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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24일 12시 20분 등록

응애 24 -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본,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본, 나무 등걸에 붙어 있던 나비의 번데기를 떠올렸다. 나비는 번데기에다 구멍을 뚫고 나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지만 오래 걸릴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입김으로 데워 주었다. 열심히 데워 준 덕분에 기적은 생명보다 빠른 속도로 내 눈앞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집이 열리면서 나비가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날개를 뒤로 접으며 구겨지는 나비를 본 순간의 공포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엾은 나비는 그 날개를 펴려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나는 내 입김으로 나비를 도우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펴는 것은 태양 아래서 천천히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때늦은 다음이었다. 내 입김은 때가 되기도 전에 나비를 날개가 쭈그러진 채 집을 나서게 한 것이었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몸을 떨었으나 몇 초 뒤 내 손바닥 위에서 죽어 갔다. 나는 나비의 가녀린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              카잔차키스 <희랍인 조르바> 에서


이 나비와 나비의 번데기를 생각하면 작은 이야기 하나는 거뜬히 풀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말 좀 들어보세요, 예전에 내가......” 어쩌면 그러다가 최고의 순간을 찾아낼 수도 있겠지요. 항상 가슴치는 통한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속마음을 보이는 것은 정말 때를 기다려 그의 속에서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 매우 고요하게 그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호기심에서 나온 질문이 그 사람의 날개를 파들거리며 떨게 하는 그런 결과를 불러오면 그 관계에서는 곧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사춘기의 아이들을 키울 때 이렇게 입김을 불어 넣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고도 모자라 몇시간도 지나기 전에 다시 가서 살펴보며 지나친 관심을 보였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출구없이 끓고있는 주전자 속의 증기같던 아이들이 그 소용돌이를 참으로 잘 참고  견뎌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그때 근시안경을 쓰고 우리 가족, 우리 동네 안에서 도토리 키재기 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입김을 불어넣는 것으로도 모자라 후라이 팬에 넣고 달달 볶았었지요. 날개를 펼치는 그 머뭇거림도 기다려줄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때도 가까이 있는 현자는 항상 “좀 더 기다려요. 기다려 주세요.” 라고 속삭였지만 가슴속에서 공명을 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내가 읽은 책을 총 동원해서 때를 놓치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내고 보니까 사람에게는 정해진 때가 있고 점점 더 그 시간의 리듬을 읽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나비와 나비 번데기 그리고 입김이 잘 화합하면 사실 우리는 어떤 행운을 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없이 황홀한 나비의 깨어남을 볼 수도 있겠지요. 섬세하게 깨어있어 마음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그 빛나는 순간도 놓쳐버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시간의 주인이 되고 싶습니다.  밀물과 썰물에 무심히 밀려다니고 있는건 아닌지, 그런 분별은 하며 살고 싶은 것이지요. 나의 선택에  즐겁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  나는 매일 아침 마다  눈을 크게 떠봅니다.

 오늘 아침에는 나비가 되기도 하고 사람이 되기도 하면서 역할놀이를 해 봅니다. 나비가 되니 사람이 보이고 사람이 되니 나비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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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례자
2010.07.24 13:00:26 *.223.38.21
"나의 호기심에서 나온 질문이 그 사람의 날개를 파들거리며 떨게 하는 그런 결과를 불러오면 그 관계에서는 곧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기다릴만할 때는 기다리고 손을 잡아야 할 때는 손을 내밀줄 아는 것은
때를 보고 흐름을 아는 .. 삶의 힘. 인것 같습니다.

샘의 칼럼이 오늘 .. 관계.. 를 돌아보게 하는 한 줄기 쉬어가는 샘이 되었습니다.

순례길 후유증없이 일상에 복귀하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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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07.24 13:42:49 *.67.223.107
여행에도 독이 있긴 하나 봅니다.

눈뜨면 눕고 싶고 , 눈감으면 궁금하고....
몸이 살면 정신이 흐느적 거리고, 정신이 살면 몸이 흐느적 거리고...
그저 강물만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들고 나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 빛나던 그대의 헌신에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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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0.07.25 15:33:01 *.154.57.140
아침에 서점에 들러, 그리스인 조르바를 양장본으로 새로 샀습니다. 전에 있던 책이.. 영 못보겠더군요.
어찌 강 순례를 잘 마치셨는지요. 건강도.. 그 강때문에 현실때문에.. 맘 많이 아프실거 같아 걱정이 됩니다.
나비 이야기가 참 좋은 모티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벌레, 번데기, 껍질 그리고 화려한 나비, 그리고 며칠 밖에 살지 못하는 짧은 삶, 사랑. 죽음 그리고 다시 알.

농담처럼, 간혹 사람들이 띠를 물으면, '저요? 저는 나비띠에요. 잔나비..'라며 웃곤 하지요.
응애가 벌써 25번째까지 왔군요. 더운 날씨.. 건강 꼭 챙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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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나비
2010.07.26 09:25:00 *.67.223.107
진철씨,
시인들이 시를 쓰고있는 세상은 분명... 살만한 세상이겠지요?
짧은 글에 담긴 깊은 의미... 공감, 그런 기쁨이 시에 있어요. 그쵸?

카잔차키스의 고향 크리티에서 그의
시와 같은 글들을 한국어로 말해줘야 겠어요. 그때까지는 조르바를 다 떼고올것.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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