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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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준비 되었던일들 이었을까? 가는 곳마다 그들은 나에게 웃음을 주고 사연을 주었다. 몽골에서 만난 이 친구는 나에게 등을 내밀어 주고는 같이 꿈을 향해 달리자고 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몽골의 징기스칸이 태어난 헨티 마을까지 푸르공이란 작은 봉고버스를 타고 엉덩이가 얼얼하도록 비포장을 8시간을 달려 도착했다. 말을 타고 푸르디 푸른 벌판을 향해 달리며 나의 꿈을 펼치기를 다짐하며 참석한 여행이었다. 물론 그 프로그램 안에는 말 타기 이외에도 드넓은 초원에 앉아 명상을 하는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과 하루 지내보고는 나는 특별히 가부좌를 틀고 폼 잡고 앉아 명상을 하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 하지 않았다. 그들은 집 한 칸 없이 게르라는 이동식 가옥인 텐트 안에서 모든 식구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게다가 물도 어찌나 귀한지 기본적인 식수로만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의 생활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나의 무한한 잠재력이 끝도 안 보이는 저 벌판 같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었던 소중한 여행이었다.
나는 몽골에 가서 남들이 다 타는 말도 제대로 못 타고 돌아오고 말았다. 그래도 푸른 초원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 한 장은 남기고 싶어 개를 탔다. 하지만 개의 허리에 앉지는 않고 폼만 잡았다. 내 허벅지에 힘을 잔뜩 준 채로 말이다. 왜 말을 못 탔냐고 궁금해 할지도 모르겠다. 이유는 말의 눈과 엉덩이에 까맣게 앉아 말들을 괴롭히는 쇠파리들 때문이었다. 얼마나 간지러울까……. 말들이 가여워 내내 궁둥이를 따라 다니며 부채질을 하기에 바빠 말을 탈 수 없었다. 나는 말꼬리가 개도 아닌데 연실 흔들어 대는 이유를 아냐고 물어봤는데 그것은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꼬리로 파리를 쫓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럼 눈에 붙은 파리는 꼬리도 안닿고 손도 없는데 어떻게 쫓냐며 말을 따라 다니며 눈에 부채질을 해 주었다. 내가 생각해도 참 팔자다. 그거 누가 시켜서는 절대 못 한다. 누가 시켜서 한다면 아마 속에서 열 불나서 곧 싸움이 될 것이 뻔하다. 그래서 아이들이건 어른이건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을 찾아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자신의 재능을 찾아 즐기며 지속시키며 강하게 키우는 일. 성공의 지름길이자 인생을 즐기는 일이라 생각한다.
나와 인연을 맺은 하얀 말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긴 속눈썹과 순수한 눈망울에 반한 나는 그녀와 금세 친구가 되어 ‘짱’ 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는 쓸어주며 이야기 했다. 8일이란 시간 동안 나는 그의 말 주인과도 친구가 되었다. 역시 동물이 맺어 준 인연이었다. 아저씨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어린 26살에 아이 둘을 가진 아빠인 이 친구는 나의 이런 모습이 너무나 다른 사람과 틀려 보였는지 참 재미있어 했다. 우리는 말은 단 한 마디도 안 통했지만 나는 그의 생활을 알 수 있었고, 그는 나의 마음을 읽어내고 있었다. 왜 말을 안타냐고 자꾸 궁금한 눈으로 쳐다본다. 왜 만지기만 하느냐고 무섭냐고 묻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몸 언어로 이 말은 내가 너무 작아 타면 아플까봐 못 탄다고 체스츄어로 이야기 했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 다음날 그 보다 훨씬 큰 말을 가지고 아침에 나를 찾아 왔다. 그리고는 그가 이 말은 몸이 커서 두 사람이 타도 끄떡도 안한다며 손을 벌렸다 폈다하다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고 씻지 않은 까만 얼굴에 하얀 이가 옥수수 알처럼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성의가 갸륵하여 나는 그 말을 타고 조금 달리다 꼬리 뼈 부분이 다 까지고 말았다. 안장이 나에게 안 맞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번엔 말이 크니 진짜 무서웠다. 아이고 이참에 ‘잘 됐다!’ 생각해서 나는 엉덩이를 부여잡고 여기가 넘넘 아파 이제 못 탄다고 말했다. 단 하루라도 말들의 잔등을 쉬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는 하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아주는 마음이 깊어질수록 헤어지는 날은 다가 오고 있었다.
