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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3일 17시 27분 등록

아들에게

엄마는 오늘 아침 너무 행복하다.
하나님을 다시 만났어.
어떤 기분인지 말로는 불가능해.
안타깝지만 일일이 그 기분을 설명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게.
가슴의 이 충일함을 조금은 그냥 혼자 가지고 있어볼래.

오늘 새벽 일어나자마자 메일을 먼저 열었어.
하나님을 무척 사랑하는 어떤 분에게서 편지가 와 있더라.
그런데 그 분 편지의 어느 귀절이 엄마를 잠시 멈추게 했어.
그 순간 불현듯 엄마는 새로운 깨달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참고로 말하면 그분은 교회를 다니진 않는다.
그러나 믿음으로 자유를 얻은 분이야.

엄만 그분에게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오늘 아침 님의 편지를 받고 난 후 대단한 일이 저에게 벌어졌습니다.
의식의 지각변동이랄까요.
물론 이런 일이 제게 가끔씩은 일어나니까, 놀라실 필요는 없어요.
그말은 어떤 통찰이 와서 내가 사물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뀔 때,
그럴 때를 제식대로 표현하는 말이니까요.
'그분의 인도를 구하며, 믿음으로 나가라'는 님의 말에 멈추는 순간,
통찰이 제게 일어난 겁니다.
그게 뭐 그리 특별한 말인가, 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이전에 저는 제가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하는 사람이라고 믿었죠.
교회 나가는 일보다 성경을 열심히 읽으며 그분의 마음을 구하려고 애썼으니까요.
그러나 몇년 전부터 교회에 나가는 일을 그만두었답니다.
기독교의 울타리가 나와 신을 가둬두는 것에 멀미를 느껴서였지요.
그런데 그건 핑계였다는 걸 오늘 아침 알게 되었던 거예요.

이유는 단순해요.
내겐 나를 다 던져도 두렵지 않을 믿음이 없었던 겁니다.
그러니 역사가 일어날 리도 없었고, 저는 지쳤던 겁니다.
오늘 불현듯 알게 되었어요.
울타리를 벗어났다고 했지만, 애초 울타리는 있지도 않았다는 것을요.

그분이 오늘 내게 다시 오셨어요.
숨 쉬기 어려울 만큼 폭폭수같은 기쁨이 저를 덮쳤답니다.
성경을 꺼내들고, 다시 읽기 시작했지요.
내가 즐겨 암송하던 시편들을요.
그분의 음성이 그대로 제 머릿속으로 직진하는 것을 느꼈답니다.
이제 그분에게 돌아갈래요.
그게 나 자신에게 진정으로 귀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깨달음이 왔어요.
뭐라고 해야할까요.
그분이 내 안에서 기다려준 것이 고마웠습니다.
나와 그 분 사이의 경계가 없어졌다는 것이 너무 고마울 뿐입니다.
나와 그분은 원래부터 하나였는데,

저는 늘 분리해서 생각했고,
그래서 의심과 원망을 멈추지 못했던 겁니다.
내가 이렇게 아픈데 그분은 그걸 얼마나 아실지
안다해도 내가 느끼는 레벨은 절대 아닐 거라는..불신..
이제는 아닙니다.
내 아픔은 고스란히 그분 것이고, 나는 이미 그분 속에 온전히 녹아있는 것을요.
머리가 아니라, 내 몸으로 그걸 고스란히 알게된 감격스런 아침입니다.
고맙습니다.

편지가 한도 없이 길어질 것 같아 의도적으로 끝을 냈단다.
고맙습니다, 라고 쓰는데 엄마 마음 속에 굵은 눈물 한 방울이 지축을 흔들 것처럼 쿵! 떨어지더라.
그리고 그 눈물 한 방울로 엄마의 긴 방황이 이젠 끝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오늘은 코칭을 처음 시작하는 날이다.
10시 반에 수지도서관 앞 <Hans>라는 조용한 카페에서 한 대학생을 만난다.
**라고 자기를 불러달라는 학생인데 엄마가 모닝페이지에서 기획하는 워크샵에 열심히 참석하는 아가씨야.
한 마디로 잘 살고 싶은 의욕이 대단한, 열렬 대학생이지.
키가 크고 시원하게 잘 생겼어.
그런데 자신이 그렇게 잘난 사람이란 걸 아직 못느끼는 것 같애.
그 부족감을 채우려고 혼자 무진 애를 쓰고 있어.
자신의 GREATNESS에 눈을 뜨면 그렇게 찾아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걸 나중에는 알게되겠지.
엄마는 이 나이에 겨우 그 사실을 깨달았는데, 뭐.
그 아가씨는 벌써 고민을 시작했잖아.
그러니 남은 생이 얼마나 자기 색깔로 빛나게 될까.

