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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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끈 발랄 크루즈의 하룻밤’
‘5만5천년형 범죄자의 자기 변론’
‘골치덩이 상사의 용의주도 실종법’
2075년을 하루 앞둔 「Jung City」의 재래시장은 동공신경을 타고 뜬금 없이 전송되는 꿈을 파는 CF 문구들만 아니라면 정적 그 자체였다.
‘좀 더 야만적인 건 없나. 그 정도로 팔릴까.’
20세기의 작가 카뮈처럼 롱코트 깃에 얼굴을 묻고 혼령처럼 시장바닥을 떠돌고 싶었건만,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기억재생소를 우측으로 끼고 활강 선수처럼 잽싸게 골목을 이리저리 휘돌아 문 앞에 섰다.
“아내의 이름은?”
“용의주도 미스 신”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고객마다 고유한 무의식의 로직을 등록해 놓았다가 랜덤으로 질문을 던지는 새로운 인증시스템은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래도 머릿속에 떠오른 답변을 꼬박꼬박 짚어내는 걸 보면 내가 유치한 건지 기술이 뛰어난 건지.
홀로그램 문이 일시에 걷히고 ‘미화원’이 부자연스러운 윙크로 나를 맞는다. 꿈의 브로커를 이 바닥에서는 그렇게 부른다. 처음에는 들키고 싶지 않은 내면의 욕망을 구매해준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지만 이들처럼 지저분한 욕심을 내는 사람들도 없다. 요즘에는 숙성기간을 무시하고 성질을 자극해 몇 분만에 최고의 상품을 얻으려는 장사치들이 판을 친다.
“얼마나 숙성하셨나요?”
“한 보름 쯤”
“지난번 보다 품질은 어떤가요?”
“아랫배에 힘을 줄 때도 오직 그것만 생각했습니다.”
“기대가 되네요.”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동공의 주파수와 대역을 맞추니 어젯밤 꿈의 내용이 바로 홀로그램으로 떴다.
고도 1500km의 우주 상공에서 내려다 본 지구는 몇몇 도시를 제외하고는 황색의 대지로 뒤덮여 있다. 좀더 가까이서 보니 황색은 땅을 가장한 똥덩어리들이다. 육안으로 보이는 사방천리가 똥밭이다. 그 장대한 광경을 보지 않고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 똥밭 한가운데 지상 500층의 융 시티가 등대처럼 위용도 당당하게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열 살 때인가 나로호 우주관을 방문했을 때 경탄하며 봤던 에메랄드빛 지구 사진도 여기에 비한다면 코끼리똥과 염소똥의 차이라고 할 만했다.
“글쎄요…별로 극적인 데가 없는데요.”
“좀더 기다려 보시죠. 이제 곧 나옵니다.”
2075년 6월. 14만4천명 융 시티의 거주민들은 마침내 지구 작별의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7월이 되면 지구는 1875년 발견된 헤르마프로디투스 혜성의 채찍에 맞아 갈기갈기 찢어질 운명이다. 100년이 공전주기인 헤르마프로디투스 혜성이 1975년 지구를 다시 찾았을 때 과학자들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전주기마다 지구와 혜성간의 거리가 20만km씩 줄어들어 2075년이 되면 지구는 혜성과 정면 충돌을 면할 수 없었다. 사실이 알려졌을 때 발생할 재앙을 일찍이 간파한 각국의 위정자들은 비밀회동을 갖고 유사 시 대기의 저항을 가장 적게 받으며 새로운 거주지 달을 향해 이륙할 수 있는 우주선 발사장소로 만주 헤이룽강 일대를 선정했다. 위대한 인류의 씨앗으로 추정되는 14만4천명의 거주민들이 각국에서 뽑혀 이 곳으로 이주되었다. 2025년 역사적인 첫 삽을 뜬 융 시티는 메가시티 빌딩이란 브랜드를 내걸었지만 사실은 혜성의 침략에 대응한 21세기판 노아의 방주였다. 혜성이 발견된 해에 태어난 위대한 인간정신의 대변자 카를 융의 업적을 기려 '새로운 환경에서 위대한 인간정신을 구현하자'는 취지에서 융 시티라 명명된 것이다.
“저거… 땅이 흔들리는 건가요?”
“…….”
“똥밭 전체가 하늘로 뜨고 있어요. 밭이 아니라 대륙인데요.”
