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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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 13 - 일 포스티노, 우편 배달부
유끼가 네루다를 읽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쯤 정신없이 읽었던 이 시인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동안 빅토르 하라를 읽었고 로루카를 읽었다. 나는 네루다를 시로써 접근해 들어간 것이 아니라 아옌데의 친구로서 혁명가로서 먼저 그 이름을 익혔었다. 더불어 숲의 친구들과 김대중 도서관에서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는 필름을 먼저 보았기 때문이다.
9월 11일 아옌데가 총탄에 쓰러지고 네루다는 암투병중이던 9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만약 그가 병상에 있지 않았다면 그의 최후도 비장했을 것이다. 평생 그처럼 온 세상을 떠돌아다닌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늘을 지붕삼아 산과 바다를 떠돌던 그가 끝내 망명자가 되어 이태리의 조그마한 어촌에 도착한다. 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시들을 써서 많은 여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해온 그에게는 따로 편지들을 배달해 줄 전담 우체부가 필요했다. 그래서 가난하고 수줍은 청년 마리오 루오폴로( 배우, 마씨모 트로이시 )가 우편배달부로 한시적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영화 “일 포스티노” 이렇게 시작된다.
청년 마리오는 네루다의 시를 다 읽고 그의 책을 구해서 사인을 부탁하는 연습을 하고 간다. 어벙벙하게 책을 내밀며 “이 책을 소중한 책으로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라고 말한다.
마리오는 편지를 건네고 나서 머뭇머뭇 거린다.
네루다: " 우체통처럼 거기 서서 뭐하는가?"
마리오: "마치 장승처럼요?"
네루다: " 아니, 마치 움직이지 않는 장기판 위의 말처럼 말일세."
이런 대화를 나누며 메타포가 무엇인지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네루다는 마리오에게 아름다운 노트를 선물한다.
어떻게 하면 은유를 쓸 수 있나요?
-저기 해변가를 유유히 걸어보게
그러면 은유를 쓸 수 있나요?
-틀림없이...
파블로 선생님 안녕하세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 중요한 일인가보군, 말처럼 씩씩거리고 있어."
전 사랑에 빠졌어요. 어쩌면 좋죠?
"별일 아니군. 심각한 병이 아니야, 치료약이 있으니까."
아니예요, 아니예요. 치료약은 필요없어요.
전 너무너무 아파요. 그런데 계속 아프고 싶어요. 전 사랑에 빠졌어요.
"상대는 누구지?"
그녀의 이름은 ...베아트리체.
"단테 알레기에리, 그도 베아트리체를 사랑했지.
베아트리체란 ‘영원한 나의 사랑’을 의미하기도 한다네."
그렇게 마리오는 시인을 통해서 단테 알레기에리와 베아트리체를 배운다. 시인은 더듬거리며 받아적는 마리오의 손바닥에 알레기에리의 철자를 써준다.
어느 날, 시인은 친구들에게 마이크를 통해 근황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가 살고있는 이 작은 섬을 묘사하다가 마리오에게 마이크를 넘긴다. 이 섬의 아름다움을 말해봐....
마리오의 대답은 .....“베아트리체 루소..”
이제 마리오는 네루다의 시를 베아트리체 루소에게 써 보낸다.
"아니, 그건 내가 마틸데에게 써 준 시잖아!"
“시는 시를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고 읽는 사람, 그리고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겁니다.”
마리오가 재치있게 대답한다. 네루다의 시는 사실 언제나 민중의 것이기도 했다.
마리오는 드디어 베아트리체와 결혼을 하고 네루다는 신부와 첫 번째 춤을 추며 두사람을 축복한다. 아름다운 장면이다.
네루다는 이제 망명을 끝내고 칠레로 돌아간다. 그리고 소식이 없다. 마리오는 네루다를 위하여 그가 좋아했던 바닷가 파도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 바위언덕을 스치는 바람의 소리를 녹음한다. 그리고 첫아들의 울음소리도 녹음한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마치 시인을 만나 마리오의 시가 탄생한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그후 민중의 집회에서 시를 낭송할 예정이었던 마리오는 사람들에게 떠밀려 밟혀 죽게되고 아이는 자라서 5살 즈음이 된다. 네루다가 무심코 지나는 길에 찾아온다. 베아트리체가 그때 이 녹음 테이프를 전해준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
천천히 올라오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 (詩)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얼굴없이
그건 나를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어.
