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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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대로 보여준다. 3D 영상효과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육안으로 보듯이 사물을 입체감 있게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 <아바타>에서 부가가치가 입증된 입체영상 재현기술은 TV, PC모니터까지 적용범위가 넓어져 집안 곳곳에서 이를 즐길 날이 머지 않았다. 3D영상기술의 원리는 간단하다. 두 대의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믹싱 작업을 통해 한 화면으로 통합한다. 그리고 좌우 색깔이 다른 셀로판지를 붙인 3D 안경을 착용하고 이 화면을 보면 빛의 편광효과에 의해 왼쪽 눈에는 왼쪽 편 카메라에서 촬영한 영상이, 오른쪽 눈에는 오른 편 카메라에서 촬영한 영상이 눈에 맺힘으로써 삼차원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반대로 한쪽 눈으로 사물을 보면 원근감의 장애로 인해 사물의 입체감이 크게 떨어진다. 육안으로도 평면적인 영상밖에는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눈으로 볼 때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볼 때도 3D의 원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요즘은 주말이 다가오는 게 홀가분하지만은 않다. 연구원 과제를 마무리해야 하는 부담도 있고, 한편으로는 주말 일정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주말 나들이 장소를 으레 인터넷을 통해 찾았다. 승용차로 한 두 시간 거리의 근교를 찾는 것으로 사고가 세팅된 탓에 인터넷으로 열심히 여행지를 뒤지고 자동차 열쇠를 먼저 챙기는 게 일이었다. 아내는 달랐다. 서로 다른 어린이집을 다니느라 걸어다닐 기회가 별로 없는 아이들을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까운 여기저기를 다녀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았다. 어른들 입장에서야 산이네 바다네 잘 알려진 명소가 의미 있을지 몰라도 아이들에게는 재밌고 놀만한 장소면 그만인데 막히고 복작대는 그 길을 기어이 나서곤 했다. 익숙한 사고방식을 여과 없이 따랐기 때문이다. 가까운 곳을 찾으면 시간도 절약되고 가족들도 편한 것을 맹목적인 습관이 피해갈 수 있었던 부담을 안겼다. 한쪽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쪽으로는 나의 입장을 바라보고 다른 쪽으로는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줄 알아야 상황이 입체적으로 들어오는 법인데 한쪽 면밖에 보지 못했던 것이다.
‘생각은 믿음을 낳고 믿음은 시선을 낳는다’고 사물은 보고 싶은 대로 보여지는 것 같다. 사물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데 사물의 고유한 성질이 믿음의 편광 필터를 거치며 저마다의 ‘진실’로 해체되고 왜곡되는 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자기 멋에 사는 것이 인생이기는 하지만 믿음으로 인해 시야가 좁아지면 타인과는 물론 자신과 소통하는데 문제가 생긴다. 사물이 지닌 다양한 측면이 발현되지 못하고 흑백의 논리에 묻히게 된다. 무지개는 실상 일곱 색깔보다 훨씬 많은 색을 아우르고 있다. 하지만 일곱 색깔로 무지개를 보는 사람에게 무지개는 일곱 색깔일 뿐이다. 동일한 현상에 대해 사람마다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가 될 법하지만 ‘상식’에 대한 우리의 신념은 가끔 상식 이상으로 견고하다.
사물의 입체성을 수용하지 못할 때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자신이다. 우리의 일상이 빚어내는 복잡다단한 스펙트럼-그 순간의 빛을 채집하여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는 것이 사는 맛일지 모르겠다. 빛을 잡아채는 망이 성기거나 헐거워 그 가능성들을 흘려버릴 때 삶은 너무 무거워지거나 무료해지는 게 아닐까.
지난 주말 대모산 산행에 이어 그 인근에 위치한 시립 아동복지센터에서 한판 축구시합을 벌였다. 강남구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 위치한 복지센터는 요람처럼 아늑했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비지땀을 흘리며 축구시합을 하면서 천국이란 마음에 있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그러고 나니 니진스키에게 잠시 미안해졌다. 가장 찬란한 10년을 보내고 인생의 절반을 사회적 사망자로 산 그에게 어둠 속에서 언뜻언뜻 명멸하는 그의 존재감은 얼마나 안타까운 부름들이었을까. 나의 두 눈은 각각의 시선으로 그 안타까움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던 것 같다. 천 개의 눈은 갖지 못할 지언정 내게 있는 두 개의 눈은 하나는 세계를, 하나는 나를 향해 항상 열어 두어야겠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류시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중에서)

저희는 얼마전 인근 아파트의 놀이터에 다녀왔답니당 ㅋㅋ
오전 일정들이 있어서 어딘가를 가기에 부담스러운 시간이어서, 늦은 오후 무작정 물 한병 들고 집을 나섰지요.
슬슬 동네를 돌아다니며 집구경을 하다가 들어가게 된 이웃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또 새로운 것을 발견하던걸요 ^^
한 시간도 넘게 신나게 놀고 또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아이들을 보면서 오빠와 비슷한 생각을 했답니다.
그냥 함께 있어주자. 아이들과 나도 재미있게 놀자.
즐겁게 함께 노는 내 모습이 비싼 곳, 먼 곳에 대한 기억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기억이 될거야...

대상과 눈높이를 맞추는 능력이 소통능력인 것 같아요.
누가 높고 낮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줄 머리는 아는데...
실제 생활에선
습관적으로 검증도 안 된 일차원 척도로 우열을 가른 다음에야
다음 프로세스를 진행하게 되니...
나보다 높다 생각하는 편엔 괜히 쫄고
나보다 낮다 판단한 편엔 은근히 오만해지는 나를 보게 됩니다.
특히 아이들과의 소통에선 시종일관 '가르치려고' 드는 스스로가 무섭게까지 느껴집니다.
엄마가 이렇게나 힘들게 해주는 건데..
너희가 '고마워 해야' 하지 않겠니!를 집요하게 강요하고 있으니 말이죠.
아직 마음의 눈이 제 시력을 찾지 못해서겠죠?

입체적인 사고. 저의 경우는 이래요. 사람에게 선입견이 생기면, 으레 마음을 닫아버리지요. '그럴줄 알았어' '원래 그러니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생각을 하면, 덜 실망할 지는 몰라도 발전의 여지는 없지요. 모든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사고에요.
형은 저보다 나이는 많으시지만, 오히려 편견이나 고정관념은 덜 한 것같아요. 주어진 상황에서 더 많은 선택지를 찾으시는 것 같고. 타인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않고, 한번 필터링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겉보기 보다, 눈치도 빠르시구요.
질문, 영어로 고정관념을 'stereotype'이라고 하나요? stereo면 입체인데, 왜 꽉만힌 선입견이라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