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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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6] 개 같은 사랑
그대는 왜 사랑을 하는가. 부부니까? 아이를 갖기 위해서? 또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6월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처럼 담배 한 대 피우려고 대문 밖 골목으로 나섰다. 막 담뱃불을 붙이고서 맛있게 한 모금을 빨았다. 허공을 향해 “휴-”하고 긴 한숨을 섞어 연기를 내뱉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골목 입구 쪽이었다. 개 두 마리가 붙어서 막 그 짓을 하고 있었다. 아래쪽 암컷은 가만히 서서 게슴츠레한 눈만 꺼먹꺼먹거렸고, 앞발을 가슴팍 쪽에 묻은 수컷은 연신 숨을 헐떡거리며, 도리질을 해대고 있었다. 내가 보든 말든, 지나가는 사람이 있든 말든 상관치 않고 그들은 그들의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안쓰러워 보였다.
‘개들도 사랑을 알까?’
‘바둑이’와 ‘피터’는 둘 다 암컷이었는데, 우리는 별 상관없이 이름을 지어 불렀다. 바둑이는 체구가 좋은 편이었지만, 피터처럼 영리하지는 않았다. 둘 다 우리들을 잘 따르는 편이었지만, 나는 특히 짙은 고동색 윤기 나는 털을 가진 피터를 좋아했다. 말을 참 잘 알아들었다. 그런 피터를 어머니는 전생에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하시곤 했다. ‘피터’와 얽힌 당혹스러운 기억이 있다. 막 중학생이었던 시절이었다. 아침부터 동네 수컷 몇 마리가 우리 집 대문 앞을 어슬렁거렸다. 문득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눈치를 슬슬 살피다가 쏜살같이 집 마당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피터의 궁둥이에 연신 코를 들이댔다. ‘피터’가 발정이 난 것이다. 빗자루를 찾아들고 쫒아 내려는 데, 어머니가 말리셨다. 피터도 새끼를 가질 때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오후에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는데 대문이 열려 있었다. 마당 한 쪽에서 피터가 복덕방집 큰 검둥개와 ‘그 짓’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호기심에 잠깐 쳐다보았지만, 별로 즐거운 기억이 아니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이번에는 다른 놈하고 붙었다.
‘아니, 이 녀석이 정조도 없이...’
어린 마음에 충격이 컸다. 그런 피터가 실망스러웠다. 더욱 당혹스러운 일은 바깥 화장실로 일을 보려고 지나는데, 마당 옆에 비스듬히 누웠던 피터가 한 쪽 발을 들어 보이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생전처음으로 암컷의 거무튀튀한 ‘거시기’를 보았다. 얼굴이 후끈 달아 올랐다. 누가 볼세라 얼른 자리를 피했다. 화장실로 도망치듯 들어온 나는 바로 일을 볼 수가 없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피터가 눈치 채지 않게 문을 살짝 열고 밖을 내다 봤다. 피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다리는 내려놓고 있었다. 실망감이 들었다. 그때서야 오줌이 마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하고 막 사춘기를 시작한 나한테는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았다. 곰곰이 아까 본 장면을 떠올려보다가 괜히 어머니 보기가 머슥했다.
그런 일도 며칠뿐이었다. 그렇게 뻔질나게 아침부터 우리 집 대문을 서성이던 동네 수컷들의 모습은 통 보이질 않았다. 아마도 어디 다른 암컷을 찾아 몰려간 모양이다. 한 번씩 심부름 가는 길에 우리 ‘피터’하고 정을 통한 수컷들과 마주치곤 했는데, 그들은 이제 나한테 무심했다. 아니 우리 ‘피터’한테도 관심이 없었다. 마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그냥 지나치기도 하고, 심지어는 ‘피터’와 내가 지나가는 길 한쪽에서 다른 암컷의 궁둥이에 연신 코를 박아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피터’의 눈치를 살펴보았지만, ‘피터’ 역시도 별로 괘념치 않는 모습이었다.
‘개들은 질투 같은 것도 안하나?’