내 영혼 속에서 뭔가 두드렸어,
열(熱)이나 잃어버린 날개,
그리고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遊星)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어둠,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어둠,,
소용돌이치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虛空)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POETRY
And it was at that age...Poetry arrived
in search of me. I don't know, I don't know where
it came from, from winter or a river.
I don't know how or when,
no, they were not voices, they were not
words, nor silence,
but from a street I was summoned,
from the branches of night,
abruptly from the others,
among violent fires
or returning alone,
there I was without a face
and it touched me.
I did not know what to say, my mouth
had no way
with names
my eyes were blind,
and something started in my soul,
fever or forgotten wings,
and I made my own way,
deciphering
that fire
and I wrote the first faint line,
faint, without substance, pure
nonsense,
pure wisdom
of
someone who knows nothing,
and suddenly I saw
the heavens
unfastened
and open,
planets,
palpitating planations,
shadow perforated,
riddled
with arrows, fire and flowers,
the winding night, the universe.
And I, infinitesmal being,
drunk with the great starry
void,
likeness, image of
mystery,
I felt myself a pure part
of the abyss,
I wheeled with the stars,
my heart broke free on the open sky.
"고통 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눈물에서 입맞춤에 이르기까지, 고독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내 시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나는 시를 위해 살아왔고 시는 내 투쟁의 밑거름 이었다" (262쪽)
어쩐지 네루다의 시를 한편은 외우고 있어야. 밤을 새우며 북리뷰로 투쟁한 보람이 있고 또 그 충실한 밑거름으로 이제 곧 여행길에 올라 지중해를 바라보며 사랑도 하고 나의 노래도 불러볼 수 있지않을까?
메타포, 포에지....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을 했던 아름다운 시인의 “시”라는 詩
사랑하는 유끼와 또 이 글을 읽어줄 동료들에게 포에지를 위한 마중물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긴 시를 옮겨놓는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386. 시는 이미 독자와의 관계가 끊어졌다. 이 관계를 회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 인간의 가슴을 만나고, 여인의 눈을 만나고, 길거리의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또 노을을 쳐다보거나 한밤중에 별을 바라보며 시 한 구절을 읊조리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이렇게 문득 찾아든 시는 우리 시인들이 그동안 읽고 배우느라 투여한 갖은 고생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보람 있는 일이다. 우리 시인들은 낯선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낯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해변에서, 낙엽 속에서 문득 시를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이 지은 시를 소중하게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진정한 시인이며 시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대의 목소리는 정말 시를 낭송하기에 어울리는 ....

496. 나는 군중에게 인생을 배웠다…고독과 군중은 이 시대 시인이 떠맡아야 하는 기본 의무이다. 나는 군중이란 거대한 물결에서,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정한 눈길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모든 시인이 이런 경험을 할 수는 없으나, 한번 경험한 사람은 이를 가슴에 간직하고, 작품으로 풀어놓을 것이다. 단 1분이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다는 것은 시인으로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슴 뭉클한 경험이다.
음유시인은 그의 인생도 함께 노래가 되어 흐릅니다.

388. 만약 내 시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골방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고 무한히 펼쳐진 공간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경향일 것이다. 나의 한계를 넘어서야 했다. 그렇다고 또 다른 문화의 틀 속에 가둬두고 싶지도 않았다. 내 자신이 되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고향 개척지 사람들이 땅을 넓혀 갔듯이 나 자신을 넓히는 노력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 도움을 준 시인이 바로 맨하튼에 살던 월트 휘트먼이었다.
391. 나는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다. 양심은 편안하고 지성은 불안한 사람이다..(그러나) 시인의 자부심은 보여주고 싶다…적어도 몇몇 작가들은 신성한 노동으로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다.
392. 나는 앞으로도 내 수중에 있는 소재,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고 있는 소재로 작업할 것이다. 나는 잡식성이어서 감정, 존재, 책, 사건, 전투 등 무엇이나 삼킨다. 온 땅을 먹고 싶고, 온 바다를 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