스가 온다. 솔직히 귀빈이 된 느낌이었다. 차가 날개라고, 사람도 조금 달라보인다. 자로형을 처음 봤을 때는, 전형적인 음식점 사장님 같았다. 음식점 사장은 성격이 비슷비슷하다. 겉에서 느껴지는 것과, 안에서 나오는 분위기가 다르다. 그럴수 밖에 없는데 밖으로 보여지는 태도는, 손님을 접객하면서 훈련된다. 손님은 무서운 존재다. 손님 앞에서는 사람 좋게 보여야 하고, 민감해야 한다. 손님이 나의 기질을 디자인해준다. 고통스럽지만, 감사한 일이다. 음식장사는 마음을 보통 단단히 먹지 않으면 망한다. 몇십년 장사를 한사람은 외유내강의 성격을 득한다. 자로형이 그랬다. 에쿠스는 외유내강의 결과중 하나다.
차를 타고 가면서도 전화가 계속 걸려온다. 신규로 '마실'사업을 하고 싶다는 전화도 있다.
마실은 외진 곳에 있다. 난 음식장사의 승부수는 맛보다 목이라고 생각한다. 맛 없어도 목이 좋으면 운영이 된다. 이런 생각을 가져왔는데, 막상 마실을 보니 경이롭다. 점심시간이 지났음에도, 웨이팅 손님이 줄지어있다. 오늘이 주말인가 싶을정도다. 음식장사는 참 이해하기가 힘들다. 손님을 도대체가 종잡을 수 없다. 직장인이 점심 시간때 오고, 1시 넘어서는 시간 많은 아주머니가 자리를 채워준다고 한다. 카운터에는 생기발랄한 여자분이 계셨는데, 자로형은 '아내'라고 소개해주었다.
자리가 없어서, 천안 터미널쪽으로 가다. 이곳에서는 카페 사업을 한다. 평일 오후인데도, 천안 터미널은 활기가 있다. 건물 4층에 있는데, 이곳도 입지와 아이템을 생각한다면 매출은 괜찮은 편. 커피와 씬피자가 주메뉴다. 앉아 있는 동안, 손님은 간간히 들어왔다. 천안 상권이 서울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다. 이렇게 손님이 간간히라도 들어와준다면, 손님 없어서 지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직원들이 활력이 붙을 때가 언제인지 아는가? 월급 많이 받을 때가 아니다. 일이 막힘없이 진행될 때이다. 적절한 과업이 없으면, 사람은 무능력해지고 바보가 된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실을 본능적으로 안다. 훌륭한 경력이 몸값을 올린다. 손님 없는 것만큼 힘든 것이 없다. 손님에게 이리저리 치이는 것이, 손님 기다리다 지치는 것보다 낫다.
사업 이야기는 계속된다. 나의 기질이 외식업에 맞다. 안맞다.라고 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다. 외식업중에서도 내게 맞는 아이템이 있다. 우리집은 분식집, 우동 떡볶이 같은 밀가루 장사를 해왔다. 외식업 중에서도 밀가루 장사는 승부가 제일 빠르다. 분식은 마진이 높다. 조리가 간편하고 빠르기에 주방에 사람이 많이 필요치 않다. 단, 회전율이 빨라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목좋은 곳에서 분식장사를 제대로 한다면 가문을 일으켜 세울 수도 있다. 분식장사가 날렵하고, 빠르다면 한정식은 무게가 있다. 일단 주방에 최소 4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장치로 숯불 만들고, 불판 닦고 게다가 반찬이 몇가지인가? 삼겹살 먹는다고 하면, 직원이 평균 8번을 서빙 본다고 한다. 분식은 음식 내주면 특별히 손님에게 다시 갈 일이 없다. 손님도 먹고 나가기 바쁘다. 분식장사 하던 사람은 한정식을 하기 어렵다는 자로형의 말에 수긍했다.
우리 사촌형은 고기집을 한다. 내가 장사를 시작하기전에 그 형은, '음식장사는 하다 하다가 할 것 없으면,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자로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같은 장사를 해도, 자기 업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천지 차이다. 음식장사만한 일이 없다. 제조업이나 에이젼시 같은 경우는 빛 좋은 개살구다. 몇 천만원, 몇 억씩 왔다갔다 해도 중간에 남는 게 없다. 게다가 재수 없으면, 돈을 떼이기도 한다. 음식장사는 외상이 없다. 머리를 굴리면 마진폭을 높일 수도 있다. 무엇이 자부심을 높여주는 것일까? 공부다. 자로형은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한다. 영양사 출신의 직원도 2명 있다. 그들은 R&D만 한다고 한다. 음식 사업 하면서, 이렇게 연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경쟁이 워낙 심하다 보니까, 연구하지 않으면 손님을 끌 수가 없다.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실천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를 원하면서, 의외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워렌버핏은 말한다. 앞서 마실의 경이로운 손님행렬은, 공부와 연구의 결과다.
천안, 아산 역에 도착하다. 책과 글쓰는 공부도 좋지만, '현장'이야말로 성장과 현실성의 접점이라는 이야기를 나누다. 내 일에 비젼이 더 넓게 보이자, 힘이 솟는다. 내일 부터는 새로운 메뉴를 런칭한다. 그 기념으로 이벤트를 한다. 뒤집어지게 바쁠 것이다. 자로형에게서 받은 기운으로, 그 준비를 열심히 한다.
사족으로, 자영업자의 일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하자. 자영업자는 시간을 내 마음대로 운영할 수 있다. 근무시간이 아무리 널널해도, 직장인의 24시간과 자영업자의 시간은 다르다. 한없이 늘어질수도 있지만, 오로지 일만 할수도없다. 혼자 일하기 때문에, 의외로 슬럼프에 쉽게 빠진다. 피카소도 근 10년간 생산력이 떨어졌던 때가 있다고 하지 않은가. 시간관리도 생각해야 하지만, '시간의 탄력성'이 더 중요해 보인다. 힘 있게 일할려면, 공부가 필요하다. 공부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내 경험상, 일 대 일로 만나서 하는 공부가 제일 효과가 좋다.
은주 누나가 '혼자서 점심 먹지마라'라는 책을 추천해주었다. 자영업은 외로운 업이다. 외로우면 생산성이 떨어진다. 개인 자영업자의 강점이란, 틈새 시장을 빠르게 치고 올라가기다. 에너지가 없다면, 활기차게 일할 수 없다. 그 에너지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점심때 약속을 잡고 사람을 만난다. 에너지를 받아서, 저녁에 장사한다.
예약 손님으로 가득한, '마실'의 대기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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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요즘 우리동네에 커다란 찐빵과 만두를 파는 가게가 생겼다. 한 개에 천 원. 큼직한 찐빵과 만두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 시장기를 자극하는데 무지하게 대박이다. 하나만 먹어도 배가 벌떡. 청년이라도 두 개를 먹는다면 시장기를 완전 면하게 될 정도. 먹음직 스러움에 반해 나도 자주 들린다. 불황에는 이런 음식이 잘 팔린다는 데, 장기적 불황에 처하고 있는 것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일선에서 현장을 운영하는 싸장님이니 잘 알겠구먼. 요즘 경기가 어떠한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거지?
잘 다녀왔구나. 찾아가 만나볼 만한 선배지? 겉만 보면 금방은 잘 알 수 없지만 내실이 탄실한 사람이지. 무엇보다 꿈벗들에게 성의껏 참 잘해. 큰 인물, 건이도 그렇게 되시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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