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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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가?
이해한 것과 아는 것의 차이는 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에 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손과 발 과 몸통의 중심을 조절하여 자전거를 탈수 있게 된다면 운동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학습‘ 즉 자전거 타는 기술을 배웠다라고 말한다. 이런 경우에 자전거 '탈 줄 안다.' 또는 '탈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전거를 탈 수 있다고 해서 잘 타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코너웍을 하는지, 어떻게 가속을 하는 것이 효율적인지를 배워서 더 적은 힘으로 더 많은 거리를 가고 시간을 줄일 수 있을 때 우리는 ’잘‘ 탄다라고 말한다. 운동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제어‘라고 부른다. 이 둘을 합쳐서 운동 학습과 제어 (MOtor learning and control)라고 부른다. 이 둘은 행동을 학습하고 발달시키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국어, 수학이나 사회과목의 학습은 이해하는 것이 곧 아는 것이다. 아는 것은 곧 문제를 풀 수 있고 현실속의 유사한 상황에 적용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체능의 영역에 속하는 부분은 이해하는 것과 아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예체능의 영역에서는 ‘알았습니까?’ 라는 질문보다는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
이해란 정립되지 않은 문제의 개념과 절차를 정확히 알아서 체계적인 일관성을 가진 전체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씩 묻는다. ‘그림이 그려졌어?; 라고... 어떤 불완전한 정보와 방법들을 하나의 전체성을 지닌 체계와 그에 따른 정보의 배치가 완성되었는가 라는 말이다.
‘김구선생이 누군지 아는가?’ ‘ 분모가 다른 분수를 풀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었는가?’ 이런 경우에는 이해와 앎은 동일한 관계에 있다.
그러나,
‘제자리에서 점프하여 발을 세 번치고 발을 벌린다. 할 수 있는가?’
‘30 센치의 두 점 사이를 느리지만 일정한 속도로 움직여 직선을 그을 수 있는가’
그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은 신체의 활동을 동반하지 않는다. 두뇌의 활동만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신체활동은 ‘어떻게’라는 행동의 절차지식이 요구된다. 이 기능적 행동은 이해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어적 인지가 감각적 신체의 조절과 활동을 완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절차지식은 반복에 의해서 행동의 시작,중간, 그리고 결과가 있은 뒤의 피드백을 통해서 완성된다. 그래서 신체활동에 있어서 이해하는 것과 아는 것 즉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100일 동안 ‘단군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새벽의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하루에 2시간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잘 하는 것으로 단련한다.
여기에서 아침에 ‘일어나는 것‘, 그리고 잘하고 싶은 것을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단련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아침에 일어나는 행동 자체를 할 줄 몰라서가 아니다. 일어나는 행동을 다양한 환경과 상황 아래에서도 동일하게 지속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실제로 똑같은 일어나는 동작이지만 그 신체의 움직임은 그 전날, 무엇을 했으며 그 결과 신체 및 심리의 상태가 어떠한가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는 행동 자체는 동일한 일어남이지만 결코 같은 정도의 에너지 소모에 의한 동일한 행동이 아니다.
그래서 그냥 일어나는 행동은 쉬워도 100일 동안 매일 아침에 일어나는 행동은 결코 쉽지 않다. 이것은 이해해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100일 동안의 수많은 변수 아래에서 일관되게 행동할 수 있는가에 의해 달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과 생각으로만 하는 철저한 계획을 싫어한다. 왜냐면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00일 동안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변수들을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는가? 없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날 수 있는 행동은 할 수 있는가? 그렇다. 그래서 나의 모든 계획과 행동을 제어하는 지침은 두 마디면 된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아침에 일어나라' = No matter what happen 'just do it'”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철저한 계획이다. 그리고 100 일 동안 아침에 일어나기 위한 가장 적절한 행동지침이다. 그리고 그것이 행동에 있어서 이해와 앎의 차이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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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한 것과 아는 것의 차이는 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에 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손과 발 과 몸통의 중심을 조절하여 자전거를 탈수 있게 된다면 운동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학습‘ 즉 자전거 타는 기술을 배웠다라고 말한다. 이런 경우에 자전거 '탈 줄 안다.' 또는 '탈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전거를 탈 수 있다고 해서 잘 타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코너웍을 하는지, 어떻게 가속을 하는 것이 효율적인지를 배워서 더 적은 힘으로 더 많은 거리를 가고 시간을 줄일 수 있을 때 우리는 ’잘‘ 탄다라고 말한다. 운동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제어‘라고 부른다. 이 둘을 합쳐서 운동 학습과 제어 (MOtor learning and control)라고 부른다. 이 둘은 행동을 학습하고 발달시키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국어, 수학이나 사회과목의 학습은 이해하는 것이 곧 아는 것이다. 아는 것은 곧 문제를 풀 수 있고 현실속의 유사한 상황에 적용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체능의 영역에 속하는 부분은 이해하는 것과 아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예체능의 영역에서는 ‘알았습니까?’ 라는 질문보다는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
이해란 정립되지 않은 문제의 개념과 절차를 정확히 알아서 체계적인 일관성을 가진 전체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씩 묻는다. ‘그림이 그려졌어?; 라고... 어떤 불완전한 정보와 방법들을 하나의 전체성을 지닌 체계와 그에 따른 정보의 배치가 완성되었는가 라는 말이다.