헤어지기 전 날 우리는 각자의 마부와 이별의 시간이 있었다. 가지고 온 선물을 주고 아쉬움을 달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나의 마부가 보이질 않았다. 무슨 일이 있구나! 못내 섭섭한 마음을 누르고 게르에서 짐을 싸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마부가 각 동의 게르를 이 잡듯 뒤지며 나를 찾고 있다고 누군가가 말해주었다. 뛰어나가 보니 그의 눈 흰자위는 붉은 노을처럼 물들어 있었다. 뭐라고 계속 이야기 하는데 좀처럼 이해가 안 되어 안 되겠다 싶어 통역을 찾았다.
통역된 그의 말에 나는 그만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친척집에 갔다 시간 맞춰 돌아오는 길에 소나기를 만났다고 했다. 몽골에는 번개를 막아 줄 피뢰침이나 건물이 없어 절대 비오면 말을 타고 달리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비를 맞으며 번개의 위험을 무릅쓰고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짱을 데려가도 좋다고 했다고 통역이 말한다. 그들에게는 재산이 말이다. 그런 말을 데리고 가란다. 내가 짱을 자기보다 더 사랑한다는 것 같으니 잘 키워 달란다. 그의 생각에는 한국이 어딘지도 모르고 우리나라도 저 푸른 초원 위에 게르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평생 사는 줄 아는 모양이다. 그래서 통역에게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가야 하고 바다를 건너가야 한다라고 말을 해 달라 했다. 그러자 그가 중국을 통해 육로로 말을 타고 가라는 것이다. 너무 복잡하지 않게 아무것도 모르고 사는 것이 가끔은 얼마나 큰 행복이고 퍼 줄 수 있는 사랑인지 새삼 느꼈다. 우리는 넘치는 정보에 둘러쌓여 있고 그 때문에 너무나 많은 것을 알아 도리어 저렇게 아름다운 선물을 주지 못 하고 사는 것인가 보다. 세계지도가 머릿속에 있는 우리가 남에게 말을 가지고 가라 할 수 있을까? 아마 놀린다고 간주하여 소중한 선물도 불쾌해 버리고 말 것이다. 마음이 하라는 대로 할 수 있는 표현이 진정한 사랑이란 생각이 들었다. 재지 않고, 따지지 않고 그냥 주기만 해도 행복한 사랑 너무나 아름다웠다.
나도 뭔가 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 내가 가지고 간 문방 용품과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주고 왔다. 내 옷은 마누라 주고, 이 공책은 아이들 공부시키고..... 가방은 비었는데 몸은 더 무겁다. 내 마음에 가득한 사랑이 내 인성에 살을 찌웠나보다. 그는 자기 재산을 주겠다 하고도 내가 준 자그만 선물에 고마워 계속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이 순간의 마음을 영원히 지속하자 사진을 찍었다. 삶에 충실하고 현실에 지쳐 논바닥처럼 갈라진 마음에 단비같은 사진이 될 거란 생각으로 찍었다. 사진을 찍고 디지털 카메라로 바로 사진을 보여주니 너무나 좋아한다. 나는 약속했다. 이 사진을 반드시 보내 그의 집에 놓아둘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우리는 손을 걸었다. 나는 물론 약속을 지켰다. 그의 게르 한 편에 나의 사진이 아직도 있을까? 짱은 아직도 벌판을 달리고 있을까? 시간은 흘렀지만 마음에 남아 있는 사랑과 그리움은 더 짙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