똥으로 뒤덮힌 대륙의 비상. 흔하디 흔한 똥 덩어리가 그와 나의 내면에 벼락 같은 전율을 일으키고 있었다. 먼 옛날 아파치 인디언들은 이런 전율 때문에 머리가죽을 벗겼던 것일까.
“근데 이상해요. 저기 가만있는 거 융 시티 맞죠?“
그의 말대로 모든 것이 날아 오르는데 융 시티만 풍경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떠나야 할 때에 지상을 지키는 우주선은 고독 그 자체였다. 융 시티는 문명화된 주민들을 받아들여 더욱 고도화된 문명을 꽃피웠다. 그들은 인류의 희망으로 불리는데 손색이 없게 우수한 지능과 합리적인 사고력, 탁월한 리더십과 공동체의식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척박한 달에서의 생존을 위해 융 시티는 사위일체의 이념-小食, 小動, 小思, 小間-으로 통치되었다.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행위와 활동으로 일과가 짜여졌다. 식사는 하루에 한 번 정해진 분량대로, 섹스는 한 달에 두 번, 번식에 필요한 수치 이상으로 자율신경계가 흥분하면 경위서를 쓰고 세 번에 이르면 도시를 떠나야 했다. 출산은 월별로 사망자수를 확인하여 잃은 만큼만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통제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불만을 터트리는 사람은 없었다. 인류의 운명을 알고 있었고, 도시 밖의 척박한 거주지역에서는 선택 받지 못한 또 다른 인류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야만적’인 본능의 습성을 지키며 살고 있었다.
“우리는 축복받은, 즉 선택받은 인류입니다.” 융 시티의 시장은 연설하는 자리에 서면 으레 이 말로 서두를 시작했다. 자부심에 찬 그의 어투는 곧 융 시티 시민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 때면 회의의 스무고개가 나를 엄습하곤 했다. ‘육신은 여기에 있지만 나는 어디에 있는가’ 이리로 이주한 지난 5년간 삶은 살아지는 거였지 즐기는 것이 아니었다. 원초적인 꿈을 파는 암시장이 성행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껍데기로 살아가는 융 시티 거주민들의 그림자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의 꿈을 먹으며 본능을 위로하는 하루살이 뱀파이어들이다. 혜성의 위협보다는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존재감이 더 무섭다.
지구 시각 2075년 6월28일 정오. 오존층을 대신해 에메랄드빛 지구 상공을 뒤덮은 거대한 똥 덩어리는 비상을 마치고 일사불란하게 공 모양으로 도열했다. 빈틈을 찾아볼 수 없는 똥의 대륙이 되었을 때 덩어리는 불구대천의 원수 헤르마프로디투스 혜성을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혜성과 똥의 충돌은 일찍이 체험하지 못한 놀라운 색의 향연을 연출했다. 이 날의 광경은 멀리 안드로메다 성운에서도 관찰되었고, 명왕성을 지나 태양계를 갓 벗어난 지구 최후의 우주탐색위성에서도 음파가 탐지되었다.
똥에 취한 미화원과 나는 한 동안 말을 잃었다. 똥 덩어리의 상승 장면에서 기억이 멈춘 나는 이제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얼마면 되겠습니까?"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미화원이 물었다.
"14만4천원만 주세요."
"네! 정말요. 이 정도 스케일이면 1천만원은 받을 수 있는데."
"아뇨. 정말 됐습니다."
5만원권 두 장과 만원권 네 장, 천원짜리 동전 4개를 정확히 챙겨든 나는 터벅터벅 집을 향해 걸었다. 새해를 앞둔 시장은 여전히 인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언제부턴가 우리 인생은 몸뚱아리만 남은 삼치구이 신세가 됐어. 머리, 꽁지 다 잘라버리고 본론만 얘기하고 행위만 따지는 인생이 된거지. 그래도 위장은 채워지고 똥은 만들어졌으니까. 헌데 우리는 왜 축제의 멍석을 다 걷어내 버리고 기계처럼 살게 됐을까. 오로지 정해진 행위로써만 인정받는 이런 개같은 인생말이야. 똥의 잔상에 5년간 공들여온 무의식의 고삐가 풀리고 말았다.
