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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必死卽生, 必生卽死
명량해전을 앞두고 나는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는 병법의 말로 부하 장수들과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졌다. 결과적으로 이 말이 경계인(marginal man)으로서 비극적 아이러니속에 살았던 일생을 요약하는 유언이 되었다. 아군과 적군이 구별되지 않는 전쟁터에서, 生과 死, 희망과 절망, 꿈(마음의 풍경)과 현실이 교차했던 날들. 대극과 대극이 만들어내는 긴장 속에 쉰 네 해를 살고, 나는 노량 앞바다에서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칼의 싸움을 비로소 완성할 것이다.
국경은 武官인 나에게 삶의 터전이자 종국의 무덤이었다. 32살 늦은 나이에 무과 병과에 합격하고 36살에 전라도 고흥 발포의 만호가 되어 수군과의 인연을 맺었다. 39살에 함경도 병사의 군관이 되어 여진족 울기내를 토벌하였으며 43살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백의종군하기까지 국경의 오랑캐를 지키는 것이 業이었다. 47살에 전라좌수사에 임명되고 이듬해 4월 철천지 원수 왜적과 길고 긴 7년 전쟁을 시작했다. 그것은 또한 임금의 칼과 왜적의 칼 사이에서 작두춤을 추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 나,
나는 忠이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16세기, 봉건적 조선사회에서 살았다. 나는 임금을 존중하였으며 어미를 사랑하였다. 백성과 자식들에게는 든든한 망루로서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내 속에는 당위로 가릴 수 없는 ‘응시의 거울’과 미묘한 감정의 불순물에도 부르르 떠는 붉은 육질의 심장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기질이 장수에게는 약점으로 생각되었다. 드러내지 않으려 했고 고름의 뿌리를 짜내듯 매일매일 마음의 장검을 휘둘러 씻겨 내었다.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一揮掃蕩 血染山河)’-내 검명처럼 장부의 기개로 나를 베고 신세계를 열고 싶었다.
나는 늦깎이 인생이었다. 서른이 넘어 병과에 합격하였으나 삼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관직다운 관직을 얻었다. 내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돌아보지 않았고 그 결과를 순리라 여겼다. 북병사 이일이 자신의 안위 때문에 나를 내쳐 파직되지 않았다면 기개 높고 용맹한 장수를 운명으로 여기고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두 번의 백의종군이 나를 바꿨다. 첫 번째 함경도에서 백의종군에 나섰을 때 일개 병사인 나는 마흔 세 살, 중년이었다. 죽마고우 서애는 예조판서로 있었다. 늦은 만큼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려 고뇌하고 준비하였다. 오로지 장수로서 부끄럽지 않은 기록을 남기고 싶은 일념에 살았다. 이일과의 악연은 내가 대처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이었다. 卒의 신분으로 허공에 대고 수 없이 삼지창을 찌르던 어느 날 퍼뜩 한마디가 떠올랐다. ‘도치간과(倒置干戈, 무기를 거꾸로 놓는다)’ 세상을 향하여 찌르던 창을 거두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혁명의 날이었다. 일년 만에 사면되었다가 임진년 전해에 진도군수, 가리포첨사, 전라좌수사로 잇따른 임명을 받은 것은 小人이 자신의 운명에 충복하여 살 수 있도록 천지신명이 베푼 선물이었다.
바다 너머로 들려오는 소식은 음울하였다. 전국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은 노회한 야심가였다. 대마도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미풍에도 끈적끈적한 역모의 비린내가 풍겼다. 나는 적의 대규모 침공에 대비하여 소수의 힘으로 대적할 수 있는 방도를 궁리했다.
임진년 4월 15일 경상우수사 원균이 적의 침략을 알려왔다. 21만의 침략군은 개전 한 달이 안 돼 한성을 점령했다. 나의 부대는 5월 7일 옥포해전을 필두로 정유년(1597) 칠천량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하기 전까지 무패의 기록을 이어갔다. 주위에서는 수군이 없었다면 명의 개입 전에 조선은 진즉 왜놈들의 손아귀에 떨어졌을 것이라고 상찬하였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영웅의 이야기에서는 피비린내가 감지된다. 세상에 主君은 하나다. 주군은 여론 위에 군림하는 듯 하나 구중궁궐에 갇혀 봄소식처럼 전해지는 백성의 영웅담을 떨며 감청한다. 지키는 자는 길게 늘어진 자신의 그림자에서 소멸을 향해 내딛는 부질없는 미련을 본다. 쉰 세 살, 두 번째 백의종군은 원균에 의해 촉발된 것이었지만 나는 근원을 알고 있었다. “너는 혁명가냐?” 운명은 나에게 묻고 있었다. 마흔 세 살, 혁명의 들꽃이, 피가 강산을 물들이듯이 온 마음을 점령하였다. 내면을 물들인 혁명은 온화한 영정을 뚫고 밖으로 뛰쳐나가 사방을 물어뜯고 으르렁거렸다. 혁명가에게 중독된 백성의 눈빛은 왜적을 소탕하는 영웅을 넘어, 도탄에 빠진 현실에 희망을 던져줄 영웅을 고대하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이 이글거린다. 이제 선택할 때다. 자신의 혁명으로부터 세상의 혁명으로 이행할 것인지.
