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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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연구소에서는 ‘단군의 후예’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다.
100일간의 새벽기상을 통해 자신의 필살기를 수련하고자 하는 50여 분들의 야심찬 공동 프로젝트이다. 작년에 새벽기상 100일 도전을 통해 과거의 나와 결별하고 새로운 변화를 시작한 나 또한 흥미진진하게 그 프로젝트를 지켜보고 있다. 과연 얼마나 많은 분들이 처음 결심을 살려 끝까지 변화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처음 시작은 올빼미와 수탉으로 구분되어 저녁시간 또는 새벽시간의 활용을 각각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팀을 선택하는 시점에서 올빼미반은 신청자 미달로 사라지고 수탉반만 남았다고 한다. 신기한 것은 평상시 자신이 올빼미 체질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틀을 깨는 이번 도전에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벽기상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필살기를 갈고 닦기 위해 매일 2시간을 확보한다는 취지에서 보면 보다 쉬운 선택은 저녁 또는 늦은 밤, 예를 들어 10시에서 12시 정도가 적당하다는 생각도 있을 텐데, 왜 많은 사람들이 새벽기상을 선택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깨어있었으나 그다지 효율적으로 사용되지 못하던 기존의 밤 시간을 필살기 수련시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 쉽지는 않았을까?
저마다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밤 시간은 과거의 습관에 물들어 있어 새로운 변화를 시작하기에 힘들기도 하고, 하루의 일상에 지쳐 피곤한 밤보다는 상쾌한 새벽에 가뿐한 몸으로 필살기를 수련하겠다는 것도 큰 이유가 될 수 있다. 또는 외부의 방해없이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를 되짚어 생각해 보았다. 직장을 그만둔 상태였던-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았던- 그 당시에 바쁜 일상을 쪼개어 시간을 확보한다는 의미보다는 새로운 변화에 대한 몸부림이자, 내가 이 새로운 하루의 주인이요, 나의 의지와 결심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자기암시였고 쳇바퀴 도는 일상의 굴레를 끊어내고자 했던 선언적이고 상징적인 의미가 가장 컸다고 생각된다. 즉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나만의 통과의례였던 것이다.
그러나 새벽에 일어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한번이라도 시도해 보았던 분이나 이미 새벽기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분들 모두 알 수 있는 것처럼 새벽기상을 시도하게 되면 아주 오랜, 생각보다 긴 기간 동안 필살기를 수련한다기보다는 새벽기상 그 자체와 투쟁하게 된다. 즉, 과거와의 단절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온 몸으로 깨닫게 된다. 또한 의지의 힘이 습관을 이기기 쉽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거나, 심지어는 의지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새벽기상을 습관화할 때까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저녁모임이나 주변의 방해 같은 외부적 상황이 아니라, 내적인 갈등이었다. 새벽기상이 오히려 하루종일 몸을 피곤하게 하고 생각보다 효율성이 떨어지니 저녁에 충실히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내 마음 속의 유혹이 가장 컸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것은 힘든 목표 앞에서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한 유혹이자 변명일 뿐이었다.
이 시점이 바로 첫 번째 넘어야할 관문이 된다. 나의 변화에의 욕구가 얼마나 강렬했는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시험장이 되는 것이다. 막연한 바람과 희망으로는 꿈의 실현을 위한 변화를 시작할 강력한 동기가 되지 못한다.
새벽기상의 경우도 '일찍 일어나면 좋겠다' '일찍 일어나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 정도의 단순한 느낌과 바람만으로는 한두 번은 가능할지 몰라도 지속적인 실천으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
또한 어떤 계기에서 시작했던지 상관없이 안에서부터 시작된 변화만이 진정 나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된다. 외부적 환경의 변화나 강제로 일시적인 삶의 변화가 나타날 수 있지만 결국 변화란, 외부적 변화조차, 자신의 변화로 인식하고 받아들여야만 진정 자신의 것이 된다.
새벽기상, 새벽출근을 권장하는-때로는 강제하는- 회사에 7년이나 다니고도 새벽기상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체화하지 못했던 내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외부적 환경에서 시작된 강제적 변화는 외부적 환경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소멸되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결국 모든 변화는 안에서만 열 수 있는 문이요, 그 문을 여는 첫 번째 힘은 변화에 대한 절박함이요, 간절한 욕망이다. 그것은 불타는 갑판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용기를 주며, 익숙하고 편안한 것과 결별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변화, 그 강렬한 욕망이 우리를 새벽에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찾을때 같이 있어주는 것이 지금 너에게 가장 좋은 최고의 시간 활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집에 있을수록 우선순위를 정하는것이 필요하다는 것, 나도 절감하고 있어.