그런데 아들아, 왜 엄마 첫 고객으로 대학생이 왔을까.
어제, 엄마에게 코칭을 신청한 8명과 상의해 시간표를 짰다.
이 친구가 엄마 코칭의 첫 고객이 된 건 엄마가 의도한 게 아니야. 
그러니 거기엔 어떤 의미가 있겠지.
엄마는 오늘 엄마의 코칭 첫 테이프를 끊게 해줄 그 친구에게
엄마의 감격을 그대로 전해주려고 해.

아마도 엄마는 그 친구를 통해 너희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정말 좋은 코치가 되고 싶다.
엄마에게 이미 훌륭한 현장이 있으니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집이라는 현장 말이야.
실은 코치에게 자신의 가정은 가장 혹독한 현장이 아닐까. 
가족은 아무래도 가장 힘든 사람들 아니겠니.
엄마의 인간성을 바닥까지 다 알고 있으니 '척'을 할 수 없잖니.

엄마가 코치로 바라는 건 단 한가지다.

사람들이 '당신은 정말 훌륭한 코치입니다' 라고 말하기 이전에
'저는 정말 멋진 사람이었네요'하고
자기 자신들에게 진정으로 감탄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다시 질문이 엄마 자신에게로 돌아오는구나.
'그대는 그대 자신에게 진정 감탄하고 있는가?'
지금의 이 기분대로라면 "YES!!' 라고 당장 소리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에게 감탄하는 것만큼 근사한 일이 있을까.
엄만 요즘 엄마가 점점 더 좋아진단다.

어제 저녁에 인터넷으로 너에게 줄 책을 주문했다.
엄마가 먼저 읽어보고, 다음 면회 때 갖다주려고 집으로 배달을 부탁했어.
<나는 군대에서 세상에 필요한 것을 다 배웠다>란 책이야.
사실 이 책을 발견하고 많이 안타까웠다.
'이 책은 우리 아들이 써야할 책인데, 벌써 다른 사람이 썼네~'하는 생각 때문이었지.

네가 지난 번 편지에서 '글쓰는 일'에 관심이 생겼다고 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하루의 일과를 자세히 기록하는 일부터 시작해보겠다고 했을 때는 정말 기뻤다.
원하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고 현실적인 목표까지 세웠다니 얼마나 감사한지. 

군대 있는 20개월 동안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고 있다는 네 말이 엄만 참 고무적이다.
고민하면 방법이 보일테니까 말이다.
이 책을 함께 쓴 친구들이 모두 너처럼 군대생활을 한 친구들이고,
같은 고민을 안고 출발한 친구들이니 너에게는 가장 좋은 가이드가 될 것이다. 

오늘 아침도 비가 온다.
어제 시작한 비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비를 좋아하는 엄마에게는 비오는 날은 좋은 날이다.
일기에 '날씨 궂음' 대신 '날씨 좋음'이라고 적는 게 기분이 좋다.

다르게 생각해도 이상할 게 없는데, 우린 참 한 가지 생각만 하고 살았다.
그 유명한 콜럼버스의 달걀도  다르게 생각한 것의 결과 아니겠니.

어제 엄마는, 두 개의 공연을 봤다.
먼저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플루티스트'로 존경받는 <엠마누엘 파후드>가 동급의 유명한 원전연주자
두명(하프시코드(피아노)의 트레버 피노크, 비올라 다 감바(첼로)의 조나단 맨슨)과 함께 구성한
바로크트리오 리사이틀(예술의전당 14:30~)과 <Swan Lake:백조의 호수>(LG아트센터:19:30~) 공연이야.