새해 새벽 머리속에 떠오른 한 가지 생각을 나는 실천에 옮겼다. 다소 묽은 두 덩어리의 똥을 싸고 5만원권 두 장과 만원권 네 장으로 밑을 깨끗이 닦은 후 마지막 세리머니로 동전 4개를 트레비 분수에 헌납하듯 변기 안에 아낌없이 던졌다. 14만4천명의 값진 생을 똥의 정령에게 위탁하며 그들을 축원한 것이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새해 첫날분의 아침을 먹고 트렁크 가방에 가볍게 짐을 챙긴 후 융 시티의 정문을 향해 유유히 걸음을 옮겼다. 무장한 경비병들이 앞을 가로 막고 행선지를 물었다. 죽음과 같은 단잠을 자고 말짱한 정신으로 나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똥이 구원하기 전에 똥을 구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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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의 열공하는 노력 억수로 가상타. 그쟈? 연구원 하다보니 백발되더라는 사람 많다네. 좋지 않은가?
신선한 충격에 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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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시술 동의서로 접수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참고로 저도 오빠에게 같은 동의서를 제출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메세지가 불명확하다라기 보다는 '고차원'적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 같아요.
이해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해석이 필요하다고나 할까?
오빠의 언어와 오빠가 표현하려고 하는 대상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의식적인 작업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유익한 뇌운동이 되었죠.
그치만 힘들었던 건 사실이예요. ^^
(물론 힘든 거 싫어하는 제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일 가능성이 50%를 넘지만요. )
서두름없이 안전하게 다져진 지반.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면서도 입체적으로 설계된 골격.
이제 마감만 남았구나! 기다리는데..
좀처럼 다음단계가 진행되지 않는 느낌이랄까?
(물론 이것도 참을성이 부족한 제쪽의 문제일 가능성이 좀 더 크긴해요. ^^)
오빠!
참으로 조심스럽습니다.
솔직한 느낌을 코멘트하려다가도 바로 따라오는
'너나 잘하세요!'란 녀석이 말문을 막습니다.
하지만 귀한 시간내서 여기 온 이유를 되새기며 용기를 냅니다.
서로를 믿고 진실할 수 없다면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믿으니까요.
(물론 이 역시 진실이 약이 된다 믿으시는 분에 한해서 말이죠. ^^;;;)

솔직한 의견, 무쟈게 고맙다. 앞으로도 그 기조를 유지해 줬으면 좋겠다.
이번 컬럼을 소설 형식으로 쓴 것은 장막뒤에서 변사 노릇을 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융에게 신의 존재를 확신시켜준 환상의 체험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그걸 내 방식
으로 풀어보고 싶었다는 게 맞겠다. 물론 내 생각도 좀 섞여 있지. '삼치구이' 얘기
같은 거. 하지만 그건 나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트렌드를 언급한거지, 말 못할 사정을 요상하게
꼬아놓은 건 아니니 오해 없기 바란다.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느낌을 살려보고 싶었다고
이해해 주렴.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건 자기를 드러내는 게 꼭 컬럼의 덕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하고픈 메시지가 명확치 않다면 문제겠지만, 항상 작자 스스로가 글 속에 투명하게 나타나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자서전이라면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중요하겠지.
네가 말한 것이 메시지의 불명확성이라면 좀더 고민하고 노력하마.^^

오빠 힘주고 있느라 힘드시죠?
좀 더 편안하게 풀어놓으셔도 좋지 않을까요?
힘 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해요.
오빠가 아무리 작정하고 풀어놓으려고 해도 첨서부터 잘 되지는 않을걸요.
니체, 니진스키, 박묙이 넘 여과없이 풀어놓아 난해한 부류라면
오빠는 여과지가 넘 두꺼워서 어려운 쪽이예요.
빈약한 여과지를 보충하는 게 어려운지
두꺼운 여과지를 걸러내는 게 어려운지
흥미진진한 게임이 될 듯한데...
어때요?
한번 해보지 않으실라우? ^^
쩝...
지난 번 융책 읽음서 결심한 것이 있슴다!!
묻는 사람에게만 대답하라!!
대신 묻는 사람에겐 확실히 대답하라!!
제 맘 이해하시죵? ㅎㅎ

소통. 궁금하네요. 형의 생각하는 소통이 무엇인지. 이런 글을 쓰신다면, 소통의 개념도 제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리라 예상합니다.
저는 소통이라면, 핸드폰, 트위터, 블로그, 인터넷등이 떠오르거든요.
*월 섹스 2회, 경위서. 욕망과 그것을 억누르는 사회적 제압. 좌절하고, 순종할 수 밖에 없는 개인. 그래도 돌파구를 찾아서 실행하는 용기. 라고, 제 나름 정리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