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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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 불혹不惑이라는 이름의 정거장
또 비가 내린다. 대합실 바깥 창으로 바삐 뛰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번져 내린다. 무심결에 시계를 본다. 다음 기차가 올 시간을 가늠해보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담배를 피워 물었다.
마흔이 되면, 흔들리지 않는 인생의 지표를 갖게 될 줄 알았다. 그냥 그 정도쯤 살게 되면, 당연히 불혹의 나이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는 지금도 흔들리고 있고, 지난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하다. 짝사랑에 쓰라렸던 사춘기 때나 황금 같던 청춘을 지나 서른으로 접어들던 그 시절보다도 더 큰 바람에 그가 비틀거리고 있다.
그에게 마흔은 불혹이 되어야 하는 나이였다. 흔들리고, 방황하고, 또 다시 좌절하면서 뼈 속까지 불혹이 되어야 하는 나이였다. 아무도 그에게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가 귀담아 듣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상관없는 일이다. 그는 이미 떠나왔고, 또 다시 약속된 시간이 되면 어느 기차에든 오르게 될 테니까.
긴 한숨을 섞어 뱉은 담배연기가 바람을 타고, 기차길 선로를 따라 빠르게 휘달려 간다.
마흔 세 살의 짧지 않은 여정동안 지나쳐왔던 크고 작은 간이역들의 모습이 하나씩 스쳐간다.
만경강이 서해바다와 만나는 끝자락, 심포. 겨울고막들이 여인들의 손에서 죽어나던 날 그는 그렇게 세상에 왔다. 포를 뒤집어 쓰고, 태를 두 번씩이나 목에 감고 태어난 아이. 삼륜차 가운데 자리에 실려 멀리 전주로 처음 이사를 나오던 다섯 살, 셋방살이를 전전하며 항상 집주인의 눈치를 보며 살았던 어린 시절, 책상 밑으로 쥐어진 여자 짝궁의 손에 처음 가슴을 떨었던 4학년, 아버지의 사고와 투병으로 내내 어두웠던 사춘기를 보내야 했고, 몽정과 자위에 스스로 놀라고 죄의식에 마음 졸여야 했던 중학시절도 있었다.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고 인간이 신을 만든 것’이라며 신부님께 대들었던 17살, 가고 싶던 대학에 갈 수 없었던 실패를 인생의 낙오로 믿었던 고3 겨울의 끝자락. 그리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부림치던 대학시절, 죽을 것 같았던 첫사랑, 연극반 생활과 학생운동, 맑스레닌주의, 지하조직과 수배생활, 행방불명자로 살았던 5년.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터널 같은 시간들이었다.
뜻하지도 않았던 스물 여섯 살의 첫 경험. 팔년을 버티다가 결국 헤어지고 말았던 힘겨웠던 연애, 27살 나이로 군복을 입고 연병장을 기던 훈련병. 피를 섞어 마시며 ‘동지’라 부르던 이들에게서 들어야 했던 ‘배신자’,‘변절자’소리에, 쓴 소주를 삼키며 그의 나이 스물아홉이 저물어 갔었다.
서른이 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이 ‘전주천’이었다. 또 싸워야 했다. 상대는 권력이었고, 힘겨운 싸움이었지만 그는 운이 좋았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신문에 이름 낼 일도 생겼고, 적당한 관심도 받으면서 그도 자리를 잡아갔고, 세상에 열평 남짓한 영역도 가지게 되었다. 사람 복이 있었다. 다소 과분한 정도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은 악연이든, 인연이든 매 순간마다 그가 어찌해야 할지를 배우게 했다. 결혼도 했다. 성실한 아내를 만났고, 그와 아내를 적당히 닮은 아이를 둘이나 얻었다. 시간은 걸렸지만 남들보다 빨리 사회적 성과들이 하나씩 덩어리지고, 주목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기차가 마흔의 정거장을 향해 다가갈수록 그는 불안해했다. 무언지 모를 허전함과 공허함에 먼 산을 보며 담배를 피우는 시간들이 늘었다. 2004년 여름, 시민단체 활동을 접고,‘어학연수’를 핑계 삼아 7개월간의 영국생활을 떠났다. 영국과 유럽의 낯선 거리를 떠돌면서 그가 찾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발버둥을 쳐봤지만, 그는 이미 ‘마흔’이라는 정거장에 내려졌다. 그가 타고 왔던 기차는 벌써 떠났다. 저마다 사람들은 각자의 정해진 길을 찾아 바쁜 걸음들을 재촉하고, 텅 빈 역사에는 그만 남겨졌다. 바싹 바싹 타들어 가는 담배, 뜨거웠던 커피도 점점 식어가고, 자고 나면 늘어가는 흰머리마저도 더는 감출 수 없었다. 역사의 한구석 자리에 앉아 낡은 공책 하나를 꺼내들고서, 그는 지금 행선지를 망설이고 있다.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 오십의 그는 어디에 서 있을까.
