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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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제
1. 그대가 자서전을 쓰게 된다면 그대가 겪은 삶의 크고 작은 일들이 기술되겠지 ?
지금 까지 나를 만들어 온 가장 중요한 경험은 어떤 것일까?
'3가지의 큰 경험' 이 무엇인지 골라 신문기사처럼 기술하라. (1 페이지)
2. '3 가지의 큰 경험'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하나를 골라 자세히 해석해봐 (1 페이지)
3. 이 경험을 통해 그대는 그대라는 세계에 대하여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 ? (0.5 페이지)
(그대의 기질, 취향, 재능, 가치관, 믿음, 선호 등등.... )
과제 1 : 3가지의 큰 경험 (신문기사처럼 기술하라)
최우성씨가 자서전을 발간했다.
자서전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이루어 온 3가지 큰 경험을 기술하였다. 자서전은 유년시절, 청년시절, 장년시절, 노년시절로 구분되어 있었으며, 시기별로 자신의 배움과 성장과정 사람들과 음악에 대해 적어놓았다, 그는 그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3가지 경험에 대해서 담담하면서도 솔직하게 기술했다.
(1) 음악
1986년, 그는 대학교 1학년 학교 축제기간에 ‘교내 가요제’에 신청했다. 김민기의 ‘이 세상 어딘가에’라는 노래였다. 예선은 통과했으나 본선에서는 떨어졌다. 1987년 다시 도전을 했고 이번에는 자작곡이었다. 당시 최루탄에 숨졌던 연세대 이한열을 생각하면서 만든 노래였다. 최루탄에 숨진 젋은 청년학도의 삶이 그의 가슴에서 공명했다. 그가 가진 공감 테마가 작곡을 하게 한 것으로 판단된다. 악보를 그릴 줄 몰랐기에 기타를 뚱땅거리면서 멜로디를 외워서 불렀다. 그리고 그 노래로 금상을 받았다. 상품으로 받은 크리스털 유리잔은 막걸리 잔으로, 잔 받침대는 재떨이로 썼다. 그는 말한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금잔디 광장에서 저녁 노을과 함께 화려하게 빛나던 조명과, 후배가 안겨 준 꽃다발, 그리고 4천명이 질러대는 우렁찬 함성과 박수소리 였다.”그는 연예인들이 무대의 환호와 조명을 잊지 못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2004년에는 병원에서 직장동료들을 충동칠했다. 드럼, 베이스, 기타 강습을 배우도록 해서 6개월 후에 환자들을 위한 콘서트를 한 것이다. 두 번의 대형 콘서트, 호스피스 병동이나 간간이 이루어진 환자를 위한 공연 등은 그에게 자원봉사의 기쁨을 선사했다. 그렇게 음악은 그에게 직장생활의 지루함을 잊게 했다.
2004년 12월이었다. 몹시 힘들어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구본형 선생님의 ‘나(me story)’를 읽었다. 그 책이 기폭제가 되었다. 초등 2학년 딸아이의 음악책을 보면서 음표를 보고, 기타로 뚱땅거린 음을 악보에 적기 시작했다. 첫 곡을 옮기는데 8시간이 걸렸다. 그 때 이후, 취미인 작곡을 지속했다. 1년에 2~3곡 정도를 만들었다.
2006년 6월 3일에는 직장인도 참가할 수 있는 제 1회 레일아트 [지하철/전철] 창작가요제에 출전했다. '하루'라는 노래를 작곡하여 동생과 함께 불렀다. 팀 이름은 '최브라더스'.. 우수상을 받고, 상금과 함께 부상으로 음반녹음도 했다. 수상자들의 노래가 녹음된 음반은 매우 촌스러웠고 유치했지만, 택배로 cd 10장을 받아들었을 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세상에 없던 것이 그의 이름으로 나온 첫 번째였다. 당시 39세, 마흔을 맞이하는 그에게 세상이 준, 기특한 선물이었다.
그는 음악이 가진 힘을 사랑했다. 음악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힘이 있었다. 성격이 다른 직장동료들이 음악으로 하나가 되었고, 특히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는데는 특효약이었다. 또한 그는 삶을 위무하는 음악에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쉽지 않은 생의 어려움에 힘들어할 때, 그것은 고단한 삶의 마취제와 같았다. 다만, 음악과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2) 배움
그는 타율적인 배움의 과정을 지루해했다. 호기심과 열정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4년 ‘꿈의 대학’ 기획안을 만들어 실행하기 시작했다. 요리하기, 피아노 독학, 공연연출, Movie Maker S/W 익히기, 1년에 책 서평 100권 쓰기, 연필 데생그림 그리기 등이 [꿈의 대학]의 과목들이었다. 과정을 기획하고 중간평가와 기말고사 숙제도 스스로 설계하고 실행했다. 학생이 되었다가, 평가를 하는 교수가 되고, 교육시스템 설계자가 되어 북치고 장구치고 혼자서 논 것이다. 과정은 대체로 재미있었다고 한다.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공연연출’ 은 책을 사보고 온라인 교육을 별도로 수강했으며, 병원에서 환자를 위한 콘서트 연출을 직접 해서 기말고사 점수를 80점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요리는 부모님 생신과 장모님 생신때 가족들을 초대하여 상을 직접 차려드리면서 이론과 실제의 접목을 꾀하기도 했다.
그는 배움을 통해 새로운 것을 깨알았다고 한다. 1년을 해보니 ‘노는 것’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과목이 낙제점이라는 것이었다. 흔히들 재미있어야 오래할 수 있다고 하지만, 재미가 교육과정의 완료를 책임지는 것은 아니고, 혼자놀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재미와 더불어 절실함이라는 교육 동기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또한 배움은 단순한 양 보다는 자기화의 노력에 달려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우연히 한겨레 신문 광고를 보고 2008년 9월~12월 3개월 과정의 사회적 기업가 MBA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비영리 기관의 경영이나 마케팅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도적 학습의 경험은 이후 직장에서 하는 모든 교육에서 꽤 좋은 성과를 올리게 한 동인이 되었다. 학습자와 최상주의자 테마가 발동한 것으로 보인다.
