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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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왜 이기려고 했는가’ 이다.
한국에서 세계화에 가장 먼저 나선 영역은 스포츠다. 셰계화라는 말이 익숙하기 전에 스포츠는 세계화를 시작했었다. 시도는 성공적이었으며 괄목할 만한 성과도 있었다.
80년대 중반, 그시절, 나는 세계화 무대의 최 전방에 있었다.
사실 다른 많은 종목들도 그랬지만 서울 올림픽으로 인하여 우리나라의 펜싱은 세계화의 무대 위로 올라서게 되었다. 그 때,,, 도망가지도 못하고, 나아가지도 못하고, 가만 있어도 찔리고, 막을 려고 해도 찔리고... 도대체 어찌해볼 방법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선수들은 그렇게 조롱당하고 수치심에 어쩔 줄 몰랐던 시절이 있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나고 있는 이젠,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한다.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서구의 전통 5백년을 30년도 안 되어서 극복한 것이다.
어찌 펜싱 뿐이었으랴. 거의 모든 스포츠 종목은 말할 것도 없이 그렇다. 그리고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무엇이든 다 세계화다.
스포츠와 체육의 영역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이젠 ‘야, 넌 머리 나쁘니까 운동이나 해라!’는 식은 통하지 않는다. 이젠 일반에 비해 평가절하되는 체육과의 교수들도 거의 대부분이 외국에서 학위를 받거나 경력을 쌓는 것은 기본이 되었다. 굵직한 세계규모의 행사를 치르느라 세계적인 석학들과 박사들을 초청했었고, 우수한 인재들은 스포츠 과학연구원으로 모였다가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전체 체육학의 환경과 수준을 높여 놓았다. 또 가장 큰 규모의 행사였던 전국체전은 점점 그 의미와 가치가 줄어 들고 있다. 프로 스포츠와 함께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 월드컵, 세계야구선수권 등 굵직한 경기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그야말로 전국을 대상으로 하던 경기가 아시아, 유럽 그리고 전세계로 확장되어 졌다.
그러나 경쟁은 더욱 치열해져만 간다.
모든 경쟁이 그렇듯, 늘 그 끝은 하나다. 무대가 아무리 넓어도 일등이 둘인 경우는 없다. 공동수상, 공동일위라는 것이 없는 곳이 스포츠다. 그만큼 경쟁이 심하다는 것이다.
싸움이나 경쟁이나 시합같은 것들은 그 자체로 공정하지 않다. 싸우고 겨룬다는 그 자체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이미 제로-썸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규칙과 제약을 비켜갈 수 있는 모든 행위들이 벌어진다.
그래서 싸우는 동안에는 왜 싸워야 하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사력을 대해서 싸워 이기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싸움들이 한 두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비장한 각오만으로, 목숨을 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성실함과 인내심을 가지고 매일 있는 일상의 시간 속에서 준비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막연한 믿음이나 감동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과 삶과 세계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해지는 것이다. 한 땐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고 헝그리정신으로 죽기살기로 달려들면 되었지만 이젠 그렇게 되지 않는다. 정말 그렇다. 사상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경쟁의 두려움과 일상 속에서의 나태함을 경계할 수 있게 해준다. 반짝 가수나 과거의 영광속에 묻혀 사는 삶을 벗어 날 수 있다. 그것이 훈련과 수양이라는 삶의 무게를 견디게 해 주고 진정한 삶의 의미와 올바른 가치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경쟁력이 없을 때는 무대가 넓어지면 힘들다. 오히려 가지고 있는 입지마저도 빼앗기게 된다. 그러나 재능과 노력을 갖추고 준비되어 있는 자들에게는 넓은 무대는 기회의 땅이다. 도전과 정복이 가능한 쟁취의 땅이다.
처음엔 선수들에게 했던 말이, 후일에는 회사에서 일하면서 직원들에게 해주는 말이 되었다.
살기 좋은 세상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비밀스럽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힘과 능력을 갖추고 나아갈 때 어디든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선수들은 ‘다음에 잘 하겠습니다.’ ‘이번만 빠지고..요...’ ‘그 시합 일등하면’ 이라고 하는데, 회사와 삶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다음에 준비되면 ’ ‘이번 일을 마칠 때까지만’ ‘그것을 얻고 나면’ 이라고 말을 한다.
