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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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노예나 비첩 같은 존재들도 자결할 줄 아는데 하물며 자네가 어찌 치욕스러운 목숨을 구걸하는가? 자네가 내 친구라는 것이 부끄럽네.”
사마천은 절친한 친구에게조차 차라리 자결을 하라는 비난을 받았다. 궁형이란 그만큼 치욕스러운 형벌로서 당시의 가치관에 따르면 자결을 택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할만큼 주변의 비난과 업신여김을 받았다.
그러나 사마천은 자신이 치욕을 참고 더러운 흙 속에 뒹구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까닭은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역사 저술이라는 자신의 소명을 다하지 못함이 한스러웠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한창 집필 중이던 자신의 문장이 완성되지 못함을 당장의 치욕보다 더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이다.
사마천은 자신의 천복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그 천복을 향한 길은 때로는 외롭고 고난에 찬 가시밭길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가야만 하는 영웅의 길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천복을 따라가는 자신의 길이 당시에는 절대 이해받지 못할지라도 반드시 후대에 전해져 자신의 이름이 역사에 남을 것임을 굳게 믿고 있었다.
장면 2.
“도대체 중이라는 자가, 그것도 큰 스님으로 추앙받던 자가 공주와 사통하여 아들을 낳다니, 이것은 파계이니 용서할 수 없다”
원효대사는 계를 범한 이후 속인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스스로를 거사라 칭한다. 그리고 왕과 귀족을 상대하던 높은 곳에서 걸어 내려와 깊은 학문을 하지 못하고 들어앉아 글을 읽을 수도 없었던 일반백성들 속으로 들어간다. 친숙한 노래와 춤으로 풀어진 불교의 교리는 남녀노소, 귀천을 막론한 민중들 속으로 들어가 하다못해 원숭이 무리까지 부처님께 귀의하게 된다.
원효대사는 현실주의자다. 현실의 무게에 치여 쩔쩔매며 원칙을 잃어버리고 종국에는 변명조차 잊어버린 이기적 현실주의자도 아니요, 더러운 것이 묻을까봐 높은 곳에서 몸을 사리며 현실과 유리된 이상 속에 도피하여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원칙만을 따지는 이상주의자도 아니다. 민중들이 현실 속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는 첨예한 문제들을 피해가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쳐 생활 속에서 불교의 깊은 사상과 자비를 실천하고자 한 진정한 현실주의자요 실천주의자이다.
장면 3.
“어머니, 어머니, 아범이요, 글쎄.....”
“너는 절대 네 처를 결코 박대해서는 못쓴다.... ”
...
“오늘 선생님 생신이 아닙니까? 돈은 없고 해서, 의복을 전당하여 고기근이나 좀 사가지고 밥해 먹으러 왔습니다.” (나석주)
...
“ 제 시계는 6원짜리인데, 선생님의 시계는 불과 2원짜리입니다. 이제 너는 1시간밖에 더 소용없습니다.” (윤봉길)
...
“해줏놈 때려주자.”
함께 놀던 아이들이 공모하여 이유 없이 한 어린 소년을 마구 매질하였다. 너무나도 억울했던 소년은 아이들을 죽일 결심으로 집으로 돌아와 부엌칼을 집어 들었고 용의주도하게도 울타리를 뜯고 후문으로 들어간다. 소년의 미래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다행히도 들키고 말아 다시 매만 맡고 쫓겨난다.
* 이 중 가장 인상적인 역사적 사건 하나를 선택하여 왜 자신에게 그 장면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는지 그 이유를 해석할 것
일제의 체포가 두려워 평생을 뒷바라지해 온 아내의 임종조차 하지 못하고 자식도 하나씩 떠나보낼 때 분명히 백범도 인간인지라 때로는 흔들림이 왜 없었겠는가, 분명히 순간순간 회의하고 힘들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에서 온갖 험한 일을 맡아 진정 문지기 역할을 하던 때나, 우리 겨레가 아직 살아있음을 만방에 고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제 요인을 암살을 기도할 때, 또한 조국의 독립은 요원하고 몸은 늙고 병들어 가지만 살아서 조국에 돌아올 것을 감히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에도 백범은 역사의 요구와 시대적 사명 앞에서 자신의 몫을 묵묵히 감당하였다.
또한 페니실린 한 번 맞추지 못하고 큰아들을 비명에 보내고 세 딸 또한 가슴에 묻었지만, 많은 젊은 동지와 후배들을 사지로 보냈지만, 또한 자신도 끝내 동족의 총탄에 쓰러졌지만 백범은 행복한 사람이었다.
백범은 조국의 자주독립이라는 자신과 역사 앞의 사명에 온몸과 마음으로 헌신했고 그 힘들고 고통스러운 길을 부모와 아내와 자식, 그리고 동지들과 함께 했으며 민족의 사표로 영원히 남았다.
그러나 백범은 어린 시절부터 그다지 싹수가 있었던 아이는 아니었다. 동무들에게 매를 맞았다고 칼을 들고 후문으로 들어가던 어린 시절이나, 과거공부를 하던 어린 시절이나 총명하고 똑똑하다기 보다는 힘세고 고집 센 아이였을 것이다. 또한 잡학을 배워 재물이나 벌어보자고 동학을 할 때도 그는 특출난 부분이 있었지만 인재는 아니었다.