‘마도로스’를 꿈꿔본다. 큰 파도를 눈앞에 두고도 눈 하나 끔쩍하지 않고 키를 잡고 있는 선장. 배가 출렁이고, 항해사도 비틀거리고, 갑판 위의 모든 것이 흔들려도 그는 추호의 동요도 없다. 바다 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깊어진 그의 눈은 이미 바다만큼이나 깊다. 얼굴의 상처를 살짝 가린 턱수염, 오른손으로 물어 쥔 파이프 담배, 잘 다려 세운 칼같은 주름이 그의 위엄을 말해준다.
‘그래, 바다에 가자. 비릿한 젖 냄새가 풍기던 고향’
‘그를 낳아주었던 바다, 세상에 지치면 늘 찾던 바다, 그가 늘 그리던 바다’
어느 틈엔가 비가 그쳤다. 대합실로 젖은 발걸음들이 하나씩 둘씩 모여들더니, 곧 개찰이 시작될 모양이다. 먼 선로를 따라 어른어른 그의 눈에 기차가 들어온다.

1. 첫문장 - 내용의 핵심을 요약한 한마디, 독자의 호감을 끌 수 있는 말이 뭘까. 제목으로 뽑았다.
2. 최단거리로 찔러라 - 문체를 간결하게 해보려고 했다. 쓰는 이와 읽은 이의 호흡,
특히, 지루하게 보일 수 있는 중간부분의 긴 시간을 압축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시간적으로 길지만, 호흡을 빠르게 유지해야 글이 끊기지 않고 읽힐 것 같아서.
3. 한번에 하나씩, 책을 읽으면서 몇 개의 칼럼주제를 고민하다가, 공자의 불혹이 제일 꽂혔다.
변화와 전환이라는 주제를 가장 가슴깊이 꽂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직접인용보다는 소설적 구성이라는
형식을 고려하여, 내용에 녹여서 처리했다.
4. 개인의 강점이라고 생각되는 그림그리기, 시적인 소설, 소설적 자서전, 자전적 소설 등 몇 가지 형식을
섞어서 구성해봤다. 그러다 보니, 다소 어색한 점도 있어보이는데, 몇 번 다듬어보다가 나름 재미있는 형식이
될 수 있겠다 싶어서 올렸다. 다른 동기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5. 마흔, 정거장, 현실과 과거의 회상을 섞어가며 전개하는 소설 형식을 빌어봤다. 중간 중간 양념처럼 메타포를
사용했는데, 국물맛이 잘 우러 났는지.. 조미료를 너무 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사실이라는 몸통에 상상의 날개를 달아 주어 좋다.
소설의 서문으로 좋아 보인다. 지나온 삶을 반추하고 내일의 방향을 가늠하는
자전적 소설의 첫머리. 예를 들어 '정거장 紀行'이라는 소설의 프롤로그 처럼 느껴진다.
시대별 주요 사건들이 각각의 정거장이 되고 거기에서 주인공 나는 기차에서 내려 소요하기도
했고 때로는 급박한 상황에 몰려 역을 지나치기도 했다. 옆자리에 있는 줄도 몰랐던 승객이 내릴 무렵이
되어서야 예사롭지 않은 인연임을 깨닫기고 하고, 기타 매고 텐트에 코펠 챙겨 친구들과 함께 지리산 등반을
가던 길이었는데 잠에서 깨니 모두 내리고 우두커니 나만 혼자다.
정거장을 컨셉으로 연작을 꾸며 보는 게 괜찮을 것 같다. 각 장은 '불혹'에서 처럼 소주제를 가지고 전개되고,
가 보지 않은 길도 어제의 일 처럼 일필휘지로 보여주면 흥미진진한 자서전적 소설이 될 것 같다.^^
흥미가 있다면 '불편하기 살기'라는 시 연작과 한번 잘 버무려 보렴~~이미 땔감은 연작시안에 충분히
쟁여놓았으니까.


나는 다만 시작에 앞서 잠깐의 명상을 통해 념두에 두어야 할 몇 가지 사실만을 떠올리고는,
그 다음부터는 네 말대로, 스티븐 킹의 말대로... 그냥 떠오르는 그림들을 흐르는대로 그려서 쓰는 걸 좋아해.
그렇게 글이 써지면, 나도 좋고, 좋아하는 나를 보고.. 또 다른 나도 좋고..그래..(무슨 말인지..나도 좀 헷갈린다.
암튼 그래) 인건의 진심어린 긴 댓글이 좋다. 새록 새록 새살이 돋는 느낌이다.
오늘 하늘은 파란데, 바람이 적어서 좀 날씨가 사납다. 건강 조심하고. 곧 복날이잖아.. 복 받을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