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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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내 마음 나도 몰라.
“ 모두들 벌써 나갔나? ”
집 안이 조용하기만 하다. 며칠 동안 계속 반복되는 꿈이 번데기 판 마냥 계속 빙빙 돌면서 뭐 하나 콱 찍히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잠을 푹 자지 못하다 새벽녘에야 깊은 잠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가 나갔는데도 꼬리치며 인사하지 못했다. 일어나 시계를 보니 12시를 향해 달리고 있다. 너무 자서 그런지 몸을 몇 번이고 털어도 개운치가 않았다. 베란다로 나가 큰 고무 벤자민 화분 밑둥지에 자리를 잡고 한 다리를 드니 엄마가 소리치는 게 들리는 듯 했다.
“야 ~ 오리오, 너가 베란다 청소 할꺼냐구요. 제발 싸는데 가서 쌌음 참 좋겠네.”
나도 알고 있는데 엄마가 나를 혼자 두고 나가는 일이 잦아진 후부터 난 엄마의 말을 듣고도 못듣는 척 하기 시작했다. 하지말라는 행동을 하고 야단맞는 것도 엄마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하면서 쾌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음은 영 아닌데 내 마음대로 조절이 안 되는 것을 보니 호르몬 때문인가 보다. ‘뭐야, 그럼 사춘기?’ 에이 모르겠다.
엄마가 기겁하는 두 번째 행동을 하러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폴짝 뛰어 올라갔다 그것도 말리는 사람이 없으니 아무 재미가 없다. 화장대를 보니 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언제나 저 거울 앞에 앉은 다음에 엄마가 나갔다. 저 화장대만 치워 버려도 엄마가 못 나갈 것 같은데…… 내가 꼭 저걸 없애 버려야지……. 하지만 저 화장대 때문에 웃는 일도 종종은 있다. 그건 엄마가 거울보고 하는 행동들이였는데 엄마는 얼마나 재미있고 웃긴 줄 모를 꺼다. 탁탁 두드리고 눈을 깜빡깜빡한 다음 마무리는 어항 속의 붕어처럼 입술을 떼었다 붙였다 하면서 뾱뾱 소리를 내면 끝이 난다. 하지만 난 그때부터 기분이 엘리베이터 내려가는 것처럼 쑤우욱 내려가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엄마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난 엄마가 없으면 밥을 먹을 수가 없다. 언제부터 생긴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의 얼굴을 봐야만 밥이 넘어가고 밥맛이 났다. 밥그릇에는 엄마가 차려준 밥이 놓여 있다. 하지만 먹기 싫었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밥그릇은 나를 유혹하지 못한다. 물로 배를 채운 다음 침대에 엎드려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 오리오, 아무리 보아도 이상하게 생겼다. 이런 내가 뭐가 예쁘다고 우리 엄만 물고 빨고 그것도 모자라 엄마 배에 캥거루처럼 주머니가 있어 넣어 가지고 다니고 싶다고 말하고는 했다. 난 엄마의 말이 진심인가 확인하기 위해 거울 앞으로 바짝 다가가 일단 얼굴부터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온통 까만색인 얼굴에 당나귀 같은 귀 , 눈은 큰 까만 구슬을 넣다 다 못 밀어 넣은 거처럼 튀어 나와 있고, 얼굴 중간엔 하얀 선이 삐뚤빼뚤 그어져있다. 벌떡 일어나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니 온통 흰 눈이 덮인 것처럼 하얀 몸통에 꼬리는 독이 오른 전갈의 꼬리처럼 하늘을 찌를 듯 바짝 올라가 있다. 그리고 그 밑엔 흉측하게 들어 나온 돼지 콧구멍 같은 똥꼬가 보였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예쁜 구석 하나 없는 나를 예쁘다고 하는 엄마와 나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한 것은 얼마 전 까지만이었다. 요즘은 못 생긴 내 외모에 불만이 가득하다. 그리고 하지 말라는 일이 왜 그리 많은지 나 혼자 뛰쳐나가 살고 싶은 마음이 불쑥 불숙 올라온다. 내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또 마음에 드는 강아지가 있으면 사랑도 해 보고 싶다. ‘자유’ 가 그립다. 마음껏 풀 냄새 맡으며 다른 친구들의 체취를 맡으며 산책하고 싶다. 하지만 현재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엄마보다 친구가 있었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삐삐삐삐 삐삐삐삐’ 암호도 참 엄마답다. ‘오리오 빨리 빨리’라는 의미의 5258282 비밀번호가 눌리면서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왔다. 예전처럼 기쁘지 않았다. 엄마는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는지 콧노래를 불렀다.
“어라, 우리 오리오 왜 밥 안 먹었어?”
“어디 아파? ”
엄마는 나를 안고 마음 아파했다.
“미안해.엄마가 요즘 바쁘다는 이유로 우리 오리오를 너무 외롭게 했나 보구나”.
나는 갑자기 가슴이 시큰했다. 갑자기 엄마의 기분이 아까와 사뭇 달라 보였다.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할 것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뛰어가 밥을 먹었다. 가족, 정말 아름다운 이름이다. 밥이 맛있게 넘어가는 행복이다. 낮에 우울했던 마음은 엄마가 들어와 켜 놓은 거실등처럼 이내 환해졌다. 엄마의 기분을 체크해 보고 싶었다. 나는 슬슬 베란다로 나가 벤자민 화분 아래에서 다리를 번쩍 들었다.
“야~ 오리오 지린내나면 니가 청소 할거냐고?”
엄마의 앙칼진 목소리도 웃음이 나는 저녁이다.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읽어주고 부딪치며 살아가는 가족이 있어서 행복했다. 오랜만에 단잠을 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