엄마가 본 <백조의 호수> 는 메튜 본이라는 영국의 걸출한 무대 안무가겸 연출가가
차이콥스키의 고전발레극을 현대의 댄스뮤지컬로 바꿔서 연출한 거야.
그거 있잖아, 짧으면서 옆으로 퍼진 하얀 드레스(튀튀라고 부르지)를 입고
토슈즈를 톡톡거리며 발레하는 아가씨들, 크리스마스만 되면 연례공연으로 무대에 오르는
<호두까기 인형>같은 고전발레 말이야.

어제 엄마가 본 <백조의 호수>는 그것과는 달리 근육질의 남성들이 백조 깃털로 된 바지를 입고
상체를 드러낸 채로 역동적인 춤을 추는  상상할 수도 없는 새로운 버전의,<백조의 호수>였어.

 백조3.jpg백조7.jpg백조8.jpg백조9.jpg백조10.jpg백조11.jpg백조12.jpg백조13.jpg백조14.jpg백조15.jpg백조 5.jpg
노래가 없는데도 압도적인 뮤지컬 한 편을 본 것 이상의 감동을 주는 건 아무래도 연출의 힘이겠지.
2시간 3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관객을 몰입시키려면 쇼적인 요소만으로는 안되지.  
쇼는 금방 싫증이 나잖아.

사람들이 그 오랜 시간을 꼼짝 않고 빠져들게 만드는게 바로 매튜 본의 연출 능력인 거지. 
그는 연극처럼 4막으로 전체 이야기를 나누어 끌고 가면서도 쇼적인 재미까지 절대 놓치지 않더라.  
물론 그의 생각이 그토록 멋지에 무대에 구현될 수 있는 것은 연기적 요소까지 겸비한 탁월한 스킬의 무용수들과
무대, 조명, 의상.. 그 모든 것이 한 박자가 되었기 때문이지.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음악, 음악이었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쇼적인 연출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엄마마저 그 공연에 푹 빠진 건,
그래, 그거, 음악 말이다. 차이콥스키의 장엄한 음악 때문이었어.
오케스트라가 직접 연주까지 해줬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냥 음향장치를 통해 듣는 음악 만으로도 엄만 너무 좋았다.

음악이 발레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던 시대는 차이콥스키 때문에 막을 내렸다고 해야할 것이다.
복합적이고 다채로운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무용수들은 오히려 음악에 맞는 몸 동작을 개발해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거지.
암튼, 차이콥스키의 유려하고 서정적인 선율 때문에
엄마의 감성도 공연 내내 함께 춤을 추었단다.

나중에 기회 되면 어제 엄마가 본 두 공연에 대해 더 잘 설명해줄게.
<백조의 호수>는 DVD를 샀으니까 나중에 첫 휴가 나오면 함께 보자. 

코칭하러 가는 길에 우체통에 이 편지를 넣고 싶어 서둘러 썼다.
사실, 날마다 편지를 쓰겠다고 해놓고, 벌써 며칠째 편지를 못써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길게 정성을 들여 쓰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편지를 미루다 보니 며칠이 후딱 가버렸어. 
엄마는 사실, 마음으로 네게 날마다 편지를 쓴다.

아들아
엄마는 네가 엄마 아들이란 이름으로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이 정말로 좋다.
그걸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있을지...

사랑한다 아들아.
big hug를 보내며.

IP *.70.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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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10.05.23 20:40:25 *.152.81.41
오랫만에 큰아이와 함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리고 야외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었지요.

방지원 님의  '눈'을 적으며 군대간 아들에 대한 애뜻한 사랑과 그림움에 함께 젖어봅니다.

딸아이의 눈 속에 내가 있습니다
맑은 거울처럼 내가 보입니다

자꾸 주어도 부족한 내 사랑이 있습니다
보고 있어도 그리운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거울을 보며 나는 생각합니다
나의 눈 속에 내 어머니가 있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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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5.24 03:20:00 *.45.36.88

로이스 !
  언젠가 싱가폴에서의 아이들과의 생활을 이야기 할 때
좋은 엄아라는 것은 잘 알게 되었지만 
하여튼 대단한 여자라는 것, 확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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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5.24 10:53:39 *.219.109.113

신앙에서 받은 은혜와 자식에 대한 사랑이야기로

비오는 날 아침 마음이 촉촉해지는 아침입니다.

잉잉 애들이 보고 싶어 눈에 쓰나미가 몰려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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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05.25 08:37:47 *.53.82.120
선배님의 코칭
저도 신청하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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