(3) 결혼
평범한 많은 사람들처럼 그에게도 결혼은 ‘학교’였다. 그리고 결혼을 통해 성장했다.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 관계를 맺는 법, 아이들을 키우는 기쁨과, 어쩔 수 없는 부모의 속상함을 배웠다.
과제2 : 가장 중요한 장면
(현장수업만 공개)
과제3 : 최우성은 어떤 사람인가!
강점테마 : 공감, 조정자, 개인화, 최상주의자, 학습자.
‘공감’의 테마를 강하게 지닌 호기심 많은 사람인 것 같다.
MBTI 결과는 INFJ (N, F 는 중간에 위치) 공감하는 부분을 살펴보면,
사람들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는 것을 선호하고, 현실 이면의 가능성에 초첨을 맞추는 편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가능성을 좋아하고, 어려운 문제가 닥쳤을 때, 분발하는 특징도 있지만, 가능하면 어려운 문제가 오지 않기를 기원한다.
대인관계에서 서로에 대한 진실성과 헌신을 중요시한다. 지금은 유머, 웃음이 있는 관계를 최고로 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기본적으로 ‘연민’이며, 인간의 성장을 중시하는 가치관과 직관을 조화시키는 직업에 종사하고 싶어한다. 성직자나 교사가 되었으면 좋았겠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직장동료들에게 나에 대해서 물었을 때 말해준 것 중 인상적인 Best 5!
- 표현을 잘 한다. 의사표현이 명확하다.
- 술 취하면 맨날 ‘인생이 뭐니?“, ”사랑이 뭐니?“ 하고 묻는다.
- 티칭을 잘한다. 설득력 있게 브리핑을 잘 한다.
- 카피라이터, 출판기획자, 편집자를 하면 잘 할 것 같다..
-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연하인 사람에게 빠르게 말까기를 잘한다.
* 대중적인 공감능력이 있는 것 같고, 부드러운 설득에 관한 책, 코칭에 관한 책이나 컬럼을 읽으면 공명이 많이 된다. 부드럽고 강한 스승님의 글에 감정이입이 많이 된다. 호기심이 많고 규칙을 깨뜨리는 다양한 실험을 모색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중적인 부분도 있어서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것을 선호하지만 때론 시끄럽게 춤추고 떠들기도 하며, 수용과 안정에 대한 욕구가 있으나 변화와 혁신 또한 선호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의미를 발견하려 애쓰는 편이며 자주 자신을 성찰하고 단점을 개선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지난 주부터 ‘강점을 확장하는 삶’을 살려고 마음먹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삶을 ‘최고의 삶’이라 생각한다..
[해보고 싶은 일]
- 기본적으로 느린 사람이라, 먼 미래를 전망하는 일
- 메뉴가 하나뿐인 불친절한 맛집 (국밥이나 설렁탕) 사장님
- 경영은 모르고 예술만 아는, 아티스트들의 경영 파트너
- 아마츄어 직장인 밴드 육성 컨설턴트'
- 변경연의 메시지와 웃음을 노래로 만들어 전하는 달팽이 밴드 리더
- 치유음악으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 등...
p.s
여행을 준비하다가 여러사정으로 취소하면서, 나에 대해 몇 가지를 더 알게 되었다.
첫 번째는 이성의 승리였다. 무분별하게 튀어나오는 감정과 자연스런 욕구를 합리적인 이성으로 설득하고 타이르면서 감정이 설득당했다. 난 매우 감성적인 사람인데, 또한 이성적인 사람이 되었다. 서로가 원할히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힘들었지만, 서로 납득할만한 결론을 냈다. 스스로 그런 모습을 원했으므로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다.
두 번째는 나의 반응이었다. 이성적으로 완전히 설득당하자, 까닭모를 눈물이 흘렀다. 그 이유를 몰랐었는데 이제는 알았다. 이성은 수용했으나 내 감정은 도데체가 수용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그런 나의 모습이 조금은 바보스럽지만 한편 귀엽다.
세 번째, 아, 열받는다! 이런 식으로 ‘여행 사건’ 을 종료할 수는 없다. 그토록 원해도 안되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상황은 언제든 변하기 마련이다. 나에겐 이번 여행이 이벤트성 일회용 여행이 아니다. 매년 지속적인 여행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싶다. 상황이 쉽게 변하지는 않으므로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모르겠다. 찾아보자. 미래는 만들어가는 것이라 했으니...

누이도 만만치 않은 '놀이의 생'을 겪어왔구나..ㅎㅎ
기타칠 줄 알면 알겠네요..
내가 기타를 그리 잘 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
걍 즐기는 거죠. 딱 즐길만큼만 칠 줄 알지요.
가끔, 제대로 , 전문적으로 함 배워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근데, 상황이 허락을 않더라구요.. 그럼, 워쩌겠어요.
그냥, 지금 만족하고 즐기는 거지...
(하지만 나중에 가야금은 한번 꼭 배워보고 싶어요.)
글고, 가족에 대한 애정이 계속 솟진 않아요.
구석에 처박혀 있던 걸 끄집어 내는 거지..ㅎㅎㅎ
유행가 가사처럼, 님과 남 점하나 차이에요.
애정이 애증이고....
누이도, 구석에 처박혀 있던 누이의 사랑을 표현해 봐요.
쑥쓰러워 말고....
대신, 누이만의 방식을 찾아서...
생각외로 반응이 재밌을 걸요?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