외적 통제가 없으니 잠깐 방심하다가는 무엇을 했는지 모르게 하루가 지나가버리지.
낮에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최대한 찐~하게 해보고, 그래도 새벽에 찾으면 꼭 끌어안고 함께 자는 것도 좋을 듯.
참고로 데리고 자는 우리 작은애는 한두 달 정도 내가 일어난 후 선잠이 깼던 것 같아.
엄마를 찾아 울기도 했지. 그래서 몇 번이고 말해줬어. 자다가 엄마가 없으면 바로 옆방에서 공부하고 있는거라고. 엄마 보고 싶으면 울지말고 엄마~하고 부르면 엄마가 막 뛰어온다고.
그리고 나서는 책을 보면서도 아이 인기척에 신경을 쓰고 작게라도 아이가 부르면 얼른 뛰어들어갔지. 그리고 다시 아이가 잠들때까지 안고 토닥여주고.
한참을 그러더니 이제 적응이 되어서 눈을 뜨면 웃는 소리로 엄마~하고 불러
물론 새벽이 아니고 지 일어나는 원래 시간에.
습관이란게 무섭지 ^^
내가 새벽에 일어나는 거 적응이 안된 또 한 명이 있었는데, 어른이니까. 그냥 적응하라고 했지 ㅋㅋㅋ
아마 이제 적응된듯 - 가끔 내가 못일어나고 알람이 울리면 싫어하긴해 ^^-


하지만 스승님은 즐기라고 하시지!
뭐든지 처음 시작할 때는 정지된 관성의 법칙을 거스르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해,
하지만 일단 궤도에 올라서면 점차 가속도를 붙이고 스스로 굴러가지.
새벽기상을 포함한 우리 모든 습관이 그렇듯이.
그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인내심,
그리고 과정의 즐거움과 작은 성취의 기쁨들,
'이성'이라,...
싫어, 나도 감성 할래 ㅋㅋㅋ
- 우리 담 책을 보니, 가지지 않은 재능을 탐내는 살리에르 이야기가 나오네.
그럼 난 그냥 '이성'해야 되는 건가 ?!

비가 오거나 외박을 하는 모임을 하는 것 이외엔 매일 멍이들 산책을 시킨다.
이거 새벽기상 만치 힘들이야.
내가 막 뛰다 몇일 그런 생각을 했어.
2년 이상을 이렇게 매일 뛰어서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우리 멍이들이 가지고 있는 말근육.
그리고 7키로의 멍이 줄을 잡고 뛰는 바람에 오른 팔뚝이 훨씬 더 굵다는 것.
페 활량이 겁나게 좋아졌다는 것.
그리고 나와 개들은 체지방이 0% 로 라는 것,
동물병원 원장이 우리 멍이들은 다리 근육이 올림픽 단거리 달리기 선수같다고 그러더라.
이처럼 무엇이든 오래 지속하면 달라지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네.ㅋㅋ
매일 습관 정말 훌륭한 것 같아.
조금 있다 또 매일 훈련하러 나간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원하지만 정작 변화를 이룬 사람들은 많지 않죠. 단기간의 변화는 가능하지만 그것을 장기화시키고 자신의 것으로 체득하기 까지는 정말 쉽지 않아요. 지속적인 시간투자와 반복이 필요한데...이런 투자가 유지되는 것도 쉽지 않고 유지되어도 자기몸에 철저하게 각인되지 않으면 관성의 법칙에 의해 다시 제자리로...습관의 요요가 일어나는듯해요. 그러면서 자신에게 실망하게 되고...그래도 이렇게 살 수 없다고 다시 용기내고 시도하기를 반복...
아...적고 나니 지금 내 상태...ㅋㅋ
막내동생이 새벽기상을 습관화했더군요..3개월째인데 이제야 정상 궤도에 들어섰다고 어제 자랑하더라구요. 어찌나 부럽던지.
왜 나는 안되었나 곰곰히 생각해보고 다시 다짐도 해보고..
그런데..불현듯...내마음을 다시 점검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정말 강렬하게 변화를 원했는지 부터 다시 점검...그리고 거기서 다시 시작하자고...
뭐 일단 첫결론은 변화를 원하는 척만했지...진정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