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연주
- 조회 수 2593
- 댓글 수 9
- 추천 수 0
컬럼14. 군대도 거부한 아이.
“나는 혼자서 나 자신의 생각들에 빠졌다. 그러는 것이 나는 가장 좋았다. 나는 혼자서 놀았고 혼자 돌아다니며 공상하면서 나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세계를 품고 있었다.” -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 카를 융 최후의 자서전」, 카를 구스타프 융
박진성, 이 아이는 내가 교사가 되고 처음으로 담임의 역할을 하게 되었을 때 우리반 학생이었다. 8년전, 생초보 교사가 고3 담임을 하게 되어 실수투성이었던 시절로 기억된다. 처음에 진성에 대한 느낌은 수줍음 많이 타는 조용한 아이였다. 학급에서도 아이들과 전혀 대화를 하지 않고 수업시간에도 전혀 말이 없어서 지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컴퓨터와 수학의 성적이 중간정도인 것을 보면 그것도 아니었다. 뭔가 소통하는 것이 어색하고 연습이 되지 않아서라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고 같이 놀라고 이야기했다. 나도 매일 진성이에게 먼저 말을 걸고 종례가 끝나면 교문까지 바래다 주기도 했다.
하루는 여자아이들이 선생님 부탁으로 같이 놀려고 하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유는 진성이가 무서워서였다. 진성이는 항상 쉬는 시간마다 혼자 앉아서 책을 보는데, 책은 모두 판타지 소설이었다. 진성이는 너무 몰입을 한 나머지 책속의 등장인물의 감정이 얼굴에 모두 드러났던 것이다. 화내는 장면에서는 분노의 표정을, 즐거운 장면에서는 기쁨의 표정을, 울다가 웃다가하는 감정표현을 혼자 책상에 앉아 나타냈던 것이다. 아이들로선 그런 진성이가 이해할 수 없고 두려웠던 것이다.
또 어느 날은 마음씨 여린 여자선생님이 사색이 되어 나를 찾았다. 그 선생님의 얼굴을 보는데 혹시 진성이 때문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진성이의 특이한 행동이 선생님을 놀라게 했다. 수업이 끝날 무렵 우리반 여자아이가 집에서 기르는 햄스터를 가지고 와서 자랑을 하며 보여주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그 햄스터를 손에 놓고 쓰다듬으며 바로 옆자리에 있는 진성이에게 “정말 귀엽지? 진성아 봐봐”라고 말했다. 그 순간 진성이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선생님에게 “던져버리기 전에 치워요”라고 말하며 일어섰다는 것이다. 이런 진성이의 특성을 잘 모르는 착한 선생님이 얼나 당황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았다.
또 고3이라 졸업앨범 수요조사를 하는데 전교에서 유일하게 진성이만 앨범을 사지 않겠다고 했다. 앨범을 보고 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하면 좋을 것이라고 했더니 진성이는 추억하고 싶은 기억이 하나도 없으니 앨범이 필요없다고 했다. 얼마 뒤 졸업사진에 넣을 단체사진을 찍는데 자기는 앨범을 사지 않을 것이니 찍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넌 앨범을 사지 않아도 널 추억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찍어야 된다고 말해주었다. 결국 함께 사진을 찍고 집으로 가는 길에 진성이를 바래다 주었는데, 혼잣말로 “이럴 줄 알았으면 앨범살 껄 그랬네”라고 했다. 그말을 듣고 너무 기뻐서 나는 “아직 늦지 않았어 샘이 살 수 있도록 말해 놓을께”라고 말했다. 그런데 진성이는 누군가가 기뻐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보기 싫어하는 사람처럼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사다가 불태워 버릴려구요”라고 말한다.