노량에서의 전투가 오늘 일이 되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무엇을 선택하든 운명의 순간이 왔다. 전투에서 승리하고 모반을 꾀한다면 목숨을 건질 한 가닥 희망이 생긴다. 성공한다면 나는 주군이 될 것이고, 대신 인간
오경(새벽 3~
나는 세상과 연결된 매듭을 풀어 내 방식대로 다시 묶고자 하였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선 나라를 구하고 장수로서 명예를 다하는 것, 전쟁의 광기로부터 백성들의 생의 의지를 보존하는 것, 그리고 찌질한 이 삶의 끝이 어디인지 흔들리되 멈추지 않고 가 보는 것. 여정의 과정에서 부여된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길에서 길을 찾으며 뒤돌아 보지 않았다. 그 끝에서 찾은 것이 절망이라고 하여도 나의 노래를 부르며 이 길을 걸어왔음이 축복이다.
나의 방식대로 혁명의 길을 갈 것이다. 세상의 혁명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절망의 동반자다. 성미급한 희망의 전령은 나의 몫이 아니다. 혹여 절망이 껍질을 열어 알푸른 열매를 내어 보이면 해맑은 미소로 마중할 것이다. 꽃잎이 그 생명을 다하는 날이 왔다. 꽃은 길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지 않고 바람을 가르며 부유하다가 사뿐히 장작불에 내려앉아 한 점 생을 마치리라.
전쟁은 오늘 끝날 것이다. 혁명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장엄한 하루가 될 것이다.
※ 이순신이 노량해전을 앞두고 자신과 독대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이 글을 씁니다.

이순신 장군은 분명 시대를 구하고 자신을 이긴 영웅이고, 4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서 나를 울리는 영웅입니다.
그래도 행복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너 대신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소리없는 절규를 한 막내아들의 죽음과
임종은 커녕 장례도 치르지 못한 어머니의 죽음과
병든 아내를 두고
자신의 공을 알아주고 고마워하기는 커녕, 깎아내리고 모함하는 소인들에 둘러싸여
칼을 바라보며 홀로 앓은 그는
행복한 사람이기보다는 슬픈, 너무나도 슬퍼서 아름다운 사람이었네요.
오빠는 슬퍼서 아름답기 보다는 행복해서 아름다운 분이 되시길,
그래서 함께 하는 사람이 되시길 ()

아이도 세상과 나의 긴장을 지켜내고 막아내기에 칼은 얼마나 하찮은 미물인지 알고 있었을까. 오십 평생을 살면서 가장 힘겨운 적은 무력감이다. . . 어미의 젖을 갓 뗀 어린 시절에는 젖 냄새에 길든 아늑함 때문인지 세상에 빛이 가득하였다. 눈앞에 펼쳐진 빛의 통로를 따라 걸어가면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았다. 취기에 비틀거리다가 똥창에 빠지면 그때가 시작이다. 세상은 애당초 영원한 것을 담을 그릇이 못 된다. 영원한 혁명이란 없다. 혁명의 빛은 이내 사라지고 성마른 날씨가 되면 혁명의 기억은 메마른 건초 어딘가에 또 다른 불씨를 지른다.
나의 방식대로 혁명의 길을 갈 것이다. 세상의 혁명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절망의 동반자다. 성미급한 희망의 전령은 나의 몫이 아니다. 혹여 절망이 껍질을 열어 알푸른 열매를 내어 보이면 해맑은 미소로 마중할 것이다. 꽃잎이 그 생명을 다하는 날이 왔다. 꽃은 길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지 않고 바람을 가르며 부유하다가 사뿐히 장작불에 내려앉아 한 점 생을 마치리라.
순신= 부지깽이= 나,
(성웅 순신과 영웅 부지깽이와 슈퍼에고인 나)
매듭과 끈(품)과 다시 매듭,
변경의 이무기, 장군의 혼령과 스승과의 절연되지 않는 영감과 독대하여 倒置干戈의 뜻을 새기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찍다. 畵龍點睛
순간 두 마리(?)의 용이 일심동체로 묶이더니 새로운 용으로 脫皮되어 불을 뿜으며 감쪽같이 하늘로 솟아오른다. (앗! 이때, 칠흙의 하늘을 뚫고 장엄하게 빛을 가르던 용의 불길에 찰라적 용의 꼬리표가 번득인다 하.체.*.*. (? ㅎㅎ 후련히 살다가 홀연히 살다간 한 많은 이무기 눈에는 딱 걸린다. ㅋㅋ그래서 역사는 설화를 낳는 것이니) )
혁명은 영원하지 않단다. 그러나 전설은 이무기처럼 '고프고 마려운' 이들의 변경지대에서 영원히 맴돈다. 어느 날부턴가 그곳 연구원 한마당에는 순신도 깽이도 아닌 하체전설이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이무기들의 마르지 않는 시대(기수)의 전설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