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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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를 만들어 온 가장 중요한 경험은 어떤 것일까?
3가지의 큰 경험'이 무엇인지 골라 신문기사처럼 기술하라. (1 페이지)
-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
<아버지의 투병과 죽음>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으셨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수입과 지출의 균형’이나 ‘절약’ 같은 단어를 결코 이해하지 못하신 양반이셨다. 젊어서는 그나마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큰아버지의 통제를 받으셨으나 언니를 낳고 분가하신 후에 평생 꿈을 따라 다니셨고 가족을 제외한 주변사람들에게는 입고 있던 옷도 벗어주실 만큼 좋은 분이셨다. 반면에 경제적 관념은 투철하셨으나 옛 사고방식을 가지고 계셨던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류하지 못하셨고 결국 우리 가족은 점점 힘들어졌다.
그런 중 찾아온 아버지의 병은 순식간에 우리 가족을 혼란에 빠뜨렸고 이어진 수술과 투병 생활은 10년이 넘게 계속되었다. 경제적으로 큰 압박을 받는 상황은 점점 우리를 한계로 몰아갔고 얌전하시던 어머니는 억척스러운 아줌마가 되어 생활전선에 뛰어드셨다.
큰 병에 걸린 환자가 있는 집 안은 늘 조심스러운 분위기였고, 어머니마저 집에 계시지 않자 아버지는 더욱 날카로워지셔서 스스로와 가족을 볶아대셨고 마지막에는 알코올에 의지하셨다.
사춘기 시절, 표면으로 들어날 만큼의 방황은 없었지만-그 선을 무너뜨리기에는 어머니가 늘 마음에 걸렸고 한편 스스로에 대한 자존심이 너무 강했다- 늘 내 마음속에서는 폭풍이 불고 있었다. 아버지는 특히 나를 예뻐하셨고 또 주변에서도 아버지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버지가 더 싫었고 그래서 나 자신도 싫었었다. 그때 나에게 아버지는 무능력하고 무책임하고 남한테만 잘하고 정작 자신이 보살펴야 하는 가족은 내팽게친, 정말 싫은 남자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점점 늙고 약해지면서 내 마음 속에서 아버지는 너무나 미운 존재에서 딱한 존재로 바뀌어 갔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에 대한 예전의 미움과 증오는 거의 사라져갔다. 또한 가장 아버지와 닮았다는 이야기도 그냥 웃으며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오히려 내 안에 존재한 아버지의 모습이 어떤 것이었는가 가끔 생각하게 된다.
<결혼과 출산>
학교 선배로서 처음 신랑을 알게 되었다. 곧 이은 그의 입대로 나에게 그는 좀 어려운 선배일 뿐이었다. 한참 후 다시 만나게 된 그는 새롭게 다가왔고 그 후 3년 정도의 연애를 거쳐 우리는 결혼을 했다.
조산의 두려움과 긴장 속에서 첫 아이를 낳았고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둘째를 낳았다.
<퇴사>
나는 작년 여름 14년간의 직장생활을 끝냈다.
꼭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오랜 기간 내 깊은 신조였다. 난 최악의 경우에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기를 원해왔다.
나에게 회사는 인생을 행복하고 즐겁게 살기위한 도구가 아니었고 내가 사수해야 할 구명줄이었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생활과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분리할 수 없었음으로 독립할 생각조차 전혀 하지 못했다. 난 내가 평생 직장생활, 적어도 고정적 수입을 가진 일을 할 것이라고 늘 생각해 왔고 그러기 위해 노력했다.
나에게 일과 안정은 가장 중요한 가치였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도, 누구도 없었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그보다 더 중요하지 않았다. 몇 번의 갈림길에서 나는 항상 안전하고 검증된 길을 선택했고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갈증으로 늘 아쉬움 속에서 과거를 회상하곤 하였다.
회사를 그만둘 결심을 했을 때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경제적 두려움과 일에 그만둔다는 사실이었다. 주변에서조차 내가 일을 떠난다는 사실에 놀라워했고 우울증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퇴사는 불타는 간판에서 뛰어내리는 모험인 동시에 새로운 인생을 알리는 시작이었다.
