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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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는 때가 되면 자기 자식을 길러줄 적당한 멍청이를 찾아 그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는 도망가버린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 뻐꾸기는 둥지의 주인 알들을 다 밀어내 깨뜨려 버리고 어미 새가 잡아다 주는 벌레를 받아먹으며 의붓어미보다 몇 배나 더 큰 새가 되어버린다. 뻐꾸기에게 기생 당한 멧새는 때로 수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둥지를 버리기도 하지만 일단 알이 깨어나면 더 이상 자식을 구별하지 못한다. 새끼 뻐꾸기가 커서 어미 멧새 몸집의 세 배 정도나 되어도 의심하기는커녕 커다란 뻐꾸기의 주둥이 속으로 여전히 먹이를 물어다 넣는다.
그레이랙(greaylag)이라는 거위는 알을 품고 있다가 둥지 밖에 알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면 목을 쭉 빼서 알을 부리 아래로 살살 굴려 둥지로 가져온다. 사람같이 손으로 알을 집어 들고 올 수 없으니 거위는 부리로 알을 굴려 둥지로 몰고 오는 것이다. 그런데 거위가 알을 굴리고 있는 중간에 사람이 알을 들어내버려도 거위는 마치 알이 그대로 있는 듯이 둥지까지 알을 굴려오는 행동을 계속한다. 거위는 알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으며 일단 시작된 알을 굴리는 동작은 둥지까지 가져오는 시늉을 해야 종료된다.
속된 표현 가운데 '새대가리'라고 하는 말은 새들에게서 흔히 관찰되는 이런 어리석음에 빗댄 것이다. 뻐꾸기나 거위의 이러한 기계적인 행동들은 본능적인 행위의 전형이다. 이성적인 기능이 빈약한 동물들은 행동을 유발하는 일정한 신호가 주어지면 정해진 행동을 기계적으로 수행한다. 본능은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고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것이며 처음 할 때부터 완전하게 기능한다. 머릿 속에 단단히 엮여 있는 프로그램과 같은 것이다.
사람 같은 고등동물들의 행동은, 이렇게 경직되어 있지는 않지만 마음속에는 똑같이 경직된 프로그램이 작동한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젖꼭지를 빨아당기고, 적당히 크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이성을 찾고 사랑을 느낀다. 누가 그대에게 '이 멍청한 새끼야!' 하고 욕을 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동료가 승진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우리의 행동은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지만 우리의 감정은 뻐꾸기나 거위의 본능처럼 자극이 주어지면 언제나 일정하게 솟아나고, 누구나 똑같이 반응한다. 우리의 감정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우리의 '욕망'은 본능인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 이렇게 생물학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진화심리학의 역할이다. 다시말해 진화심리학이란 욕망이라는 본성을 통해 인간과 사회 현상에 대해 설명한다.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욕망이란 인간이 보다 잘 생존하고 자신의 종족을 보전하기 위해 작동하는, 뇌의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어보자. 전 세계의 음식 맛은 다 다르다. 어떤 음식은 우리의 입맛에 맞기도 하지만 어떤 음식은 냄새만 맡고도 얼굴을 찌푸리게 된다. 내가 태국에서 생활할 때 종종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했던 적이 있다. 그 중 유독 '팍치'라고 불리는 향이 진한 풀은 6개월 동안 익숙해지려고 온갖 노력을 해 보았지만 도저히 진해질 수가 없었다. 태국인이 거의 모든 음식에 넣어먹을 만큼 열광하는 그 풀을 말이다. 이렇듯 세계인의 미각은 그 수만큼이나 다양하고 다르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음식과 입맛 중에서 누구나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세계인이 모두 좋아하는 맛, 그 맛은 무엇일까?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퍼져있는 음식 브랜드와 체인점을 살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어디 보자…. 패스트 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날드, KFC, 피자 헛을 비롯하여 세계 최대의 초콜릿 브랜드인 고디바와 페레로 로쉐, 아이스크림 베스킨 라빈스와 하겐다즈… 이 음식들의 맛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렇다. 바로 기름지거나 단 음식이라는 점이다. 미각은 까다로운 감각이지만 기름지고 단 음식들은 인종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좋아하는 음식이다. 왜일까?
비밀은 욕망에 있다. 단것과 기름진 것을 추구하는 욕망 프로그램이 오래 전부터 우리 뇌에 각인된 것이다. 고대의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시대에는 동물성 지방과 당분이 부족했다. 지방을 얻으려면 동물을 사냥해야 했고, 당분을 얻으려면 잘 익은 과일을 찾아야 했다. 두 가지 모두 복잡하고 때로는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방과 당분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찾아내어 먹었다.
기름기와 당분을 천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중 누가 더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았을까? 당연히 전자이다. 왜냐하면 지방은 다른 영양분에 의해 훨씬 열량이 높아 조금만 먹어도 많이 움직일 수 있었다. 당분은 바로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그러므로 지방과 당분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가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더 잘 생존하고 더 많은 새끼를 퍼뜨릴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미각을 물려받은 자식들은 마찬가지로 다른 경쟁자보다 더 잘 살아남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지방과 당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고, 아주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 결국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었다. 지금 우리의 입맛은 그렇게 자연 선택에 의해 길들여져 온 것이다. 지금 우리는 지방과 당분이 충분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두뇌는 여전히 수렵기에 머물러 있기에" 여전히 치킨과 삼겹살에 환장한다.
