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연주
- 조회 수 2997
- 댓글 수 1
- 추천 수 0
칼럼12.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설레임!!
사람은 서로 만나고 힘을 보태고, 그리고 강해진다. 그러한 세상살이 속에 사람은 결코 외톨이도 고독한 존재도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된다. 그리고 인생이 갑자기 아름다워진다. - <아홉 살 인생, 위기철>
지금은 중학교 3학년이 된 대환이는 중학교 2학년 때 우리반 학생이다. 처음에 대환이에 대한 정보는 보통 아이들보다 머리가 하나 더 있는 체격이 좋은 아이, 지각을 해서 벌청소를 자주 하는 아이, 좋아하는 수학은 상위권이지만 싫어하는 국어는 최하위 점수를 얻는 아이 정도였다. 그런데 5월, 해마다 중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한 성격심리검사의 결과를 보고 의아해했다. 전혀 심각해보이지 않았는데, 대환이가 우리반에서 우울정도가 가장 높았던 것이다. 앗! 그리고 보니, 대환이는 내가 하는 말이나 시키는 것에 대해 무엇이든지 수긍을 했지만 한번에 ‘네’라고 하는 적은 없었다. 항상 내가 대환이가 왜 그 일을 해야 하는 지 설명을 하면 그것에 대해 전적으로 수긍을 했던 것이다. 그래도 대환이는 한 번도 나에게 적극적으로 반항이라는 것을 한 적이 없는 내 말을 참 잘 듣는 아이 중에 하나였기에 검사 결과가 신뢰도가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여름방학이 지나고 나서야 그 검사결과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중학교에서 2학년을 잘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학생들의 사춘기가 절정인 시기,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말하는 때가 주로 이 때라고들 생각한다. 실제로 1학년이나 3학년에 비해 2학년 아이들은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이 지나면 자신에 대한 인식 정도에 따라 흔히 말하는, 상태가 좋아지거나 나빠지거나의 양극단을 걷는 경우가 많다. 대환이는 확실한 후자의 극단을 보여주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을 만났는데 뭔가 분위기가 확실하게 변한 1인이 바로 대환이었다. 그것도 뭔가 ‘나 지금 무지 상태 안 좋아요’라는 부정적인 분위기를 풍기더니, 2학기가 시작되고 1주일이 채 지나기 전에 대환이가 1학기 때랑 많이 틀려졌다는 몇몇 교과목 선생님들의 피드백이 돌아왔다. 대환이를 불러 방학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요즘 가장 고민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대환이는 자기는 문제가 전혀 없고 지금이 아주 좋다는 말을 했다. 나는 대환이에게 선생님이 보기에 지금의 넌 뭔가 도움이 필요할 것 같고, 네가 필요할 때 언제나 도움을 주고 싶으니 이야기하라고 말하며 돌려보냈다.
대환이는 나의 불안한 직감을 증명이나 하듯, 상담을 한 그 다음날 크게 사고를 쳤다. 점심시간에 학교 주변 아파트 상가에서 담배를 피다 걸린 것이다. 게다가 대환이 이외에 여러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걸렸는데, 대환이가 담배 공급책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미성년인 대환이에게 담배를 주로 공급한 사람이 대환이의 누나였다는 것이다. 당연히 부모님과의 면담이 필요한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환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고 대략적인 사건의 내용을 설명해드리니 당장 학교로 오시겠다고 하셨다. 사실 난 대환이가 담배를 폈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누나가 주었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이건 집안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여 어머니에게 모진 말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날 오후 4시쯤 교무실로 찾아 오셨다. 상담실에서 어머니와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하자마자 내가 모진 말을 꺼내기도 전에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을 하셨다. 사실 이런 일로 어머니들을 만나면 처음부터 자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들이 드물다. 자신의 아이가 친구를 잘못 만나서 이렇게 되었고 우리 가정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만을 되풀이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전혀 다른 반응이 돌아오니 난 좀 당황을 했다. 그리고 시작된 대환이 어머니와의 상담은 3시간이 지나서야 끝날 수 있었다. 