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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19일 11시 35분 등록

칼럼. 정로의 선물

무엇보다 곤란한 일은 미나코가 교실 밖으로 나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때다. 잠깐만 눈을 떼면 어느새 미나코는 바람처럼 달아나 버린다. 미나코는 교실보다 바깥을 더 좋아한다. 즐거운 듯 웃으며 해파리처럼 휘척휘척 달려간다. 고다니 선생님은 허둥지둥 찾아 나선다. 그런 아이가 자전거를 무서워할 리 없고 하수도 구멍이 두려울 까닭도 없다. 곳곳에 위험이 가득하다. -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中

동급생보다 한 살이 더 많은 정로는 작년 우리반이었다. 나를 보면 밝게 웃어주는 정로를 보면 참 고마웠다. 도움반인 정로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기에 그 웃음으로 정로의 심리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어느 날 교실에 들어갔더니 정로가 어두운 얼굴로 씩씩거리며 앉아있었다.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정로가 폭력을 써서 무섭다고 했다. 정로를 불러 무엇 때문에 친구를 때렸냐고 물었다. 정로는 작은 목소리로 ‘괴롭혀요’라고 말한다. 맞은 아이를 불러 상황을 물었더니, 그 아이는 정로의 옆에 간적도 없고 때린 적도 없단다. 주변의 아이들도 정로를 괴롭히지 않았다고 증언을 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누구 말을 믿어야하지? 처음이라 두명 모두에게 주의를 주고 끝냈다. 그런데 얼마 뒤에 또 정로가 아이들을 때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로와 대화가 잘 되지 않으니 우리반에서 착한 아이를 불러 물었다. 그 아이는 정로가 직접적으로 부딪힌 적이 없는데도 멀리서 정로를 쳐다보거나,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기만해도 갑자기 달려와 폭력을 쓴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반의 다른 도움반 친구인 태건이를 다른 아이가 괴롭히는 것을 보면 역시 폭력을 쓴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정로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정로는 다른 아이들처럼 힘조절을 하지 못해 자신의 분노만큼 힘을 실어 때렸다. 말 못하는 분노가 가슴에 그 정도로 맺혀있는 정로도 맞는 아이도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정로를 쳐다보거나 오히려 도움을 주려고 했던 아이들이 맞고서 억울함을 표시할 때면 너희들이 정로를 도와줘야 하니까 이해하라고 말했지만 참으로 난처했다.

이런 저런 일을 겪던 어느날 소풍을 갔다. 반 아이들과 기다렸지만 정로가 약속한 장소에 나오지 않았다. 그날 오후에 정로는 우리가 만나기로 한 장소(성남)와는 전혀 다른 창동역에서 경찰에 발견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 얼마 뒤에 정로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 정로는 충북 제천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발견이 되어 아버지가 데리고 왔다. 도움반에서 정로를 담당하는 선생님이 정로에게 왜 거기까지 갔다고 물었지만 대답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상의 답답함을 그렇게 표현하듯 뭔가에 홀린 듯 정로는 가끔 그렇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정로에게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반갑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정로도 나에게 웃음으로 답해주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정로는 나에게 작은 선물들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수줍게 웃으며 나에게 선물을 건냈다. 첫 선물은 도움반에서 실습활동으로 자신이 직접 리본으로 감싸 만든 꽃모양의 볼펜이었다. 그 뒤로 화장품 샘플을 가져 오기도 했고, 수줍게 교실앞에서 캔커피 하나씩을 들고 있기도 했다. 때로는 자신이 사용하던 볼펜을 나에게 주기도 했고, 어떤 때는 내 머리에 꽂으라고 머리핀을 주기도 했다. 아이들이 그런 정로를 놀리기도 했지만 꿋꿋하게 나에게 선물을 했다. 계속되는 작은 선물이 부담스러웠지만 정로의 선물을 거절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정로가 학교에 오자마자 교무실로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손에든 검정색 비닐봉지를 건낸다. 뭐냐고 물으니 웃기만하고 교무실을 나간다. 봉지를 열었더니 반쯤 담긴 양념치킨 상자가 나온다. 양념치킨은 차가웠지만 따뜻한 정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도움반 선생님께 정로의 양념치킨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어떻게 가져온 것인지 알아봐야겠다고 하셨다. 그날 퇴근하기전에 도움반 선생님이 정로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선생님이 정로아버지께 정로가 담임선생님께 작은 선물들을 계속 해왔는데 이번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를 양념치킨을 가져왔다고 말씀을 드렸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정로아버지께서는 집에서 어제 치킨을 먹은 적은 없다고 정로가 직접 사간 모양이라고 하시며, “저를 닮았나봐요. 제가 학교 다닐 때 담임선생님을 무척 좋아했거든요.”라고 말씀하시고는 웃으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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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
2010.07.19 12:57:25 *.236.3.241
정로가 한 살 늦게 진급한 이유가 궁금하구나.
도움반이라면 장애우 특수학급을 말하는거니?

부모의 심정에서 정로와 반 아이들을 각별히 챙기는
마음이 참 고맙고 아름답구나.

'다르다'라는 의미를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쳐 줄 수 있는
선생님이 옆에 있어 아이들이 참 행복해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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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0.07.19 13:27:58 *.221.232.14
연주의 힘, 연주글의 힘은 아름다움을 보게하고, 행복함을 공감하게 하는 데 있다.
잔잔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잔잔하게 그리면서도, 진한 감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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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9 13:46:12 *.145.204.123
좋아해주는 학생들이 많아서 연주샘 좋겠다
친구들에게 잘적응하지 못하는 남자아이에게 처녀선생님의 존재는 참 중요할듯하다.
그 아이들에게 어떤 통과의례의 과정으로 샘을 좋아한 기억이 남을 것 같네
잘 인도해주시리라 믿는다.

나도 예전엔 이런 감동이 있었던 것 같은데...
누구 말대로 사는거 폭폭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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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9 18:57:08 *.30.254.28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책..
아마 양철북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지?
2년전엔가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연주야, 꼭 100번 선 봐야 쓰겄다.
니가 빨리 결혼하면 아이들이 울겄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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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7.20 03:19:16 *.129.207.200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차를 몰고 어딘가 쏘다니기를 좋아하지. 정로도 비슷하지 않을까?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겁이 나서, 지방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하염없이 이리저리 배회하고 다녔다. 생각없이 가다보면, 기분이 좋아지거나, 답이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아. 요즘도 그래. 피곤하고 힘들면, 문제에 바로 들어가기 보다, 문제 주변을 계속 맴돌지. 이런 심리상태는 왜 일까? 정로의 집안 사정이 어땠는지 좀더 궁금하구나. 아이들은 우리의 원형이니까. 

연주의 글쓰기에 힌트를 얻어서, 나도 장사를 하면서 얻은 경험을 글로 쓸까해. 소소한 일상을, 인문학과 고전이라는 렌즈로 보는 것이지. 공부가 많이 필요해. 

사람을 한번 보면, 순식간에 전체를 파악하는 능력이 너에게 있지 않니? 말콤 글래드웰의 '블링크'라는 책이 있어. 유명하지. 연주에게서는 유난히 직관이 발달했다는 느낌이 든다.춤출때도 손 한번 잡으면, 필이 온다고 했잖아. 물론, 춤추는 사람은 그런 능력이 생길수도 있겠지만, 너의 글을 읽어보면 그 능력이 있음을 요즘에서야 느낀다. 

 안타까운 것은, 직관으로 얻은 정보를 기록하고 분석할 충분한 시간이 없다는 것이야. 네 힘들었던 고민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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