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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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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24일 17시 20분 등록

두 편의 시에 담는 소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었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제주도에 다녀온 이후로 연구원 숙제를 위한 읽기와 칼럼쓰기 외에 당최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마저도 떨쳐 내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현실에 치열함을 찾아 서초동 새벽 꽃시장을 둘러봐도, 섬진강을 노래한 시인의 마음을 좆아 ‘마암분교’ 한 구석을 차지하고 앉아도, 무지개를 따라 길을 나섰던 소년처럼 돌아갈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실감이 큰 것인지, 미련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인지. 함께 새벽시장 길을 나섰던 후배에게, 섬진강 길을 함께 걸었던 후배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아픈지’를, ‘사람들 속에서 나는 누구인지’를,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 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나는 꿈을 꾸는 사람입니다. 현실에 머물러 살기보다 한 발짝 앞선 시간에 살고 있기를 좋아합니다. 머리 속으로 온갖 상상을 그려보기를 좋아합니다. 먼 산, 먼 구름이 때로는 스쳐가던 바람이 남기고 가는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파란하늘을 캔버스 삼아 맑은 수채화를 그리곤 합니다. 그림이 하나씩 그려지면, 현실에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그림을 보며, 나의 뇌는 ‘아드레날린’을 분비를 지시하고, 나의 심장은 ‘타율신경’으로 뜁니다. 저는 그 몰입의 순간을 즐깁니다. 소위 말하는 ‘몽상가’인게지요.

 

나는 위험한 사람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불편한 존재입니다. 일상적으로는 매우 예의바르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지만, 열정의 시간이 되면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합니다. 동공이 확장되고, 목소리는 격양되며, 제스처가 커집니다. 사람들 속에 숨겨진 잠재력을 봅니다. 그것을 가만히 놔두질 못합니다. 불을 지릅니다. 그들은 때로 내 가슴 속에서 옮겨 붙은 불을 감당하기 힘들어라 하기도 합니다. 나로부터 도망치기도 하고, 나를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충분한 시간이 흐른 뒤에 그들 중 몇은 다시 나를 찾곤 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각오가 되었는지를 묻습니다. 아플 수도 있고, 위험이 따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도 각오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들과 함께 내가 변하기 때문이고, 그래야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답답하고 고집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나의 생각을 꺾을 멋진 의견이나 새로운 생각이 나오면 나는 더 이상 고집스럽지 못합니다. 나는 항상 나를 꺾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현인을 만나거나 그런 스승을 만나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그런 순간은 매우 매력적입니다. 그들은 나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그들을 통해 배우고, 강하게 성장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저에게 귀하게 대접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더러는 악연으로 만난 인연마저도, 긴 시간이 지난 뒤에 깨닫게 됩니다.

 

내가 ‘공감’과 ‘소통’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은 한편 이해가 되면서도, 나를 매우 불행하고, 외롭게 만드는 일입니다. 나의 약점이기도 합니다. 내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인정하고 나면, 더 이상 숨길 일도 아니고 아플 일도 아닙니다. 스스로 해결책을 찾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가까이에 그것을 도울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때 맞추어 나타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가 못보고 있었던 것일 뿐이지요.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어제 새벽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바람도 불고, 천둥소리도, 번개도 지나간 밤이었습니다.
누구에게는 아픔과 두려움의 시간이었겠지만, 나는 믿습니다.
저 구름 뒤로 보게 될 맑고 화창한 파란 하늘을.
또 비가 내립니다.
커피가 그리고 담배 한 모금에 잔잔하던 가슴이 울컥하고 마는군요.

 

IP *.154.57.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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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0.07.24 17:24:12 *.154.57.140
문득, 항상 '제'가라고 쓰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와 '내가' 그리고 '저'와 '나' 사이에 깊이 뿌리 박힌 심지하나를 찾아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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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7.24 22:00:50 *.197.63.100
천둥과 먹구름 속에 흔들리고 흔들리며 찾은 '나'를 세우기 위한 혁명의 시간과 자아의 신화로 향할 문에 들어선게지.  울컥임은 짧게, 서릿발 같은 신념의 雄志는 길게!  

아프다 하면 아픈 것 같아 아파진다. 아플 시간이 있는가 묻고 깨달으며 나아가야 진취적 실행이 따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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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7.24 22:13:02 *.131.127.50
'...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마음을 주고 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으면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내리는 신앙의 경구로 주어졌겠습니까?

삶이 밋밋하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사람의 관계도 늘 안전거리를 유지하면  얼마가지 않아 식상하고
곧 머지않아 잊혀지는 것 같습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은 자가 강한 자라면
언제나 옳고 바른 사람이어서 오래 친한 것이 아니라
오래동안 친하게 지내다보니 옳은 면과 바른 면을 더 많이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가 난 돌맹이가 이리저리 부딪치며 둥글둥글해지듯이,
우리 인생도 이리저리 치이고 채이면서 둥글둥글해져가는 거 같습니다.

그것도 제대로 부딪쳐야지,... ㅎㅎㅎ  어설프면 더 날만 섭니다.^^

건강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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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0.07.25 15:11:34 *.154.57.140
고맙습니다. ㅎㅎ 날이 점점 더 더워지네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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