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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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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19일 08시 43분 등록

주제 : 내 마음 나도 몰라.

 

모두들 벌써 나갔나?

집 안이 조용하기만 하다. 며칠 동안 계속 반복되는 꿈이 번데기 판 마냥 계속 빙빙 돌면서 뭐 하나 콱 찍히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잠을 푹 자지 못하다 새벽녘에야 깊은 잠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가 나갔는데도 꼬리치며 인사하지 못했다. 일어나 시계를 보니 12시를 향해 달리고 있다. 너무 자서 그런지 몸을 몇 번이고 털어도 개운치가 않았다. 베란다로 나가 큰 고무 벤자민 화분 밑둥지에 자리를 잡고 한 다리를 드니 엄마가 소리치는 게 들리는 듯 했다.

~ 오리오, 너가 베란다 청소 할꺼냐구요. 제발 싸는데 가서 쌌음 참 좋겠네.

나도 알고 있는데 엄마가 나를 혼자 두고 나가는 일이 잦아진 후부터 난 엄마의 말을 듣고도 못듣는 척 하기 시작했다. 하지말라는 행동을 하고 야단맞는 것도 엄마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하면서 쾌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음은 영 아닌데 내 마음대로 조절이 안 되는 것을 보니 호르몬 때문인가 보다. 뭐야, 그럼 사춘기? 에이 모르겠다.

 

엄마가 기겁하는 두 번째 행동을 하러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폴짝 뛰어 올라갔다 그것도 말리는 사람이 없으니 아무 재미가 없다. 화장대를 보니 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언제나 저 거울 앞에 앉은 다음에 엄마가 나갔다. 저 화장대만 치워 버려도 엄마가 못 나갈 것 같은데…… 내가 꼭 저걸 없애 버려야지……. 하지만 저 화장대 때문에 웃는 일도 종종은 있다. 그건 엄마가 거울보고 하는 행동들이였는데 엄마는 얼마나 재미있고 웃긴 줄 모를 꺼다. 탁탁 두드리고 눈을 깜빡깜빡한 다음 마무리는 어항 속의 붕어처럼 입술을 떼었다 붙였다 하면서 뾱뾱 소리를 내면 끝이 난다. 하지만 난 그때부터 기분이 엘리베이터 내려가는 것처럼 쑤우욱 내려가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엄마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난 엄마가 없으면 밥을 먹을 수가 없다. 언제부터 생긴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의 얼굴을 봐야만 밥이 넘어가고 밥맛이 났다. 밥그릇에는 엄마가 차려준 밥이 놓여 있다. 하지만 먹기 싫었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밥그릇은 나를 유혹하지 못한다. 물로 배를 채운 다음 침대에 엎드려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 오리오, 아무리 보아도 이상하게 생겼다. 이런 내가 뭐가 예쁘다고 우리 엄만 물고 빨고 그것도 모자라 엄마 배에 캥거루처럼 주머니가 있어 넣어 가지고 다니고 싶다고 말하고는 했다. 난 엄마의 말이 진심인가 확인하기 위해 거울 앞으로 바짝 다가가 일단 얼굴부터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온통 까만색인 얼굴에 당나귀 같은 귀 , 눈은 큰 까만 구슬을 넣다 다 못 밀어 넣은 거처럼 튀어 나와 있고, 얼굴 중간엔 하얀 선이 삐뚤빼뚤 그어져있다. 벌떡 일어나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니 온통 흰 눈이 덮인 것처럼 하얀 몸통에 꼬리는 독이 오른 전갈의 꼬리처럼 하늘을 찌를 듯 바짝 올라가 있다. 그리고 그 밑엔 흉측하게 들어 나온 돼지 콧구멍 같은 똥꼬가 보였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예쁜 구석 하나 없는 나를 예쁘다고 하는 엄마와 나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한 것은 얼마 전 까지만이었다. 요즘은 못 생긴 내 외모에 불만이 가득하다. 그리고 하지 말라는 일이 왜 그리 많은지 나 혼자 뛰쳐나가 살고 싶은 마음이 불쑥 불숙 올라온다. 내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또 마음에 드는 강아지가 있으면 사랑도 해 보고 싶다. ‘자유’ 가 그립다. 마음껏 풀 냄새 맡으며 다른 친구들의 체취를 맡으며 산책하고 싶다. 하지만 현재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엄마보다 친구가 있었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삐삐삐삐 삐삐삐삐 암호도 참 엄마답다. 오리오 빨리 빨리라는 의미의 5258282 비밀번호가 눌리면서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왔다. 예전처럼 기쁘지 않았다. 엄마는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는지 콧노래를 불렀다.

“어라, 우리 오리오 왜 밥 안 먹었어?

“어디 아파?

엄마는 나를 안고 마음 아파했다.

“미안해.엄마가 요즘 바쁘다는 이유로 우리 오리오를 너무 외롭게 했나 보구나. 

나는 갑자기 가슴이 시큰했다. 갑자기 엄마의 기분이 아까와 사뭇 달라 보였다.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할 것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뛰어가 밥을 먹었다. 가족, 정말 아름다운 이름이다. 밥이 맛있게 넘어가는 행복이다. 낮에 우울했던 마음은 엄마가 들어와 켜 놓은 거실등처럼 이내 환해졌다. 엄마의 기분을 체크해 보고 싶었다. 나는 슬슬 베란다로 나가 벤자민 화분 아래에서 다리를 번쩍 들었다.