다른 예를 들어 보자. 동양과 서양의 남자들이 여자들의 미를 판단하는 기준은 대단히 다르다. 특히 얼굴에 대한 선호도는 다양하다. 예컨대 서양인들이 좋아하는 동양 여자들의 얼굴은 동양인들을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루시 리우(Lucy Alexis Liu: 미녀 삼총사, 나비 효과 등에 출연한 여배우)를 보자. 흡사 애니메이션 '뮬란'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얼굴은 서양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동양에서 그녀는 그다지 미인이 아니다. 오히려 '아줌마'의 인상에 가깝다고 남자들은 이야기한다.
얼굴에 대해서는 이렇게 서로 다른 미적 감각을 가진 동서양의 남자들이 유독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는 여성의 외모 특징이 있다면 신기한 일이 아닌가. 동서양과 노소를 막론하고 남자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이 특징은 무엇일까? 그렇다. 바로 'S 라인 몸매'이다.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모래 시계' 체형은 모든 남성들에게 사랑받는다.
실제로 심리학자 데벤드라 싱(Devendra Singh)은 문화권에 따라 여성의 이상적인 체중에 대한 견해는 다르지만, 이상적인 허리 대 엉덩이의 비율은 항상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세계 어디서나 남자들은 허리 대 엉덩이의 비율이 0.7인 것을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앞서 말했듯 욕망이 '생존과 종족 보전에 유리하도록 설계된 뇌의 프로그램'이라면, 왜 S라인은 '글로벌 스탠다드'가 된 것일까? 왜 자연 선택은 남자들에게 모래 시계 모양을 좋아하도록 만들었을까?
그것은 허리 대 엉덩이의 비가 다산성(多酸性)을 나타내는 훌륭한 표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허리 대 엉덩이의 비가 0.7인 여성은 그보다 더 높거나 낮은 비를 가진 여성보다 출산력이 높다. 그러므로 잘록한 허리 라인을 좋아한 남자들은 다른 남자들에 비해 출산력이 뛰어난 배우자를 얻었고, 따라서 더 많은 자식을 남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미적 감각도 함께 후손으로 전달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자연 선택이 우리에게 가장 영양분이 풍부한 음식을 찾도록 맛에 대한 욕망을 발달시킨 것처럼, 훌륭한 유전자를 가진 배우자를 골라내는 미적인 욕망을 발달시킨 것이다. 이 사실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의 육신뿐만 아니라, 욕망, 이성, 자의지 등과 같은 우리의 정신 또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인간의 정신을 만드는 곳은 뇌인데, 뇌 또한 육신의 일부로써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뇌가 진화의 산물이라면 그 속의 소프트웨어인 우리의 정신 또한 자연이 빚어 낸 진화의 결과임은 분명한 것이다.
이렇듯 진화심리학은 진화론과 심리학의 접점에 있는 학문이다. 인간의 욕망을 인과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우리는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답을 내리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통해 우리는 인간 행동의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다. 어쩌면 인간의 삶을 꿰뚫는 훌륭한 통찰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이 무엇인지는 참 말하기 어렵다네. 그러나 단순화 시켜 말해보겠네. 인간은 결국 두 가지 종류로 대별된다고 생각하네. 한 종류의 인간은 실제적이고 본능적인 동물적 인간이라네. 이 부류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가 없이 자명할 것이네. 그리고 또 한 부류는 '신성한 잉여로서의 아름다움'의 유혹에 민감한 인간적인 인간이라네. 인간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른 동물들에게는 이런 정신적 관심과 욕구가 없고 오직 인간에게만 있기 때문이네."
- 구본형, <다시 시작하는 그대에게> 컬럼 중
분명히 밝혀두지만, 이것은 반쪽 짜리 이야기다. 두 종류의 인간 중 본능적으로 동물인 인간에 관한 이야기이며, 인간적인 인간성이 배제된 동물의 이야기이다. 인간을 동물로 본다는 것, 이것은 아마도 대단히, 대단히 위험한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크게 보아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이 또한 무엇이겠는가? 주리면 먹고 졸리면 자고 배가 슬슬 아파오면 싼다.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고 이성을 만나면 사랑을 하는 게 인간이다. 수컷은 많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암컷은 자신과 아기를 보호해 줄 단 한 사내를 찾으려 저울질 한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듯이 인간 삶의 목적은 ‘욕망이라는 맹목적 의지의 추구’에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욕망을 소유함과 동시에 욕망에 소유 당하는 기구한 운명의 생물체이다.
인간은 고귀한 존재라는 관념에서 한 발짝 물러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보려는 시도가 바로 진화 심리학이다. 인간을 동물이 진화해 온 자취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움직임이기도 하며, 인간의 '진짜 심리'를 과학적으로 파헤치려는 집요한 시도이기도 하다.
비록 반쪽 짜리이긴 하지만, 이 '반쪽의 한계'를 잊지 않는다면 이 이론은 인간을 비추는 훌륭한 거울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이 공부를 시작하는 내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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