나는 이런 말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지금 하지 못하는 것은 다음에도 하지 못한다. 이번에 빠지면 다음엔 기회가 없다. 그 시합을 일등할 기회는 결코 오지 않는다. 나는 늘 좀 더 솔직해 지라고 말한다. 눈 앞의 달콤함, 당장의 필요함이 미래를 담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하고 있지는 안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힘을 키우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것은 훈련과 약속을 성실하게 지키기만 하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다.’ 무식한 말로 죽기아니믄 까무러치기로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삶은 도전하고 성취할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거기에는 하나 더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 수 많은 어려운 고비, 그 힘겨운 정상을 넘어 선 다음을 어떻게 살 것인가도 중요하다. 상당히 많은 선수들이 일등이 되는 것, 최고가 되는 것 성공하는 것이 목표고 전부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면 그 다음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사업에서 성공해서 돈을 벌었다고 해서 앞 날이 비단폭처럼 훤히 펼쳐지는 것이 아니다. 인생과 삶이 완성된 것이 아니다. 그래도 살아가야 하고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그래서 목표를 완성한 이후의 삶을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은 대부분 건강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된다. 나는 많은 파행을 보았다. 나 자신의 비극적인 삶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학위를 받고 고시에 합격하고 고위직에 올랐다고 해서 인생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또 가족과 즐기고 누리는 권리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공인이고 리더이며 주도자로서 더 많은 책임과 의무도 주어진다. 성공은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에 도달해서 자신과 남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을 때 완성되어 진다고 생각한다.
전쟁이라고 부르는 삶의 경쟁에서 왜 이기려하는가? 제자식 지마누라하고 잘먹고 잘 살고 있으면 세상이 어찌 돌아가도 좋다는 것인가? 그럴려면 자회적으로 존중받는 것도 존경받는 것도 거부해야 한다. 그래야 적절하고 공평하지 않는가?
아니면 진정으로 중요한 목표는 사회적 성취를 통해서 자신을 발견하고 삶과 인생에서 평온함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나는 바른 스승의 그늘에서 다시 태어나 그것을 올바르게 배웠다. 자신의 삶을 즐기되 타인을 돕고 함께 할 줄 아는 것 즉 관용과 배려의 정신을 배웠다.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잘 했는가는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구를 위해서 잘 하는가?는 더 중요하다. 누군가가 일등을 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일등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가? 가슴깊이 느껴지는 감동과 꺽이지 않는 불굴의 정신적 태도, 애써 쌓아올린 것들을 나눌 수 있는 겸허와 나눔의 배려, 그러한 것들이 사람들에게도 승리를 함께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대리 만족을 주고 삶의 고단함을 잠시 쉬어가게 할 수 있지 않는가? 그래서 감사하고 본 받고 이어가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개인의 발전이지만 사회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진정한 승자의 위상이며 아름다움인 것이다.
한 때, 나는 오래 오래 반성한 적이 있다.
삶이 ‘오로지 이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거의 광분하고 있었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주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많은 시간과 사람을 잃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힘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만 힘을 갖는다고 해서 모든 일이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다 올바르게 그 힘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힘이 곧 정의는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싸워 이겼다고 하더라도 상대를 존중해야 함을 배워야 하며, 이기는 것이 모든 것을 완성하는 것이 이니라, 이기고 나서 그 후의 행함을 통해 진정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힘있는 정의’인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났을 때,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자신과 세상과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근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 일어서서 강자가 되고 자기 자신과 남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곧 마음의 평온을 이루고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완성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일, 시합을 한다. 짐을 챙기고 저녁나절 햇살이 기우는 들녘을 걸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이기기 위한 적절한 노력을 기울였는가?”
“왜 이기려고 하는가? ”
“그리고 그 이기려고 하는 이유는 적절한가?”
“내가 칼날을 예리하게 세우고 죽도록 노력한 것은 누군가를 죽여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이와 내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였다. 왜냐면 정의가 없는 힘은 폭력이지만 힘이 없는 정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
시합을 마치고 숙소로 와서 글을 마무리합니다.
15:14로 둘 다 아쉽게 지네요! 하나는 8강에서 지고 하나는 결승에서 지네요...
난 그저, “오늘은 여기까지., 우리에게 기회를 준 신에게 감사하자!” 라고 말했습니다.

너무 아쉽게 안타까운 장면들을 지켜보고 가르치고 있으시네. 속이 말이 아니겠구먼. 타고 쭈그러 들었겄어요.
남은 것도 별로 없을 텐데(? ㅋ) 푹 쉬시요잉.
맑은 정신으로 다시 불을 뿜어야제. 결과가 어떤 천차만별의 차이와 다른 인생과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란 걸 아는 자의 고독한 길이니까네, 다른 생각은 말고 전력투구 몰입 또 몰입 이판사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아니 죽고 만다는 생각으로 목숨을 걸라고 불호령을 때리소. 시합은 단 한 번의 결정과 숙명과 판단의 영원한 지배를 받는 것이니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