“야~ 오리오 지린내나면 니가 청소 할거냐고?

엄마의 앙칼진 목소리도 웃음이 나는 저녁이다.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읽어주고 부딪치며 살아가는 가족이 있어서 행복했다. 오랜만에 단잠을 잘 것 같다.

 

IP *.178.174.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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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0.07.19 11:41:15 *.236.3.241
한창 청소년을 주제로 글 쓰고 있을텐데 그 중에서 컬럼과 연계시킬 만한
내용이 있다면 시간도 절약되고 컬럼의 방향에 변화를 주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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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7.20 00:15:53 *.178.174.197

Me -story 로 청소년 스토리는 엄두도 못 내고

문서 안에서 콜콜 자고 있어.

암튼 자꾸 그렇게 연관 지으며 글 확장을 해나가야겠지.

마음은 쓸게 많은 것 같아도 막상 써 나가면 막히는 것이

글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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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9 13:39:38 *.145.204.123
오리오 빨리 빨리 비밀번호를 공개해버리면?
아무나 들어가도 되는겨?
이제 본격적인 개가 보는 울엄마 시리즈가 시작되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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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7.20 00:17:54 *.178.174.197

아직 개가 보는 울 엄마로 정한 것은 아닌 것 같고

사부님이 개도 청소년기가 있니? 라고 하는 물으심에

제가 그들의 청소년기를 돌아보고 마음을 써 본다고 썼는데

아직 개 마음을 다 모르는 같은 마음이 들었어요.

비밀번호 바꿨으니까 공개했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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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9 16:46:03 *.30.254.28
유끼중에서도,
내 주변의 지인중에서도
가장 '거침없고, 유쾌한'  여인, 은주!!

가끔은 나도,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
찌끼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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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7.20 00:19:35 *.178.174.197
가끔 너무 거침이 없는 것 같아 반성하고 있어.
그러나 유쾌한 여인이라는 말은 기분 좋으네.....

그래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찌끼뽕이라고 호호 구럼 땡이라 말해야지. 땡. 이제 내 귀 놔줘
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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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0.07.19 22:39:36 *.154.57.140
누나, 담백하다. 근데.. 갈등이 좀만 더... 하는 갈증이 난다.

저 화장대만 치워 버려도 엄마가 못 나갈 것 같은데…… 내가 꼭 저걸 없애 버려야지……. 하지만 저 화장대 때문에 웃는 일도 종종은 있다.

누나, 여기서 마법이 풀려버렸다. 오리오의 질투는 이유없이 사그러들어버렸다. 맥이 풀려버린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른 선택은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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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7.20 00:22:42 *.178.174.197
갈증이 날 땐 소금믈을 들이켜 그럼 더더 타는 갈증에
아 그 때가 좋았는데..... 하거든

그러게 극적인 부분에 너무 쉽게 풀어 버렸지.
아마 더 심하게 질투로 이어지는 것을 내가 글을 위해
지어내는 것 같아 안 쓴 것 같어.
재들은 엄마의 모든 것이 싫고 화나도 나를 이해해준다고 생각했나봐.
하지만 독자가 갈증이 난다면 저자는 더욱 노력 할 것이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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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0 08:00:41 *.10.44.47
나는 왜 언니의 개 이야기를 들으면 자꾸만 우리 애들이 생각나지?   ^^

언니글 읽고 나도 함 해봤거든요.
애들 마음 읽는 연습..근데 이거 진~짜 어렵던데요..
언니는 언제부터 독심술을 했던거예요? 


ㅋㅋ
글구 위의 진철오빠 댓글 관련...
글쓰다 보면 유혹을 느끼는 게 사실이에요.
현실을 그대로 옮기자니 극적인 요소가 떨어지는 것 같구
그렇다고 극적으로 풀어내려다보면 현실이 왜곡되고..
우째야 하는거예요?
아예 대놓고 픽션이면 이런 고민안해도 될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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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0.07.20 10:38:06 *.236.3.241
진실은 내 안에 있으면 되는 거 아닐까 ㅎㅎ
소설이라고 써 놔도 진짜로 볼 사람은 볼 것이고
일기를 옮겨놨는데 허무맹랑한 소설로 보는 이도 있을 거고

작자 입장에서는 전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고 극적인 완성도가 우선인 것이고
픽션이냐 아니냐는 독자 입장에서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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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7.24 02:03:06 *.129.207.200
강아지의 시선으로 쓰신 글이군요. 개들끼리 대화하는 장면도 있었으면 더 재미있겠습니다. 개들은 색맹이라고 하던데, 정말 세상이 흑백으로 보이나요?

강아지의 눈으로 보았지만, 결국 누나도 위의 글처럼 느끼고, 반응하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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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vlgari rings
2010.10.19 11:22:42 *.43.234.3

작자 입장에서는 전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고 극적인 완성도가 우선인 것이고
픽션이냐 아니냐는 독자 입장에서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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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m software
2010.10.30 17:39:48 *.43.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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