한 사건 사건을 겪으면서, 또 한 사람 사람을 만나면서 모든 것에서 배우고 생각하고 익혔다. 심지어는 감옥에서 만난 도적에게서도 배웠다. 유교, 불교, 동학, 예수교 등 다양한 사상을 배회하고 온갖 일을 겪으면서 그는 그 모든 것을 포용할 만큼 점차 커져갔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실력과 위치를 알고 겸손했으며, 상해 임시정부에서는 외국에서 공부한 젊은 사람들 속에서 스스로 문지기 역할을 자원했다.
평생의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백범은 지혜를 쌓고 자신의 인격을 만들어갔으며, 평생의 천복 또한 찾을 수 있었다. 민족의 위대한 인물로만 알고 있던 그의 살아온 역정을 보면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진리를 새삼 알 수 있었다.
* 그 장면이 상징하는 것을 앞으로 어떻게 자신의 개인적 역사에 긍정적으로 반영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형상화할 것
“내일은 뭐 할 거야?”
“응, 오전에 초등학교 어머니회 전체모임에서 강연 있어. 지난번 소모임에서 워크샵 했던 게 반응이 좋아서 내일 전체 모임에서도 해달라네. 너무 짧은 시간이라서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를 먼저 하고 추후 신청자를 새로 받아서 다시 워크샵 일정을 잡기로 했어. 걱정했던 것보다 반응이 좋아서 기뻐.”
“그래? 다행이네. 그럼 많이 바쁜가?”
“왜? 오후에는 도서관 가서 책을 볼 계획이긴 한데, 여유는 좀 있어.”
“그럼 내일 저녁에 연극 한편 볼까?”
나는 기꺼이 남편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들였다. 뜬금없는 남편의 제안이 요즘 바뻐지기 시작한 나에게 잠깐의 여유를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큰 딸과 고등학교에 진학해 나름대로 바빠진 작은 딸과 함께 하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평생 나의 동반자가 되어온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은 나에게도 더없이 소중하다.
십년 전 깜깜한 어둠 속에서 시작된 나의 일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돌이켜 보면 그 때 난 너무도 용감했다. 미래와 꿈에 대한 갈증과 회의에서 시작된 나의 방황은 대책 없는 퇴사로 이어졌고 마음에 당기는 대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한 책은 하나하나 나의 피와 살이 되었다. 어렴풋이 꿈과 미래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기쁘게 꿈속으로 뛰어들 수 있었다.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언제나 나를 격려하고 나보다 더 나의 꿈을 좋아하는 나의 가족이었다.
혼자 꾸던 꿈은 무엇보다 소중했던 스승님과 동기들과의 만남을 통해 마음껏 확장될 수 있었고 격려를 받았다.
우리가 함께 공부하고 나누었던 2010년은 내 생애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한해였으며, 또한 끝없는 배움의 진정한 시작이었다. 그 한 해를 통해 나는 나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엉덩이의 힘과 실천의 힘을 몸에 붙였다. 꿈을 발견하고 실천해 가는 나 자신의 경험이 녹아든 새로운 도전과 습관과 실천에 대한 첫 책을 썼고 그 책을 통해서 꿈의 첫 발을 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더 일찍 시작하지 못함을 후회하기도 했고 전혀 다른 영역을 시작하면서 두렵기도 했지만 이제는 나의 모든 경험과 과거가 지금의 나를 만든 것임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새로운 길에 접어든지 이제 십 년이 되어간다. 처음에 차비도 벌지 못했던 일도 이제는 많이 자리가 잡혔다. ‘꿈과 휴식이 있는 작은 공간’과 ‘가족 쉼터’도 많은 분들과 함께 모두의 공간이 되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자기 자신을 올바로 이해하고 또 타인을 이해하며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기쁨을, 그리고 꿈을 실천하는 스스로의 힘과 습관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를 시작하며 나는 다시 다짐한다. “내 가족과 내 일과 내 꿈을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꿈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남들처럼 무모하게 달려들지 않지. 팔짱을 끼고 간을 보는겨. 검지 손가락에 소량을 묻혀
한참을 음미하는거지. 똥인지 된장인지. 콩닥콩닥 떨리는 가슴을 참으며 마지막 남은 재료까지
확인하는 과정이 선에게는 즐거움인게지.
그때쯤이면 상황은 종료되어 있어. 처음에는 무모해 보이던 것이 혀에서 뇌로 갖가지 재료에 대한
정보가 이합집산을 하며 전달되다 보면 답이 보이기 시작하는거야. 그 다음에는 어떡하냐구~
뭘 어떡해. 남들보기에 민망하니까 좀 어렵다는 듯이 "어머~" 하며 오버하면서 살짝 넘어가면 되쥐~~

난 내가 꿈이 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 이 나이에 (언니, 오빠들 쏘리~), 이제와서 꿈을 논하다니 간이 부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구라 미옥 앞에선 여지없이 소박한 사람이 되는구나 ㅋㅋㅋ
아마 종과 횡보다는 안으로 깊어지길 원하는 것 같아.
책 한 권 써서 스스로에게 확신을 주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나로 인해 행복한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해하고,
무엇보다 잘 살았구나 되돌아볼 수 있는 그런 삶을 원한다면 너무 소박하다구?
아마 내 꿈은 내가 가진, 그리고 앞으로 가지게 될 모든 자원을 200% 활용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줄 묙이 있어서 더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