그렇게 두 달 남짓, 이미 배가 불러서 걸음걸이조차 불편한 ‘피터’를 위해 어머니는 담요를 깔아주었다. 그리고 어떻게 아셨는지, 오늘 내일쯤이 될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막 겨울로 접어든 바깥 날씨 속에서 새끼를 낳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주 플래쉬를 들고 안팎으로 드나들었고, 아랫목 한 쪽에 새끼들을 위한 종이 박스를 마련하셨다. 출산 경험이 없었던 ‘피터’였지만, 어머니의 배려 속에서 7마리나 되는 새끼들을 잘 낳았다.
우리는 새로운 강아지들의 탄생과 젖을 물려 키우는 ‘피터’의 양육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미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제가 알아서 탯줄을 끊어 삼키는 것도 신기했고, 눈도 뜨지 못하는 새끼들을 한 마리씩 챙기는 것도 대견했다. 배가 고파 젖을 찾는 새끼들에게 헌신적이기도 했지만, 젖꼭지가 불어 터서 고통스러워 할 때 짜증을 내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런 피터를 안쓰럽게 생각하고, 정육점에서 돼지 뼈를 얻어다가 고와서 밥을 말아 먹이기도 하셨다.
피터가 몸을 회복하고, 제법 새끼들도 어미의 젖을 떼기 시작하면서 우리들 일손도 바빠졌다. 7마리나 되는 새끼들의 밥을 챙기고, 똥을 치우는 일은 항상 즐겁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검정 눈동자, 촉촉한 코, 자근자근 내 손가락을 깨물거나 손바닥을 핥는 느낌들을 보상으로 얻을 수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면, 우리는 서로 강아지 한 마리씩을 끌어안았다. ‘쥬피터’, ‘비너스’ 이름을 부르면서 마치 제 동생들이나 되는 양 볼을 비비고, 악수를 하고, 마당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몰고 다녔다. 그러면, 피터는 피곤하다는 듯이 한 쪽에서 실눈만을 한 채 우리를 지켜보곤 했다.
우리들의 놀이는 막 봄이 오기 시작하면서 끝이 났다. 차례차례 한 마리씩, 먼 친척에게 주거나 단돈 몇 천원을 쥐어주고서 어른들은 우리 놀이 친구들을 한마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빼앗아 갔다. 그 때도 피터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를 돌리고 제 집 한쪽 귀퉁이를 찾아들어가 누웠다.
참 이상했다. 피터나 새끼들이나. 피터는 이 모든 과정을 분명 처음 겪을 텐데, 마치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피터는 정확히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새끼들의 ‘아비’가 누군지 처음부터 관심이 없어 보였고, 새끼들도 ‘애비’없이 크는 것에 전혀 슬퍼하지 않았다. 이런 ‘개 같은 운명’이 다 있나.
얼마쯤 후, 마당에 또 빨간 핏방울 자국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동네 수컷들이 귀신같이 대문 앞에 몰려들었다. 은근히 부야가 치밀었다. 대문을 ‘쾅’하고 발로 차 닫아버렸다.
‘개자식들, 단 한 번도 피터한테 먹이 물어다 주지도 않았으면서’

"진철아, 넌 너무 생각이 많아... 그냥 살아..."
"선생님, 팔자인가 봐요.. 어떻게요..그걸"
"팔자? 요즘은 운명이라고 해."
'아직' '어떤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1. 아마 우리가 50이 되어도,.. 60이 되어도 그 때도 아직이라고 하겠지?
2. 정말 어떤 게 어떤 건지 그때도 몰라서, 위에 쓴 말, 그 때도 쓰고 있겠지?
3. 맞는거? 맞고 틀리고가 아니란 걸... 그 때가 되어도 모르겠지 우리는?
4. 모르는 것이 맞지. 어떻게 알겠어? 묘하지?
몰라서, 우리가 만났고, 몰라서, 책을 읽고, 몰라서, 쓰고 있잖니...
모르는 것, 모른다고 말하는 건, 모른다고 아는 건 ... 그래서, 많은 걸 알게 하나봐.
묙아, 생각해봐. 나이 60을 넘긴 6기들이 꼬부랑 할망구, 할아버지가 되어서
어디 카페같은데 모여서 수다떨고 있을 모습을... 그때도 우리는 만나면 행복해지고,
떨어지면 그리운 사람들처럼 살고 있겠지?
ㅎㅎ 모를 일이지? 그치?
그래도 좋다... 지금이 행복이... 모르는 지금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