고3이라 어느 날 진성이와 진로에 대한 상담을 했다. 졸업을 하고 무엇을 할 것이냐는 물음에 진성이는 대학에 가거나 취업할 뜻이 없고 군대를 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보통 남자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군입대로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상담을 하는 내내 진성이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내가 애써 진성이의 시선을 따라가야 간간히 눈을 맞출 수 있었다. 사실 진로에 대한 이야기 보다 ,혹시 진성이가 자신의 부적응행동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면 너의 지금 태도들이 문제가 있고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다행히도 진성이는 자신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고치고 싶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싫다고 했다. 그럼 언제 고칠 것이냐고 물었더니 군대가서 맞다보면 고쳐지겠죠라고 대답했다.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남기고 진성이는 졸업을 했다. 그리고 7개월이 흘렀을 가을 어느 날 교무실로 한통의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넘어 낯선 여자는 졸업한 진성이의 이모라고 한다. 진성이 부모님이 아프셔서 대신 진성이의 학교생활이 어땠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갑자기 뜬금없이 졸업한 아이의 학교생활을 묻는 것일까? 진성이는 자신이 원하던 대로 졸업을 하자마자 군대에 입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입대한지 3개월이 넘은 어느 날 군대에서 진성이를 강제로 제대를 시켰다고 한다. 도대체 어느 정도로 사회에 적응을 못하길래 군대에서도 아이를 거부한 건지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진성이가 너무나 불쌍했다. 자신도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를 꿈꿨으나, 자신의 힘이 아닌 남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남들은 가기 부담스러워 하는 군대를 가는 것이 꿈이었던 아이였는데, 군대마저 진성이를 거부했다. 그렇다면 진성이는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 제대후 진성이가 얼마나 실망을 했을지 어떻게 지낼지 궁금해서 찾아가 보려했다. 그런데 주위 선생님들이 말리셨다. 가서 무얼 어떻게 할 것이냐고 이미 학교를 떠난 아이인데 이후에 그 아이를 어떻게 책임지려고 하냐고 물었다. 모든 것이 서툴렀던 초보교사였던 난 갑자기 무서워졌다. 그때의 나는 아무런 대책도 용기도 없었다. 결국 진성이를 찾아가지 못했고, 그 뒤로 그 아이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니진스키 영혼의 절규>를 읽으면서 문득 진성이가 가슴속에 지니고 살 이야기들이 궁금해졌다. 니진스키의 <일기> 한 구절이 가슴을 울린다. “나는 쉽사리 울지 않는다. 나는 강한 의지력을 지닌 남자이다. 나는 자주 울지 않지만, 나의 감정은 심한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군대에서 쫓겨날 정도면, 참 심각하다. 내 친구중에도, 비슷한 아이가 있지. 약간 내성적이었는데, 자기 생각? 자기 고집같은 것이 강했어. 20년만에 소식을 들었는데, 결혼도 못하고, 편의점 알바한다고.
난 적어도, 사법고시 패스해서 엘리트가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어느 소아정신과 의사가 이런 말을 해. '아이들에게는 유산이 아니라, 사람들과 잘 지내는 능력을 물려주라고'
진성이도 겉으로는 모났지만, 안에서는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집에 가도 따듯하지하고, 학교에서는 그런 자신을 몰라주고.
아이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니, 글이 재미있다. 선생님 말씀대로, 학생을 주제로 여러각도에서 쓸 수 있는데, 그런 책이 없지. 연주가 첫빵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단지, 너무 바빠서 걱정이야.

몇 해가 지난 늦은 봄이었다. 진성이의 '청첩장'을 받게 된 날은.
수업을 끝내고, 나른한 봄기운에 졸린 오후를 탓하면서 교무실로 들어서는데,
책상 위에 수줍게 놓인 청첩장.
'신랑 박진성 신부 000'
아... 진성이.. 누굴까.. 우리 진성이랑 결혼할 여자는... 잘 그려지지 않았다.
청첩장에 담긴 사진을 보며, 짐짓 놀랐다. 옆에 김선생님이 흘깃 쳐다보더니, 얄궂게 말한다.
"어라? 연주샘 닮았네.."
괜시리 얼굴이 붉어졌다. 책상위에 달력에 빨간펜으로 적었다.
'토요일, 오후 1시반, 진성이 결혼'
제 맘 알아주는 여자, 그리고 가정을 가져가며. 더디지만 천천히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진성이의 모습을 그려본다.
봄날, 운동장쪽에서 떠드는 아이들의 고함소리에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다. <끝>
<주요장면>
"넌 앨범을 사지 않아도 널 추억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찍어야 돼."
“이럴 줄 알았으면 앨범살 껄 그랬네”
“아직 늦지 않았어 샘이 살 수 있도록 말해 놓을께”
“사다가 불태워 버릴려구요"
"군대가서 맞다보면 고쳐지겠죠"
자신의 힘이 아닌 남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진성이의 마음의 벽, 쌓게 된 이유가 있을텐데...
연주맘에 너무 깊게 남기지는 말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