대환이 어머니는 선명한 흉터가 그어진 자신의 손목을 보여주며 대환이 아버지의 무능력함과 바람기로 힘들었던 과거와 아이들을 위해 이혼은 할 수 없어 살고 있다는 지금의 이야기를 하셨다. 교무실에 모든 사람들이 퇴근을 하고나서야 어머니와의 상담을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대환이의 문제에 대한 상담이 아니라 어머니의 인생에 대한 상담을 한 느낌이었다. 대환이 어머니도 일어나시면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한 것이 정신과 의사선생님과 상담한 것보다 더 편했다며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날 상담에서 내가 대환이에 대해 내렸던 처방 중의 하나는 운동을 시키자는 것이다. 대환이는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담배를 펴서인지 그 또래 아이들과 다르게 운동장 몇 바퀴 도는 것도 숨이 차했다. 대환이가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고 생기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운동을 통해 몸을 쓰는 법을 배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도 동의를 하셨는데, 그 때부터 대환이는 우리학교 운동부인 럭비부에 들어갔다. 다행히 럭비부 선생님과도 잘 맞았는지 운동을 열심히 하고, 더불어 공부도 나름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지금, 대환이는 럭비부의 에이스이다. 지금은 담임이 아닌 내게도 럭비대회에 나가기 전이나 대회에 나가 결과가 나오면 보고를 한다. 얼마전 주말에 “선생님이겻습니다!!ㅎ”라는 문자가 왔다. 나는 “이번에 주전이었겠구나 축하해 정말 잘했어^^”라고 답장을 했다. 2학년 때 대환이는 실력에도 불구하고 3학년 형들에게 밀려 항상 후보였다. 대환이는 곧바로 “네ㅎ주전이엿습니다!!ㅎ”라고 답을 했다. 녀석이 얼마나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하고 있는지가 몇 마디 문자를 통해 충분히 느껴졌다. 매일은 못 보지만 가끔 복도를 지나칠 때 만나면 반갑게 인사해주고 자신의 근황을 전해주는 녀석이 항상 고맙기만 하다.
이런 대환이가 올해 들어 가끔 교무실에 와서 자기가 먹어야 할 것을 놓고 가곤 했는데, 어제는 불쑥 교실로 찾아왔다. 키가 180cm가 넘는 체격 좋은 형이 1학년 교실에 들어서자 지금 우리반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환이는 대뜸 ‘셀레임’이라는 아이스크림을 내손에 쥐어주고는 90도로 인사를 하며 교실을 나선다. 갑작스러운 대환이의 방문에 나는 ‘고마워’라고 말하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남겨진 아이들은 ‘우와~’라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감기에 걸려 목이 무척이나 아팠던 덩달아 6시간 수업을 하고 목이 부었던 그날, 대환이가 준 아이스크림을 셀레이는 마음으로 맛있게 먹었다. 올해 들어 내가 벌린 일들에 과부하가 걸려 정신을 못 차리던 나에게 대환이의 아이스크림 하나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그래 네가 있어서 나는 또 힘을 내겠구나. 고맙다.

사람들은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앞을 향해 나가라고 종종 말을 하는데, 나는 어린 시절이 내게 힘을 주곤 해. 아마도 청년기를 갖 넘긴 삼십대 후반(? 나는 중년이라고 생각하는 데, 연주는 청년기라고 주장 하겠지? ㅎㅎ)부터 힘들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희망과 의지를 가지곤 했던 것 같아.
어쩌면 그 시기인 어린 시절에 이미 내가 어떻게 살고 싶고 어떤 삶을 살겠다고 하는 대강의 전체적인 틀이 서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해. 그래서 가장 힘들 때에 낭만적이었던 시절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다시금 삶을 의욕하는 힘을 갖곤 했지 싶어. 지금까지도 그때의 맑은과 밝음이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곤 하지.
사람은 지식으로 성장하기보다 진심어린 관심과 사랑으로 성장하는 것 같아. 물론 그 외 다른 요소들도 있지만 말야. 진심이 단절되지 않고 통했고, 첫 느낌과 신뢰의 경험이고, 그때의 감정들이 순결했음을 알기에 좀처럼 놓아버릴 수 없는, 오롯한 힘과 강건한 의지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해.
의식하며 목적을 두고 쓰라는 것은 아니고, 있는 그대로를 소탈하게 다루어서,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그 시기만의 풋풋하고 소중한 추억을 담아주는 것이 상당한 의미가 되고 큰 선물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들로 하여금 자아발견(성숙/ 확립)이나 정체성 형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