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은 김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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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운 것이 상품이다. 본질을 드러내서, 이미지와 언어로 명료화하는 작업이 BI(brand identity)다. 어떤 디자인 작업도 첫번째 질문은, 나는 무엇인가?에서 출발한다. 그 본질을 잘 드러내서, 길을 터주는 작업이 디자인이다.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본질, 핵심, 정체성, 제다움(자기 다움)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이런 디자인 방법론은 경영이나, 문제해결에서 부터 진로선택, 의사결정등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인다. 삶은 가만히 있어도 점점 복잡해지는데, 수시로 정리를 해주어야 한다.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경력과 생각을 정리한다. 이런 일련의 행위들이 모두 디자인이다. 좀 더 단순화시키고, 촛점을 맞추어서, 명확한 방향을 찾으려는 시도다.
정철형을 만나다. 충정로 4번 출구 한국경제 신문사로 나오면, 브라운스톤이 나온다. 그곳에 사무실이 있다. 형의 사무실은 잡지에 나오는 어느 디자이너의 사무실 같다. 일에 지친, 혹은 날밤을 새운 디자이너는 가정집같은 사무실에서 샌드위치를 먹는다. 음악을 들으며 푹신한 소파에서 휴식한다. 혹은, 회사에서 키우는 고양이와 노닥거린다. 한마디로 일하는 곳인지, 가정집인지 헤깔린다.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의 작업공간은 대개 비슷한 것 같다. 전에 만났을 때, 명함을 받다.
잠깐 명함이야기를 하자. 일본 사람들은 명함을 주고 받을 때 형식이 있다. 상대에게 명함을 받으면, 작은 종이 한장이지만, 두손으로 굉장히 무겁게 받는다. 명함을 보고, 잠시 놀랜다.(입이 벌어지면서, 눈이 커지는 퍼포먼스)그리고, 상대의 얼굴을 한 번더 바라본다. 예상보다 '대단하신 분이군요'라는 나름의 언어다. 소중하게 안주머니에 넣는다. 가식적이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형식이다. 이에 비해 한국사람들은 명함을 받는 것에 성의가 없다. 받고 나서 테이블에 올려놓으면, 명함을 준 사람이 무안해진다. 혹은, 대화를 하다보면 명함으로 심심한 손을 달래기도 한다. 이리저리 구부리거나, 테이블에 툭툭친다. 생각없는 행동이지만, 기분이 상한다.
정철형의 명함을 보았을 때, 그 퀄리티가 놀라웠다. 매우 고급스러운 명함으로서, 소장하고 싶을 정도다. 감각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인가? 명함의 내용을 보기도 전에, '대단한 감각이시군요'라는 표정으로 형을 보다. 특히 명함의 로고가 궁금했다. 만나서 물었다.
'실타래가 엉킨 듯한 모양이더군요'
'불꽃이야'
'...............'
'선생님의 부지깽이 개념과 비슷해. 상대의 불꽃을 끄집어내는 불꽃이 되고 싶지'
약간 삐걱거리면서도, 묘한 균형을 맞추어가며 대화를 시작하다. 보통 브랜드 디자인을 개발하는데는, 몇개월의 시간과 몇천만원이 들어간다. 나같은 개인 사업자들에게 그런 투자는 엄두를 내기 어렵다. 대기업은 BI 투자에 적극적이다. CI도 곧잘 바꾼다. CI란 기업로고를 말한다. CI 교체는 이미지 쇄신의 역할도 하고, 새로운 각오의 표현이기도 하다. 기업이 CI를 바꾸면, 시장도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서 주가가 올라간다.
'대기업은 바보가 아니야. 비싼 돈 들여서, 개발하는데는 이유가 있지'
'하나의 프로토콜을 만들어 놓으면, 몇개고 똑같은 방법으로 적용할 수 있어'
'개인 사업자도, 인테리어 업체에게 지불하는 금액을 따져보면 충분히 BI작업을 할 수 있다.'
BI란 로고나 이미지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만으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사업체가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서, 이야기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음식점의 경우, 메뉴, 맛, 인테리어, 종업원 유니폼, 조명까지 하나의 컨셉으로 일관할때, 고객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 색깔을 절제해야 하며, 많은 의미를 전달하고자 욕심을 부려서도 안된다. 그 정서란 사업자의 정서이기도 하다.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정철형의 일이다. 작업에는 분석이 필요하다. 오너와의 지속적인 대화도 필요하다.
'입지가 안좋아도, 스마트폰이나 트위터로 찾아오는 시대가 되었어. 찾아가서 먹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것이지. 목이 아닌곳에서도 대박이 날 수 있다.'
기업의 움직임은 발빠르다. 불고기 브라더스, 투쌤플레이스 같은 영업장은 이미 아이폰용 엡을 개발했다. 지금은 단순히 매장의 메뉴와 위치 정보만 알려준다. 쿠폰을 내려받는 것이 고작이다. 더 발전시켜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닭찾기 놀이'는 어떤가? 서울 시내에 닭을 숨겨놓는다. 아이폰으로 찾아온다. 우리 닭집으로 손님이 온다면, 주인도 손님도 참 반가울 것 같다. 데이트 코스에 난감해하는 연애초보에게 코스를 디자인해줄 수 있다.
형은 , 몇개의 비지니스를 준비중이다. 스몰브랜딩과 개인 브랜드가 그것이다. 앞으로 1인 기업 및 스몰 비지니스가 많아진다. 아이폰용 엡을 개발해서, 오픈마켓에서 판매하는 것도 새로운 스몰비지니스가 되었다. 이런 사업자를 대상으로 비지니스 툴 및, 개인 심볼, 슬로건을 개발해주는 일이다.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이미 있다. 하지만, 그들은 기존의 로고나 이미지를 카피한다. 정철형의 작업은 그보다 깊이 있고, 본질에 접근하리라 생각한다. 연구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에 진지하다.
이야기를 끝내고, 형은 김치찌개를 사주었다. 유명한 곳이라고 하는데, 허름하다. 점심시간이 끝났는지, 라면사리 봉지와 휴지가 바닥에 수북했다. 마치 의도한 것 같았다. 지저분하지만, 그 집과는 어울린다.

conceptcorea 로고.

정철 형을 보면, 배우 정보석이 떠오른다. 중앙 정보부 요원같은 이미지다. 사진으로 보니, 나의 턱선이 무너진 것을 알다. 어쩌면 좋아.

디자이너가 아이디어를 발상하는 도구.

가정집 같은 작업공간. 이런 곳이라면, 의뢰인과 허심탄회하게이야기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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