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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7일 11시 35분 등록

지난 주말은 아버지의 칠순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조촐한 잔칫상을 차려드렸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아버지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저도 술잔도 함께 울었습니다.

 

***

아버지, 벌써 아버지 연세가 칠십이 되셨네요. 하긴 제 나이도 이제 사십대 중반이고 제 큰 딸 재은이가 중학교에 입학했으니 참 세월이 빠릅니다.

 

아버지에 대한 저의 최초의 기억은 전라북도 흥덕에 있는 고모집을 찾아갔을 때였어요. 버스에서 내려 어두컴컴한 길을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한참을 걸어갔던 그 길이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우거진 숲을 지나기도 했고 고요히 흐르는 댐을 지나기도 했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전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갔습니다. 전 그때 아버지라는 존재가 그렇게 미더운 것인 줄 처음 알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자존심이 강하셔서 저희를 엄격하게 키웠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저희 자식들 자랑을 약간 부풀려서 자주 하시곤 하셨지요. 이를테면 반에서 1등을 하면 전교에서 1등한 걸로 이야기하시고, CJ에 다니는데 삼성에 다닌다는 식이였지요. 솔직히 저는 그때 창피하고 부담스러웠습니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왜 아버지는 그렇게 오버하실까? 그러나 이제야 조금은 그 마음을 알 거 같습니다. 아버지는 당신 자신보다 자식을 더 내세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이 잘 되는 것이 아버지 자신의 삶으로 느끼셨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어쩌면 우리 자식들의 그림자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아버지는 참으로 정이 많고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나이가 드실 때마다 그만큼 눈물이 많아지는 걸 전 느낍니다. 저도 중년에 접어들다 보니 조금씩 감성적으로 변해갑니다. 아버지의 눈물은 아버지가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멋있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아버지, 제가 늦은 나이에 군대에 입대할 때 고속터미널에 배웅을 나오시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는 논산까지 같이 가고 싶어했지만 저는 친구가 함께 가기로 했으니 들어가시라고 말했지요. 버스를 타고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며 희미하게 걸어가시던 그 모습. 당신의 힘든 군 생활을 떠올리며 못난 자식의 군대 생활이 그렇게 걱정스러웠던 모양이었겠지요.

 

그 후에 아버지의 눈물이 또 기억이 납니다. 2005년 늦은 봄이었지요.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말씀하시는 것도 어눌하고 하체가 힘이 빠져 중심을 못 잡으셨는데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버지는 '괜찮다'고 하시면서 한사코 병원가시길 거부하셨는데 실제 검진 결과가 중풍 초기로 나오자 왠지 의기소침한 표정이었습니다이윽고 두 눈을 조용히 감으시더니 눈물이 글썽거렸습니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어서였을까요?  아니면 자식들에게 미안해서였을까요?  갈수록 약해지는 모습을 보는 듯하여 마음이 아팠습니다.  진정 남자로서 늙어가기는 어려운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아버지는 저에게 카리스마적인 존재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마치 움직일 수 없는 커다란 바위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당신 세대가 그렇듯이 우리들의 아버지는 엄격함과 형식에 의해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습니다우리의 아버지들은 수줍었고 다정하게 뺨을 비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는 그 동안 살아오시면서 성실함을 온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들을 위해 무거운 멍에를 묵묵히 감내하셨습니다남자다움이라는 사슬에 스스로를 묶어 놓고 힘들고 지쳐도 내색하지 않고 짐을 나눠 지지도 못한 채 견뎌온 아버지

 

아버지, 저도 이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처럼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합니다. 무엇이 좋은 아버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성실함과 진실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친구처럼 편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싶습니다.  

 

아버지, 얼마 전 세검정에서 아버지, 어머니와 모처럼 함께 저녁을 먹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어머니가 좋아하던 보신탕이었지요. 이가 약해 음식을 제대로 씹어 넘기기 어려운 아버지에게 전 오늘 약속합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겠다고. 아버지, 그러니 건강하게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아버지,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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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6.17 14:54:31 *.30.254.28
비가 내리는 군요.
아버지를 생각하는 그리움의 비가
연구소를 촉촉히 적시는 군요..

연구소 하늘위는 이미 장마전선!!
비맞은 연구원들의 마음에도 그리움의 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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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10.06.22 11:08:57 *.76.115.27
답글을 적는 지금은 햇볕이 쨍쨍.
나중에 광석이 형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한번 불러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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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6.17 16:33:18 *.131.127.50

병곤회장!
술 한 잔 하자..  
날 잡으라.. (다음주 화요일 이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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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10.06.22 11:10:15 *.76.115.27
형, 형은 내가 술 좀 자제해야기 할 때 술먹자고 하더라.ㅋㅋ
밤에는 좀 쉬고 낮술할까?ㅎㅎ
암튼 형 얼굴은 내가 봐야겠어.
연락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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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06.17 20:08:10 *.67.223.107
정동 극장 옆 "남도 추어탕" 집
헤화동 로타리 "금문" 의 중국식 냉면
삼청동 칠보사 옆 "보리밥" 집 
통의동 백송의 "설렁탕"
성북동 "하단"의 만두국

올해는 대충 요렇게 효도를 해보면 어떨까요?
위의 리스트는 여러해 동안 ... 내가 검증한...이제는 많이 알려지기까지한 메뉴들입니다. 
아부지 밥사드리는 프로젝트.... 매우 훌륭한 것 같아요.
설혹 아부지께서 사양하시더라도....냄비들고가서 사다드리더라도......실천행으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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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10.06.22 11:12:23 *.76.115.27
안그래도 여러사람 앞에서 공표했으니 한달에 한번씩 실천하라는 유무언의 압력을 받고있던 중에
좌샘의 댓글이 무지하게 반갑네요.
감사합니다.^^
성북동 하단의 만두국은 가봤고 나머지는 꼭 한번 가볼께요.
저도 맛집 매니아라서...별 4개 이하는 잘 안갑니다.
나중에 살짝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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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6.18 09:00:48 *.219.109.113
어이 ~~~ 병곤.
축하해 . 아버님의 칠순잔치를 너무나 즐겁게 치뤘구나!
사진만 보아도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임이 줄줄 흐르네.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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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10.06.22 11:59:08 *.76.115.27
고맙다. 은주야.
사실 잔치하기 전에는 내가 장남이라 이것저것 신경쓸 것도 많고 괜히 하나 싶기도 했는데
하고 나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나저나 추진력있는 네가 성용이 결혼축하겸해서 해병대 기수 잔치한번 추진해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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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
2010.06.21 23:47:00 *.180.75.226
일찍이 청산과부가 되셨던 어머니의 맏딸로 자란 내겐
아버지라는 커다란 존재가 늘 고팠던 것 같습니다.
힘에 부칠 때 도움을 주셨던 분들이 고마워 이불을 적실때가 많았지요.
큰 나무와 같은 분들을 뵐 때면
그 그늘에 쉬고 싶고 기대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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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10.06.22 12:04:37 *.76.115.27
아~ 저는 이헌님이 남자분인줄 알았어요.
여자분인줄 알았으면 좀 더 따뜻하게 댓글을 써드릴껄.ㅋㅋ
사람은 한 그루의 나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작던 크던 누구나 와서 쉴만한 그림자가 있는 것이지요.
이헌님은 따뜻한 분일거 같습니다.
또 따뜻한 쉼터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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