‘김구선생이 누군지 아는가?’ ‘ 분모가 다른 분수를 풀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었는가?’ 이런 경우에는 이해와 앎은 동일한 관계에 있다.
그러나,
‘제자리에서 점프하여 발을 세 번치고 발을 벌린다. 할 수 있는가?’
‘30 센치의 두 점 사이를 느리지만 일정한 속도로 움직여 직선을 그을 수 있는가’
그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은 신체의 활동을 동반하지 않는다. 두뇌의 활동만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신체활동은 ‘어떻게’라는 행동의 절차지식이 요구된다. 이 기능적 행동은 이해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어적 인지가 감각적 신체의 조절과 활동을 완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절차지식은 반복에 의해서 행동의 시작,중간, 그리고 결과가 있은 뒤의 피드백을 통해서 완성된다. 그래서 신체활동에 있어서 이해하는 것과 아는 것 즉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100일 동안 ‘단군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새벽의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하루에 2시간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잘 하는 것으로 단련한다.
여기에서 아침에 ‘일어나는 것‘, 그리고 잘하고 싶은 것을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단련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아침에 일어나는 행동 자체를 할 줄 몰라서가 아니다. 일어나는 행동을 다양한 환경과 상황 아래에서도 동일하게 지속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실제로 똑같은 일어나는 동작이지만 그 신체의 움직임은 그 전날, 무엇을 했으며 그 결과 신체 및 심리의 상태가 어떠한가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는 행동 자체는 동일한 일어남이지만 결코 같은 정도의 에너지 소모에 의한 동일한 행동이 아니다.
그래서 그냥 일어나는 행동은 쉬워도 100일 동안 매일 아침에 일어나는 행동은 결코 쉽지 않다. 이것은 이해해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100일 동안의 수많은 변수 아래에서 일관되게 행동할 수 있는가에 의해 달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과 생각으로만 하는 철저한 계획을 싫어한다. 왜냐면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00일 동안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변수들을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는가? 없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날 수 있는 행동은 할 수 있는가? 그렇다. 그래서 나의 모든 계획과 행동을 제어하는 지침은 두 마디면 된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아침에 일어나라' = No matter what happen 'just do it'”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철저한 계획이다. 그리고 100 일 동안 아침에 일어나기 위한 가장 적절한 행동지침이다. 그리고 그것이 행동에 있어서 이해와 앎의 차이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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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냥 일어나라!"
그런 무서운 말이 어딨데요. 말이니까 쉽지 안그라요 백산님?
가끔은 이상한 사람을 봐요. 그 이상한게 엄청 멋져 보이죠.
안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들어가며 '그래서 힘들어.'하는 사람앞에 그냥 확 해버리는 사람이 있어요.
- 나이가 많아요.
- 비전공자입니다.
- 실제로 해본 경험이 없어요.
- 집에서 첫째라 제약이 많아요.
- 어제 야근을 했어요.
- 현재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3개나 돼요.
- 나는 여자예요. 그건 남자들한테나 통하는 말이예요.
이렇게 안되는 이유가 100가지가 넘는다 해도 한 사람이 있는데 그걸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 이유들은 진짜 이유가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Just do it'은 엄청 강력하고도 매력적입니다.
백산님은 왠지 바로 다음 순간에 죽어도 do it할 거 같ㅅ브니다. 진짜는 안죽잖아요. 이야기의 주인공은 살아남는거니까. 하하하.
그런 무서운 말이 어딨데요. 말이니까 쉽지 안그라요 백산님?
가끔은 이상한 사람을 봐요. 그 이상한게 엄청 멋져 보이죠.
안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들어가며 '그래서 힘들어.'하는 사람앞에 그냥 확 해버리는 사람이 있어요.
- 나이가 많아요.
- 비전공자입니다.
- 실제로 해본 경험이 없어요.
- 집에서 첫째라 제약이 많아요.
- 어제 야근을 했어요.
- 현재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3개나 돼요.
- 나는 여자예요. 그건 남자들한테나 통하는 말이예요.
이렇게 안되는 이유가 100가지가 넘는다 해도 한 사람이 있는데 그걸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 이유들은 진짜 이유가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Just do it'은 엄청 강력하고도 매력적입니다.
백산님은 왠지 바로 다음 순간에 죽어도 do it할 거 같ㅅ브니다. 진짜는 안죽잖아요. 이야기의 주인공은 살아남는거니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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