2. '3가지의 큰 경험'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하나를 골라 자세히 해석해 봐라. (1페이지)
몇 번의 짧은 연애와 한 번의 긴 연애를 겪으며 점차 내가 바라는 결혼 생활과 내가 원하는 배우자에 대한 생각이 명확해졌다. 결국 나는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연애를 했고 결혼을 했다.
존경하고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은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보며 싹트기 시작했고 결국 내가 원하는 배우자 상이 되었다.
왠지 모르게 땅에 발을 딛지 않은 것 같던 내 맘속의 허전함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고 주머니 속의 송곳 같던 나의 성격은 점차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믿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확신은 내가 불화했던 세상과 화해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얻지 못했던 든든한 지원을 신랑에게 얻었던 듯하다.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면서 나는 불안했던 마음의 안정을 얻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나 스스로보다 나를 더 사랑해 주는 사람을 통해서 나는 일그러졌던 나의 자아상을 발견하게 되었고 내 마음 속의 상처를 똑바로 들여다보며 점차 치유하기 시작했다.
큰 애를 가지고 또 낳고 한동안 자신이 없었다. 내가 과연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이 아이를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 이 아이를 위해서 나를 희생할 수 있을까......
그러나 놀랍게도 기적이 일어났다. 나의 걱정이 아무런 쓸데없는 기우였음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나는 출산을 통해 ‘자아가 확장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내 안에 숨어있던 사랑하고 싶은 욕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3. 이 경험을 통해 그대는 그대라는 세계에 대하여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 (0.5 페이지)
(그대의 기질, 취향, 재능, 가치관, 믿음, 선호 등등.... )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에게 가족의 사랑과 지지는 너무도 소중한 것이다. 하루의 일과를 마친 늦은 저녁 가족과 그날의 일과 느낌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은 나를 살아있게 한다. 가끔 욕심이 커질 때도 있고, 귀가 얇은 탓에 흔들릴 때도 있지만 가족 속에서 나는 본연의 모습을 지킬 수 있다. 그래서 나에게 가족은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또한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성장하며 평생 성장하는 존재이다. 나는 10대 때 보다 20대 때 더욱 괜찮은 사람이었고 20대 때보다 30대 때 더 나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40대 때 지금보다 더 멋진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매일매일 나는 나를 둘러싼 환경 속에서 성장한다. 죽는 날, 최고의 내가 될 것을 나는 안다.
내가 얼마나 가족, 특히 신랑에게 의지하고 있는가 알게 되면서 너무 의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한다. 이것이 문제로 나타난 것이 최근에 신랑과의 의사소통에서 나는 일방적인 지지와 찬성만을 원하고 내가 생각한 반응이 나오지 않을 때 매우 방어적으로 변하고 때로는 공격적으로 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갈등 상황을 피하는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내가 극복해야 할 문제이다. 충분한 사랑의 확신을 통해서 이제 스스로 일어나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다고 믿는다. 앞으로는 내가 가족에게 의지하는 만큼 가족에게도 의지되고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니의 MBTI타입이 ISTJ라고 하셨죠?
우리 신랑이랑 같은... ^^
요즘 개인사 정리하면서 내가 왜 남편이랑 결혼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본능적으로 감지했던 것 같습니다.
'이 사람 옆에서라면 마음껏 살아도 중심을 놓치지 않겠구나!' 를..
존재에서 느껴지는 안정감
누구에게나 참 필요한 가치이나 일부러 만드려고 애써서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만큼 비중있는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심'이 언니의 미래를 열어주겠구나...믿고 있습니다.
언니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탄탄하고 내실있는 미래가
언니를 기다리고 있을겁니다.
못 믿으신다구요? 하지만 네가 나를 믿어준다면 모두 다 진짜가 될 거야
이상 하루키를 살짝 빌려입은 '구라 미옥'의 코멘트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